29. 새내기 20230127
도서관에서 에세이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처음이라서.’
나도 모르게 인생은 처음이라서 라는 생각이 제목에 덧입혀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을 사는 것은 늘 처음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이 처음이고 내일도 처음입니다. 연습할 수 없는 게 인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간을 보기 위해 한 꼭지를 읽었습니다. 나와 그의 출발이 달랐습니다.
‘어느새 세상이 이렇게 변한 거야.’
교사로서 같은 출발점에 섰지만 나와 지은이의 출발시간은 엄연히 달랐습니다. 그동안의 간극이 차이가 납니다. 그는 이제 새내기이지만 내 출발시간은 50여 년이나 흘렀습니다. 내가 선생을 시작할 무렵 이 사람은 세상에 없을 뿐만 아니라 예측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는 도시 학교로 나는 전기는 물론 버스도 다니지 못하는 시골 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나의 교사 임용을 알려준 것은 전보입니다. 알림 방식부터 다릅니다. 그는 스마트 폰의 문자로 알림을 받았답니다. 따스한 봄날입니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교사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함에 동네 근처의 나지막한 산을 거닐다 돌아왔습니다.
“전보가 왔네. 축하해.”
어머니가 내보이는 종이에는 간단하게 소집날짜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다음 날 서둘러 도교육위원회로 향했습니다. 발령장을 보니 교육청입니다. 가야 할 학교가 없습니다. 지역 교육청에서 임지를 알려 줄 거라고 했습니다.
집이 미아리인 관계로 미아 삼거리에서 포천행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한 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거리입니다. 학교는 광릉 뒷산 아래에 있는 작은 학교입니다. 버스를 타고 되돌아 송우리에서 내렸습니다. 정류소에서 방향을 물었습니다. 40여 분을 걸어야 한답니다. 전 학년이 6 학급인 단출한 학교입니다. 개교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학교는 정돈되지 않았습니다. 운동장을 정지하고 둘레에 나무도 심어야 합니다. 화단도 만들어야 합니다. 완성되지 않은 학교이고 보니 아이들의 교육보다 학교의 정비가 우선입니다.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학교의 외부 환경에 힘을 쏟았습니다.
집에서 통근할 만한 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타고 걷기는 거리가 2시간입니다. 왕복 4시간 이상이 허비됩니다. 어쩔 수 없이 이불 보따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직장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새내기 교사는 어찌 보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나보다 여유로운 시기에 태어났고 학교 또한 좋은 환경입니다. 경제의 발전이 시대를 변화시켰습니다. 학급당 60·70명이던 학생이었지만 이도 교실이 모자라 도시에서는 2부제 3부제 수업을 했습니다. 요즘의 학급은 학생 수가 20명 내외입니다. 넉넉한 공간입니다. 여름철, 겨울철 냉난방이 이루어집니다. 그 시절 어디 꿈이나 꿀 수 있는 상황이었겠습니까. 선풍기도 없던 때이고 보니 찜통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지은이는 남자 선생님입니다. 부임 이후 고학년 학생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줄을 섰다고 합니다. 갑자기 연예인이라도 된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귀한 덕분입니다. 내가 첫 부임 하던 시절에는 이와 반대입니다. 여선생님이 귀한 존재입니다. 여선생님이 부임하면 학생들이 복도의 창가에 얼굴을 대고 교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인기가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총각이라는 매력이 있습니다. 학생들로부터의 인기보다는 학부모들로부터 관심이 컸습니다. 시골 동네이고 보니 소문이 빨랐습니다. 가끔 청혼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곤란한 일이 있었습니다. 4학년을 담임했는데 말을 못 하는 여자아기가 있었습니다. 책을 읽혀도, 발표를 시켜도, 질문을 해도 묵묵부답입니다. 아이들에게 여학생의 신상을 물어도 속 시원하게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나고 학년이 바뀌었습니다.
‘또래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던 학생.’
학년이 바뀌었을 때 담임에게 참고하라며 그 아이의 평소 태도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하하, 그 아이가 선생님을 짝사랑했군요.”
아이가 졸업을 하고 나서 부모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우리 아이 어때요?”
“뭐가요?”
“배필감으로…….”
지금의 아이들은 예전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모습입니다. 선생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공경이라든가 존경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친구 같은 선생님이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는 것처럼 삶의 방식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교실 환경정리도 요즘은 간단하게 구성합니다. 따로 학급환경 구성비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리고 뜯어 붙이던 시대에서 물품을 사다가 구성하고 그래픽으로 처리한다지요. 나는 학교를 떠난 지 20여 년이 가까워오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아 글씨를 도안하고 종이를 접고 오려보기도 합니다. 환경심사가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새 학기가 찾아오지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