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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 글감 20240304

by 지금은 Mar 23. 2025

오랜만입니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노인회관으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한동안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나타난 현상입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 갑자기 회관의 분위기가 궁금했습니다. 


전철에 오르자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몇 편의 글을 이어 읽었습니다.


‘이것도 글감, 이것도 글감, 저것도 글감이네.’


늘 글감 찾기에 골몰하는 게 일상 중의 하나인데 신이 납니다. 매일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체국 아저씨’의 글을 읽는 중 초등학교 때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우체국 집배원으로 정년퇴직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량진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며 직장 이야기가 나오면 큰소리를 칩니다. 40여 년이 지나도록 한 지역을 누볐으니, 노량진에 대해서는 지리 전문가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청계천의 변화를 눈에 담고 있는 것처럼 그도 노량진의 변천 과정을 속속들이 안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강에서 바늘 찾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친구의 숨은 이야기 중에 편지에 적힌 이름 하나만으로도 주인을 찾아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달랑 서울 노량진동 김 아무개.’ 다른 직원은 전달을 해줄 수 없겠다고 했지만, 끈질긴 집념이 일궈낸 성과입니다. 보낸 사람의 이름과 주소는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편지를 전하며 알음알음 알아보았답니다. 날짜는 지체되었지만, 무사히 전달되었습니다.


‘고양이 남자’를 읽고 죄책감을 느낍니다. 장난이 지나쳐 고양이를 죽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의도적인 일은 아니지만 마음에 걸립니다. 미처 새끼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책 속의 인물은 나와 정반대입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몇 년 동안 취업을 하기 위해 입사 원서를 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며 술로 마음을 달래는데 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따라왔습니다. 불쌍해 보여 한 마리 두 마리 거두다 보니 40여 마리와 함께 산다고 합니다. 어려운 살림에 작은 주거 공간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지만,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고양이의 삶 환경이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힘들지만,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이곳이 고양이의 집이라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살기로 했답니다.


‘우리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때’를 읽고는 빈말의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고, 상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을 기회로 그 깊이를 더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고 보면 말이란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게 헛된 말이 아닙니다. 지은이의 말속에는 베풀어야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숨은 뜻이 있습니다.


‘코딱지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방귀가 떠오르고, 똥 덩이, 화장실, 뭐 아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이들 단어에 얽힌 이야기에는 귀를 닫지 못합니다.


순식간에 글감 몇 개를 벌었습니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잠을 자다가,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말다툼을 하다가……. 하지만 그 좋은 글감을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한순간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조금 있다가 메모를 해야지, 또는 마땅히 적을 곳 이 없어서. 다음에 생각을 떠올리지만, 어느새 머릿속을 떠났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글감이란 늘 한 곳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책 속에서 찾기도 하고 산책, 여행, 음악 등 다양한 삶의 순간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축적된 여러 가지 경험 속에서 불러오기도 합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며칠 동안 끙끙댔는데 우르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오늘은 장소의 변화가 한몫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무인 커피숍에서 식구들과 커피를 마셨습니다. 문을 연 지 며칠 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깨끗한 실내의 벽면은 개점을 응원하는 글로 가득 찼습니다. 보는 순간 글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글 내용에는 내 생각이나 삶의 일정 부분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같은 것은 같은 대로, 다른 것은 다른 데로, 비슷한 것은 비슷한 대로, 엮고 엮어가야겠습니다. 봄에는 수목들이 꽃을 피웁니다. 하지만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꽃이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각각의 색깔과 크기와 모양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나 소재라고 해도 내용이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씨앗을 찾아 심으면 멋진 모양을 갖출 생각도 해야겠지요.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글쓰기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습니까. 글감 찾는 것, 오늘은 독수리의 눈이었다면 내일은 굴뚝새의 눈으로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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