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뀜에 따라 새로운 마음가짐을 먹는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해로 만들겠다고.(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으리라). 건강이 됐든, 직장에서의 성과나 위치, 개인적으로 성취하려고 하는 몇 가지 목표들을 다이어리에 기록하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매년 반복되는 새해의 습관이다. 2025에서 2026으로 숫자만 바뀌었지, 사실 오늘 본 태양은 어제의 태양과 같고 내가 있는 공간도 어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어떤 물리적인 측면에서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미약한 인간이 가진 능력치로는 그것을 실감할 수 없는 노릇이며 단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 수천만 수억만 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그 찰나를 살아갈 뿐이다.
우리의 의지대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까? 간혹 나에게 또는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은 기본인데 평균 이상의 무엇을 더 성취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균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고, 가능성을 높여나갈 수 있으니까. 또 학교나 사회에서의 가이드라인도 그런 식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고. 언 듯 보면 맞는 말 같다. 나의 의지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인생은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인간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내 의지의 반영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하늘은 널 속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이 정해준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이미 운명은 정해진 수순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고 끝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인생은 덧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의심하면서 또는 회의적으로 살아가는 쪽은 아닌 인간에 속한다. 아직까지 세상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대단한 인물들의 노력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한 것이지만). 인간의 노력과 의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러한 나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는가(때로는 차가운 면도 있지만 나는 인간적인 면을 좋아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에도 30%의 노력을 말하고 있듯, 운명이나 정해진 뻔한 길을 생각하기 전에 자유의지와 노력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이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행동한 것의 결과물이다. 나의 사회적 지위에서부터 직업, 재산, 건강, 얼굴 표정까지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가 쌓아온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40대에 접어들고 보니 지속적인 노력, 행동들의 축적들이 무시 못할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허투루 살지 않기로 다짐한다. 마음속에 새긴 새해의 소망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며 수시로 나침반을 확인한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유아기와 노년기 등 자유의지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기를 빼고 80살을 내 의지대로 살아간다고 했을 때 1/29,200번째의 색깔을 채우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려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