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신혼여행 20240302
여행 중에 신혼여행은 일생에 단 한 번입니다. 그러기에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황이야 다를 있겠지만 인류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내 생각일 뿐 신혼여행이 시작된 것은 근대화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도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보편화된 것은 그보다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혼여행이 대규모로 시작된 것은 경제개발을 거쳐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또한 예식장 결혼식이 일반화되고 혼례가 상업화된 시점과도 일치합니다. 그 시절은 신혼여행지로 국내가 대부분입니다. 온양온천이 대세로 떠오른 때가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북악스카이웨이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코스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국내로 가는 신혼여행은 제주도 정도이고, 대부분이 해외여행을 갑니다. 나의 신혼여행지는 속초에 있는 설악산이었습니다. 산을 좋아해서 간 것은 아니고 가을 단풍이 멋지다는 친구의 말에 홀렸습니다. 말 그대로 단풍이 곱고 아름다웠지만 크게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내 고향 산천의 가을을 수놓는 단풍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주도를 다녀올 걸 했지만 내 사정을 고려하면 그도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한계령 정상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불타는 단풍 위로 내리는 함박눈은 곧 모든 풍경을 뒤바꿀 것만 같았습니다. 환호성과 함께 눈은 스르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햇빛이 찾아오면서 단풍이 다시 정상에서 골짜기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50 중반의 나이 때입니다. 처음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바다 건너의 모습은 내가 사는 곳과는 딴판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는 다른 나라에 간 느낌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열대의 식물들이 자라고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자연환경과 가옥의 형태, 주민들의 말씨 등 모두가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여행은 좋았던 때보다 불편하거나 고생을 한 게 기억에 남나 봅니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배편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배가 항구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우리가 탄 배를 뒤로 나머지 배는 항구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계획대로 여행하고 무사히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따라왔습니다. 점차 세찬 비바람이 뱃전을 두드립니다. 갑판에서 주변을 감상하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배 안으로 쫓겨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밖에 나갔던 사람이 물을 흠뻑 뒤집어쓴 채 선실로 들어섰습니다. 파도가 갑판을 몇 차례나 넘었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뱃멀미를 느꼈습니다. 어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우면 괜찮다는 말에 바닥에 등을 댔습니다. 점차 배의 좌우가 심하게 요동칩니다. 씨소를 타는 형상이 되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좌우가 흔들리고 앞뒤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나는 선실 바닥의 중앙으로 다가가 누웠습니다. 씨소를 생각할 때 가운데가 흔들림이 덜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멀미를 진정시키려고 잠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기의 칭얼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떠보니 아기가 내 옆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다시 배가 요동치자 또르르 굴러 선실의 가장자리로 굴러갑니다. 저만치 아이 엄마의 누운 모습이 보입니다. 배가 요동을 칠 때마다 아이는 바닥의 이쪽저쪽을 향해 굴러갑니다. 토한 젖이 입과 볼에 허옇게 묻었습니다. 아이가 신음을 낼 때마다 엄마는 손짓할 뿐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몸이 따라주지 못하나 봅니다. 곁에 있는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배가 항구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배에 맡겨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단히 위험한 항해였습니다. 날씨가 심술을 부리는 사이 섬과 해안에는 크고 작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아기엄마는 이번이 신혼여행이었습니다. 결혼식을 하고 여행을 떠나려 했지만, 사정이 생겨 떠나지 못했답니다.
“우리에게 신혼여행이란 말은 합당하지 않은가 봐요.”
여행하려는 날 오늘처럼 일기가 좋지 않아 부득불 취소되었는데 모처럼 여행에 고생의 기억을 남기게 되었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떠나지 않았을 걸 그랬다며 아기를 품 안에 끌어안았습니다. 여행은 늘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닙니다. 헝가리 여행 때입니다. 새벽에 무심코 호텔 밖으로 나왔다 길을 잃고 허둥댄 일이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언어 소통의 문제 탓에 실패했습니다. 침착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기억을 되살려 숙소로 간신히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보니 신혼부부의 여행담이 있습니다. 비행기의 지연이나 현지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뜻하지 않은 일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생도 여행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 다소 위안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야 한다면 가야겠지요. 이제는 여행도 신혼의 과정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