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아파트 이름 20240301
우리나라의 주택의 주거 비율을 알아보니 단독주택보다 공동주택이 훨씬 많습니다. 76퍼센트 정도입니다. 이중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좁은 땅덩이를 활용해야 하니 그럴 수 있겠다 하면서도 자연미가 점차 사라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편리한 점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단독주택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그 예가 주거 공간에 들어서면 남의 시선이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택을 관리하기에도 편리합니다. 단점을 말한다면 정서적인 면에서 다소 떨어진다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단독 주택에 살 때보다는 신경 쓸 일이 적다는데 위안을 얻습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단독주택을 처분한 이후로는 주거지를 옮겨도 계속 아파트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단독주택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형편상 전원주택은 꿈꾸지 못했지만, 전에는 자그마한 마당이 있고 옥상이 있어 화초를 가꾸고 겨울을 제외한 맑은 날에는 옥상에 올라 즐겁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비롯하여 주변의 아파트는 갯벌 위에 지어졌습니다. 인천에 원래 송도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라며 알 수 있는 송도 유원지입니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그곳의 이름을 빼앗아 온 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사람이 옛날의 송도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느낌입니다. 송도 하면 으레 내가 사는 고장으로 알고 일부만이 옛날의 송도유원지를 들먹이는 정도입니다.
아파트 단지가 많아지다 보니 그 이름을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지도 많지만, 그 이름이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된 이름은 한 곳도 없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잘 모르겠습니다. 짧은 이름도 아니고 길다 보니 하나를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외래어를 이용해야 아파트의 값이 올라가고 격이 높아질까요. 예전만 해도 우리말 이름의 아파트가 대세였습니다. 이들마저도 세태에 반영이라도 하려는 듯 슬그머니 새 이름으로 갈아탔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전에 살던 곳을 갈 일이 있었는데 내가 살던 아파트도 개명했습니다. 눈에 익기는 하지만 이름을 보는 순간 내가 여기에 살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일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주변을 둘러보며 역으로 향했습니다.
‘동남, 한양, 태평, 하나, 무지개아파트’가 보입니다.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은 왜 좋은 이름의 아파트를 버리고 남이 알지도 못하는 이름으로 바꾸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발 앞서가는 사람이 보입니다.
“무지개 아파트. 참 좋은 이름이지. 저곳에 사는 사람들은 희망이 가득할 거야.”
앞서가던 사람이 내 말을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잠시 후 그 사람은 단지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전에 한참 유행하던 말입니다. 아파트 이름을 길고 어려운 단어를 조합한 것은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꼭 그래서 한 것이 아닌 거야 알고 있지만 왠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경제생활도 나아지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니 고부간의 갈등이 사라질 거라고 했는데 그 잔재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머리가 나빠서일까, 아파트 이름, 기억하기에 힘듭니다. 요즘은 역세권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진짜 역세권과 가짜 역세권의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역세권의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발품을 파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아파트 이름을 살펴보면서 어떤 규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퍼스트, 더 포레스트, 리버, 레이크, 파크, 파크뷰, 포레, 에듀, 센트럴 등의 단어가 긴 이름에 덧붙여진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형에 따른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외래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와는 달리 한글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동네 이름이 들어간 경우입니다. ‘서초, 개포, 도곡, 대치’ 등입니다. 외래어는 아니지만 왠지 부유층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 표기가 어때서 하는 당당함이 보입니다.
며칠 전의 뉴스입니다. 어느 아파트 무순의 청약에 100만 명 이상이 몰렸답니다. 몇 년 전 분양가라는 말에 로또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당첨되면 분양가의 곱이 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력이 없는 나이지만 미리 알았었더라면 청약을 해볼 걸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첨이 되지 않아도 기다리는 동안 나날이 즐거운 꿈에 부풀지 않았을까 합니다. 복권을 샀지만 당첨된 일이 없어도 기대에 차 일주일이 기다려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인연이 없어서이겠지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도 갑자기 말하려면 발음이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 합니다. 우리 동네 아파트 이름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기억하기 불편한 이름의 아파트 값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살면 마음이 편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