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력 챌린지 - 30분 독서 후 기록
오영식 디자이너의 전공은 금속공예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서 서울대 공예과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교수가 되고자 대학에 진학을 했지만, 막상 입학해서 수업을 경험해보니 잘 안 맞았다고 한다.
금속공예 전공을 살리는 것을 포기하고, 영화감독, CF 감독, 인테리어를 생각하다 우연히 그래픽 디자인을 하게 됐는데, 이게 잘 맞아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삼성문화재단에서 대기업 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대기업과 안 맞다는 것을 느끼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선배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며, 그래픽 디자인에 입문하게 되었다.
라는 생각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여러 일을 하면서 느꼈다고 한다. 선배 회사 이후에 들어갔던 디자인 회사들 중 몇몇 곳은 사무실에도 잘 없는 사장들이 많았다고 한다. 여러 곳을 1년씩 다니며 '그 회사에서 싫었던 것 하나씩만 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즉, 여러 회사의 상사들을 경험하면서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다.
*반면교사 :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
9개의 회사를 다니면서 9가지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 와중에 좋은 태도를 배우기도 했다. '회의를 15분 이상 하지 않는다. 딱 할 말만 하고 끝낸다.'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할 때, 양보를 해야 되는 안건은 불만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의 실수이니 바로 수정하겠다며 수습을 하지만, 회사가 우위를 가진 안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양보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배웠다. 즉, 전략적인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 현대카드에 입사하여 1년 동안 근무를 하고 자신의 회사를 차려 9년을 현대카드 사옥에 임대로 들어가 있었다. 당시 현대카드의 부회장이 오영식 디자이너를 많이 인정하여 같은 건물 안에서 일을 하게 하고, 현대카드 일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했다고 한다.
1년씩 회사를 옮겨 다니는 것은 겉으로만 봤을 때는 근성이 없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오영식 디자이너는 회사에 속하기보다는 자신의 것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근데 1년씩 9번을 옮겨 다니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 반면교사로부터의 깨달음이 현대카드의 부회장에게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광고인 박웅현은 제일 기획에 입사 후 회사에서 유학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유학을 위해서는 토익이 필요했는데(1996년에도 토익이 있었다니...) 대학교 때 '타임'지 동아리를 1년 반 동안 하며 영어 실력을 늘렸고 카투사로 복무를 했던 터라 따로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기준을 통과했다고 한다.
당시 시카고가 광고 1위였지만 뉴욕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는 학교를 마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광고를 만들어야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가는 도시에서 기대를 보고 느끼고 해야 했다. 유학을 마치고 다시 광고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가장 트렌드가 빠른 곳에 있어야 다시 적응하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리가 교실이다'라는 이야기로 회사를 설득했다고..
당시 뉴욕 거리에서 애플 광고를 처음 보고 짜릿함을 느꼈다. 광고를 만들 때 중요한 건 다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들어올 자리를 내주는 거다. 딱 애플 광고가 그랬다고 한다. 피카소가 보이고 그다음에 Think different라는 문구와 로고가 보인다. 피카소가 다르게 생각했던 거고 애플이 그렇게 가겠다는 의미.
이 복잡한 이야기를, 한 회사의 철학을 두 단어로 압축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애플)
어떤 직업을 갖게 될 때 필연적이라기보다 우연적인 경우도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을 필연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내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하는 건 나의 의지를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보는 태도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만큼, 나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있다, 이런 태도를 갖고 의지를 발휘해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면 누구나 각자의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