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똥 닦아봄?

잘못된 뇌종양 수술... 며느리의 간병 일기

by 졔자까

2023년 3월 6일.
어머님의 수술 날이 닥쳤다.

전날 밤, 수술 설명을 듣고 온 뒤
밤새 원고와 자막을 쓰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 6시.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어머님을 뵌 후
시누이 짐을 옮기는 걸 도와주고는
곧장 MBC로 출근했다.


어머님이 수술을 받는 동안

나는 저녁 생방송 준비로 분주했다.


원래 병원에서 남편, 시누이와 함께
기다리려 했지만
남편은 “어차피 기다리는 것밖에 못 하잖아.
일 먼저 끝내고 와.”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수술 시간이 길 거라는 말을 남기고.


수술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12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이었다.


나는 생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저녁 7시가 조금 지나

상암에서 신촌 세브란스로 달려갔다.


어머님이 깨어나야 CT를 찍고
중환자실로 옮길 수 있다 했는데
한 시간, 두 시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담당 교수는 이미 다음 수술에 들어갔고
수술 내용도 듣지 못했다.


결국,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전공의가 “이제 깨어나셨다”라고 알려줬다.


6시간 넘게 의식이 없었던 것.


잘 된 건지, 잘못된 건지
정확한 설명은 교수님께 들으라는데, 참..

어이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왔고
시누가 병원에 남아 어머님 곁을 지켰다.


아침이 밝고, 오후 3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교수와 면담을 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수술 중 운동신경을 건드려 뇌경색이 와,
오른쪽 마비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종양을 절반도 떼어내지 못했다는 것.


뇌간에 너무 붙어 있어
머리를 닫고 나와야 했단다.
2차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평생 누워서 지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 가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굴 탓해야 할까.


일주일 동안은 시누가 간병을 맡았다.


코로나 시기였기에 면회는 전면 금지.
상주 보호자도 1인만 허용됐다.

우리는 영상통화로 어머님의 안부를 물었다.


어눌한 말투.

아이처럼 변한 정신 상태.


그리고,
“건강해야 해, 행복해야 해…”
같은 말만 반복하시는 어머님.

눈물이 났다.


3월 12일.
이제 내가 간병할 차례가 됐다.

시누가 남편에게 이렇게 톡을 보냈다.

=

물티슈: 부드러운 걸로. 꽤 많이 쓰니까 좀 챙겨줘
수건: 새언니가 쓸 것만
소주 종이컵: 있으면 엄마 물 마시는 연습할 때 써. 없으면 종이컵이라도
플레인 요거트: 엄마가 엄청 잘 드셔


욕창 생길 수 있으니까
하루 30분 정도는 옆으로 눕게 해줘야 해

뭐 대변볼 때 눕히면 되긴 하는데, 혹시 몰라서

=

그리고, 오줌통 비우는 방법도
그림으로 정성껏 설명해 줬다.


이것저것 챙겨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병실이 1인실이었다.

처음엔 5인실, 그다음 3인실.
그리고 결국 1인실.


섬망 증상이 있는 환자,
밤새 뒤척이는 환자,
침 뱉는 환자,
휴대폰 불빛,
조선족 간병인의 대화 소리...

어머님은 시누와 함께 있으면서
그 불편함을 계속 토로하셨고
결국 병원이 1인실로 옮겨줬다고 했다.


하루 56만 원.


어이가 없었지만, 어쩌랴.

솔직히, 나도 1인실이라 조금은 편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무겁고 불편했다.


어머님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얼굴은 입이 돌아가 일그러져 있었고
팔다리는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말도 너무 어눌해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답답해하시는 기색이 역력했다.


첫 번째 난관. 밥.

어머님의 식판 위엔
모든 음식이 갈려서 나왔다.

밥도 미음.

요플레 숟가락으로 한입 한입 떠먹이는데
입 주변에 흘린 음식이 가득했다.

한 시간 동안 겨우 먹였고,
나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두 번째 난관. 환자복 갈아입히기.

1시간을 들여 밥을 먹으니
어머님도 땀을 흘릴 수밖에.
찝찝하다고 갈아입혀 달라고 하셨다.

땀을 뻘뻘 흘리며

30분 넘게 걸려 옷을 갈아입혔다.
그런데 다 갈아입히고 나니


“나시 좀 입혀줘.”

... 왜 미리 말 안 하시고요.


결국 다시 벗기고, 나시 입히고, 다시 입혔다.

이게 왜 힘드냐면.....
팔목에 여러 개의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여러 선들이 연결돼 있어
하나하나 조심히 옷 안으로 넣고 빼야 했다.


어머님은 몸을 가눌 수 없으니
내 팔로 지탱한 채 옷을 갈아입혀야 했는데
침대를 아무리 세워도 쉽지 않았다.


진짜, 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어머님 말로는 시누도 울면서 했다고 한다.


세 번째 난관. 배변.

일주일 넘게
배변을 보지 못하셨다는 어머님.

그럴 수밖에.
수술 전 관장,
수술 후엔 식사도 거의 못하셨으니.

배가 아프다고 하시길래
변비약을 받아와서 먹이고
배 마사지를 해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가 온다”는 어머님.


나의 진짜 도전이 시작됐다.


어머님 몸을 한쪽으로 돌리고
배변 패드 두 장을 겹쳐 깔고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기다렸다.


그 사이, 라텍스 장갑을 끼고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준비했다.


“다 눴어”


나는 숨을 참고..

다리를 들어 올려
패드 1장을

빠르게 접어 비닐봉지에 담았다.


후...


하.. 누워서 변을 보는 어머님은

자신이 얼마나 싫으실까 싶다가도..

엉덩이에 눌린 변을 보는 나는 진짜

내 인생 최악을 경험했다.


현타가 왔다.

아기 똥도 닦아본 적 없고,
어른의 생식기를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다.


어머님이 "미안해.."라고 하시는데


괜.. 차나요.. 시원하게 누셨음 됐죠...

(사실 안 괜찮아요..ㅠ)


비닐봉지가 가득 찰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티슈와 티슈로

깨끗이 닦고.. 또 닦고...


마지막으로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엉덩이를 닦아드렸다..

휴....


오물통에 비닐봉지를 버리고 와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로록... 났다.
소리 날까 봐

입을 막고 펑펑 울었다.


내가 우는 걸 알면

어머님이 더 슬퍼하실 테니까..?


어머님이라고 뭐

며느리가 똥 닦아줄 거라고

상상이나 하셨을까.


하..

우리 엄마는 내가 이러고 있는 거 알면

얼마나 울까.

간병인 쓴다고 뻥 쳐 놔서

엄마한테 전화도 하지 못했다.


나 계속할 수 있는 거 맞아?


[슈퍼맨] [오전 9:45] 힘들지ㅠ

[졔자까] [오전 9:46] 힘들어

[졔자까] [오전 9:46] 어케 안 힘들 수 있어

[졔자까] [오전 9:46] 그럼 철인이야

[졔자까] [오전 9:47] 여보가 하루만 해봐

[졔자까] [오전 9:47] 진짜

[슈퍼맨] [오전 9:47] ㅠㅠㅠㅠ알아 힘든 거 ㅠㅠ

[졔자까] [오전 9:47] 괜찮아지시겠지

[졔자까] [오전 9:47] 평생 이럴 순 없어

[졔자까] [오전 9:47] 진짜


하.. 남의 편한테

네가 해보라고 하고 싶었으나

어머님의 똥을 남의 편이

닦고 있을 생각을 하니까

너무 싫었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그냥 시누가 대기업 퇴사하고

간병 계속하면 안 되겠지...


우리는 결국 조금 저렴한

조선족 간병인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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