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비
오늘도 시간은 빠르게 간다.
지난 20대, 30대 시절에는 아등바등 앞만 보고 달린 거 같다.
내 앞에 주어진 문제를 당장 풀어서 오늘까지 제출해야만 되는 것처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았고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줄 알았으니까.
그렇게 나름 치열하게 살아온 거 같은데 지극히 평범했다.
평범함의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인 것 같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여기까지는 크게 반항하지 않고 모나지 않게 본분에 따라 보통 수준으로 평범하게 살았다.
취업이 조금 늦긴 했지만 30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적당히 하면서 사람들과도 큰 문제없이 지내온 것을 보면 정말 무난한 인생이다.
다만 하나. 결혼이라는 숙제는 아직 남아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뭐든 적당한 때라는 게 있는데 시기를 놓치니 마음이 무겁다.
조급함도 함께 찾아와 나의 일상과 직장에도 좋지 않은 기분을 전염시키는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해 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취업 시기가 늦은 점과 결혼이 늦은 점. 빠른 편이 아닌 나의 본성과도 오버랩된다.
하지만 괜한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니까.
언젠가 하겠지 하는 긍정회로를 돌리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풀리지 않는 결혼이라는 숙제를 남겨 놓고 앞으로의 인생을 그려본다.
막연하게 이렇게 흐릿한 인생을 살다 가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앞선다.
분명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고, 최근 5년 동안 너무 안이하고 무기력하게 살아온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직장생활 초반에는 앞으로 계속 열정적일 줄 알았고 40대에는 커리어와 어느 정도의 자산을 쌓을 줄 알았는데 현실과 너무 다른 지금. 초라한 감정이 스며든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채워갈지,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게 맞는지 반문하면서 재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아직은 마음 한편에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열정이 남아 있으니까.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50대에는 40대가 그토록 원하던 젊음이기에 지금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일 것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젊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성한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하고 어떤 것이든 꾸준하게 도전하는 것을 존경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어느 분야에서 상위권에 있다거나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싶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치가 있는 일, 의미가 있는 일을 찾아본다.
이게 네가 원하던 인생의 그림이야? 잘 채워지고 있는 것 같아?
하얀 캔버스 위 붓을 들어본다.
어떤 그림으로 채워갈지 느리지만 치열하게 오늘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