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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뚜기 Dec 23. 2020

'박진영', '윤종신' 이라는 브랜드

일상력 챌린지 - 30분 독서 후 기록


* 별표 표시가 있는 부분은 책에 나오는 글에 대한 글쓴이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EP.6



최초 x5를 달성한 남자, JYP


출처 : 유튜브

박진영은 '최초'였다. 그는 최초의 엄친아 댄스 가수이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보다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백댄서로 시작해서 결국은 가수가 되었다. 또한 쉽지 않았다. 자신을 받아주는 소속사는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대영 기획이라는 곳에서 박진영의 1집 앨범을 내주었는데, 그게 초대박을 쳤다. 1집의 타이틀 곡이 유명한 '날 떠나지 마'이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

비주얼도 최초(?)였다. 꽃미남이 아닌 고릴라를 닮은 사람이 긴팔과 다리로 춤을 췄다. 춤도 파격적이었다. 엉덩이를 쓸어 올리고, '엘리베이터'에서는 란제리를 입은 여성 백댄서와 서로의 몸을 만지며 유혹했다. 의상도 독보적이었다. 그 유명한, 비닐 바지를 입었고 배꼽티를 입고 나올 만큼 용감했다.


꽃미남이 아닌 비주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진영은 섹시한 오빠가 되었다. 박진영의 노래와 춤은 늘 야했다. 섹스 코드가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이 쓴 곡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엄정화의 '초대', 박지윤의 '성인식',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보수적인 90년대에 그는 당당하게 '섹스'를 말했다. 욕을 먹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향해 날아드는 돌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박진영이 내놓는 '섹스'는 잘 팔렸다.


출처 : 펀토리

JYP를 만들고, 그의 삶과 가치관이 바뀌었다. 그는 인기를 얻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자 목표였던 20대와는 달리,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했다. 편법이나 반칙을 쓰지 않아야 했다. 인성을 훈련해야 했다. 


바뀐 가치관을 JYP 소속 아티스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전파했다. JYP의 철학과 룰을 정립해 아티스트들에게 전파했다. 어떻게 하면 연예인으로 '잘 살 수 있을지'를 가르친다. '진실, 성실, 겸손'을 행동지침으로 삼고 인성교육뿐만 아니라, 성교육까지도 가르친다. 요즘처럼 이슈가 많은 시점에 JYP 소속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 찾아볼 없다. 비결은 박진영의 이런 철학과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과 사고가 터질 때마다, JYP가 주목을 받는 것은 덕이다. 


더 좋은 것보다는 맨 처음이 낫다.
- 알 리스, 잭 트라우트 -


박진영은 늘 최초였다. 최초의 엄친아 댄스 가수, 최초의 비주얼 가수, 최초의 남자 섹시 가수, 자신이 만든 타이틀 곡에 창작자를 드러낸 최초의 프로듀서(제와피), 인성 교육에 사활을 건 최초의 연예기획사 대표.

박진영은 특정한 최초에 머무르지 않았다. 하나의 최초가 유효기간이 다 하면 또 다른 최초를 가지고 나왔다. 한 번의 최초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수많은 경쟁자는 조용히 무대 밖으로 사라졌고, 박진영만이 남았다.




집요함이 초일류 브랜드를 만든다


스티브 잡스는 천재가 아니다. 단지 집요할 뿐이다.

위대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나이키가 그랬던 것처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고집스럽고 끈기 있게 일을 반복한다. 서서히 브랜드다운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결국 초일류 브랜드를 만드는 건 '집요함'이다.




월간 윤종신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는 2년 동안 공을 들인 11집 앨범이 망하고 탄생했다. 윤종신이 알던 가요 시장이 아니었다. 시대가 변했다. 음원 차트에서는 '앨범'이 아니라 '곡'이 각개전투하고 있었다. 이런 바뀐 환경에 불평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오래오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다. 그리고 다짐했다.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 꾸준하게 발표해보자. 호흡을 길게 가져가자.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말자. 커다란 한 방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자. 그렇게 '월간 윤종신'이 시작되었고, '싱글'을 '정기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출처 : 월간 윤종신

세계 최초였다. 매달 한 곡을 내놓는 가수. 한 달에 한 곡씩 꾸준히 발표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적자였다. 예능에서 돈을 벌어서 곡을 쓰는데 다 쓰는 구조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히 가보자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월간 윤종신'의 아카이브가 쌓였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쌓인 아카이브가 빛을 발했다. 슈퍼스타 K에 출연한 강승윤이 부른 '본능적으로'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로 5월에 공개한 곡으로, 당시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를 통해 아카이브에 꾸준히 곡을 쟁여두면, 언젠가 빛을 '발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탄력을 받았다. '오르막길', '지친 하루' 등의 노래들이 인기를 얻었다. 데뷔 27년 차에 처음으로 1위를 안겨준 곡 '좋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음원 순위 100위권에 머물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윤종신이 이 곡을 부른 뒤 무서운 속도로 역주행했다.



월간 윤종신 10주년 새로운 프로젝트, '이방인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이 팔리는 브랜드가 된 요인은 세 가지였다. 

1) 취향 공동체

"예수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예수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그 누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어떤 브랜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 고객의 취향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요즘은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확실하게 만족시키는 브랜드가 더 사랑받는 시대다.

윤종신 또한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키려는 '헛된 노력'을 하기보다는 대중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윤종신의 취향과 맞는 사람들이 '월간 윤종신'을 구독해준다. 


2) 성실함

"아마추어가 영감을 기다릴 때, 프로는 작업한다."

성실성이 없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윤종신은 '힐링 캠프'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발명은 천재가 하는 거고, 발견은 성실한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올해로 10년을 넘긴 '월간 윤종신'을 한 번도 펑크 내지 않고 진행해 온 그는 '성실함의 아이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방울이 오랜 기간 떨어지면 돌을 뚫을 수 있다. 그의 성공에는 성실함이 있었다.


3) 아니면 말고

'아니면 말고'의 효과는 확실하다. 음악에 대한 무게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음악 활동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실패에 대한 강박도 줄어들었다. 자신이 늘 최선을 다하고 있고,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고 있다. 사람들이 언젠가는 알아봐 줄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고.

'월간 윤종신'이 10년을 넘게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니면 말고'다.


아쉽게도 이방인 프로젝트는 코로나로 인해서 7월쯤에 멈추게 되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2020년 1년을 충분히 채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방인 프로젝트 역시 윤종신다웠다. '월간 윤종신'을 처음 시작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힘을 뺀 모습으로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아니면 말고'가 있었다.



*

박진영은 '최초', 윤종신은 '집념'.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성공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성공을 했다. '최초'가 될 수 있다면 '최초'라는 자리를 선점하는 게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윤종신처럼 끈기와 성실함으로 무장할 수밖에. 


특히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에 매우 공감한다.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한 지 3년, 브런치를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되었다. 내가 꾸준히 이렇게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꼭 이 콘텐츠를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은 진작에 접었다. 그렇게 힘을 주고 하면,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그만큼 기대도 커진다. 그리고 실망도 함께..


이제는 글쓰기도 하나의 루틴이 되어서 예전에 비하면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는다. (매번 쓸 때마다 어려운 건 언제나 마찬가지다.)

최근에 지인이 브런치를 시작해볼까 한다고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내가 해준 얘기는 하나다. "지금 시작해라. 대신에 가볍게. 거창하게 무엇을 쓰겠다 하지 말고, 일단 일상의 이야기, 일기라도 적어라." 

유도탄처럼 일단 발사하고 목표물 조준은 나중에 하면 된다. 그리고 항상 글을 쓸 때는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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