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소리도 못 듣겠다면서 교회에 가자고요?

뇌종양으로 힘든 몸... 그럼에도 향한 곳

by 졔자까

시어머니는 귀가 예민하시다.

왼쪽 귀로는 9가 들리면,
오른쪽 귀로는 1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거기에 이명까지 있으시다.

세탁기 소리,
설거지할 때 물 흐르는 소리,
청소기 소리,
TV 소리조차도 듣기 힘들어하신다.

머리가 울려서

어지럽고 아프시단다.

집 안은 늘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TV는 거의 음소거 상태로
자막 켜놓고 봤다.
외국 영화도 아닌데ㅜ

설거지도 조심스러웠다.
삼시세끼 차려 먹고,
그릇을 모아 저녁에 몰아서 는데
그릇 부딪히는 소리,
물소리조차 듣기 힘들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방에 들어가신

틈을 타 하거나
졸졸졸 조심스럽게 물을 틀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청소기는 당연히 못 돌리고,
부직포를 붙인 밀대로
머리카락과 고양이 털을 쓸고 닦았다.

드라이기 소리 듣는 것도 싫다고 하셔서
우리는 선풍기로 머리를 말렸다.

그렇게 우리는 집 안에서
‘소리’를 지우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주말,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교회에 가고 싶다.”

파주에서 아버님과 따로 지내시던 시절,
권사로 일하며
일주일에 서너 번은 교회에 나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어지러워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면서
그럼에도, 꼭 가고 싶으시단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혼자 못 모셔.
당신도 같이 가지 않으면,
어머님 안 모시고 갈 거야."

사실 나는 교회와 인연이 없다.
중학생 때 친구 따라 문화상품권 받으러
몇 번 간 기억이 전부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낯선 방식
솔직히 좀 겁이 났다.

결국 시누이까지 함께
넷이서 차를 탔다.

나는 집 앞 교회에 가는 줄 알았는데,
어머님이 원한 곳은
차로 20~30분 걸리는 대형 교회였다.

집 앞 교회는 아는 사람이 많아서,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도착한 교회는 정말 컸다.
사람도 많고, 주차 공간도 부족했다.

걱정이 앞섰다.
TV 소리도 듣기 힘드신 분이
이렇게 북적이는 공간은 괜찮으신 걸까?

목사의 설교는 마이크로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찬송가를 큰 목소리로 함께 부를 텐데
그런 소리들은 괜찮으실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믿음이란 게 이런 힘이 있는 걸까.
몸도 힘들고 소리에 예민한 상황에서도
다 감내하게 만드는…

우리는 사람이 드문 자리에
조심히 자리를 잡고,
예배에 참여했다.

그날은 담임목사님이
해외 일정으로 자리를 비워
다른 분이 설교를 맡으셨다.
그런데 설교 내용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코로나로 교회가 많이 어려워졌다’,
‘이 집사는 얼마를 헌금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헌신해야 한다’

믿음과 공동체에 대한 메시지였지만,
성인이 되어
처음 교회를 찾은 내게는
헌금 얘기가 유독 크게 들렸다.

영혼에 대한 위로보다는
현실의 부담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예배가 끝나고 헌금을 드리는 시간이 되었다.

시누이가 우리 몫까지 챙겨서 봉투를 건넸다.
난 난감한 얼굴을 지었다.

그러자 어머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만한 교회가 돌아가려면,
다들 조금씩 도와야지.”

남편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했다.

“엄마 아픈 거, 이 교회가 낫게 해 줘?
뭐 하나 도와주는 거 있어?
몸도 아픈데 이렇게까지 와서
돈까지 내야 해?”

남편도 교횔 다니지 않는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으니까.

믿음이 있다면
내가 있는 그 자리가 곧 교회 아닐까.
집에서 예배드린다고 해서
위에 계신 분이 노하시진 않을 것 같은데..

씻고, 옷 입고,
30분 가까이 차를 타고,
30분 가까이 주차를 하고,
1시간 남짓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려고
30분 넘게 기다렸다가
또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시간.

어머님께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언젠가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날의 이 시간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게 될까?

지금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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