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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예쁘다 20240305

by 지금은

‘할머니 예쁘지. 뽀뽀.’

‘할아버지 예쁘지. 뽀뽀.’

손자 녀석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씀에 기계적으로 볼에 입맞춤했습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키도 훌쩍 자라 제 아비의 키보다 더 큽니다. 어릴 때는 부모의 걱정이 컸습니다. 몸은 옆으로 커지는데 위로 올라갈 뜻이 없나 봅니다. 애태우는 어미에게 할머니는 무심한 듯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때 되면 크는 거야. 네 남편도 그랬다.”


살다 보면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분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조카 부부들이라고 해서 모를 일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급해지는 때도 있게 마련입니다.


며칠 전입니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식사했습니다.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진 느낌이 듭니다. 화기애애한 모습이야 전과 다름이 없지만 ‘예쁘지’ 하는 말이 빠졌습니다. 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곤 했는데 전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니 자신들의 모습을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나 예쁘지’ 하는 대신 손자의 표현이 늘었습니다. 용돈을 줄 때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액수가 좀 많다 싶으면 몇 차례나 더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어제는 동호회 모임이 있어 찻집에서 모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모임에는 늘 늦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 사람이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습니다. 약속 시간을 못 지켰으니 당연히 멋쩍어하거나 미안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뭐야, 좋은 일이라도 있어서 늦은 거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유를 묻자, 자신이 택시에서 내릴 때 기사가 연세에 비해 참 예쁘다고 했답니다. 한 친구가 알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내릴 때 잔돈을 받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상대는 그러면 그렇냐고 하는 모습입니다. 엎드려 절 받은 거라고 합니다. 나나 아내는 형님과 형수보다 더 곱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그렇습니다. 손자는 우리에게 예쁘다거나 멋지다는 표현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인사를 한량이면 마지못해 고개를 숙입니다. 나에게 그 책임이 있기는 합니다. 살갑지 않은 내 평소의 삶이 손자에게도 미쳤는지 모릅니다. 나는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누구에게나 돈을 내미는 일이 없습니다. 주어야 할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손자에게 돈을 준 일은 별로 없습니다. 설날, 학교의 입학식이나 졸업식 정도입니다. 대우를 받고 싶으면 우선 상대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그게 그리 쉽게 되지 않습니다. 나는 이유 없는 자선이나 베푸는 일을 싫어합니다.


늦게 온 사람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예쁘다는 말을 들은 때 언제인지 돌아가며 이야기해 봅시다. 소꿉놀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을 때, 할머니의 등을 긁어주었을 때, 오빠의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쪽지 시험을 보는 동안 모르는 답을 은근히 훔쳐보았을 때, 옆 친구가 손으로 답을 가리며 얼굴만 예쁘면 다냐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등 다양한 말이 오갔습니다.


이 중에 책에서 읽었다며 소개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동네에 찾아온 엿장수입니다. 어린 시절 한 소녀가 잠시 큰어머니 댁에 지냈습니다. 동생이 아파서 어머니가 소녀를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큰어머니 댁 앞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엿장수가 가위를 철컹거리며 지나가다가 그들 옆에 멈췄습니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얼굴 하나 정도는 컸습니다. 사방치기를 하고 있는데 엿장수가 예쁜 너! 하며 가위로 가리켰습니다. 아이가 바라보자 집을 물었습니다. 예쁜 아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쁜 나머지 엿장수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먼 곳을 가리켰습니다. 엿장수는 아이의 ‘저기, 저기’ 하는 손가락질을 따라 동네를 여기저기 돌게 되었습니다. 다시 집 가까이 왔을 때 엿판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 큰어머니가 깜짝 놀랐습니다. 큰어머니는 부리나케 달려와 아이를 끌어내리고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엿장수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오늘은 생각지 않은 예쁘다는 말이 우리 모임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무슨 말을 했을까요. 말이 길어지다 보니 구석까지 차례가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언제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늘 얼굴을 찌푸리고 지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말처럼 아직도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예쁘다는 말을 들으려면 베푸는 일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빈말일망정 같은 말을 들을 확률이 높은 것은 분명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말을 줄이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늦었지만 예쁘다는 소리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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