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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Aug 06. 2020

어쩌다가 100% 셀프 웨딩을 하게 되었나

이 글은 셀프 웨딩을 준비하면서 그 당사자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구구절절 성토하는 글이자, 이런 것들을 감당할 각오 없이는 셀프 웨딩의 ㅅ도 생각하지 말라는 글이다. 보통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생각보다 험난해서 (의사 결정할 것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거 두 번은 못하겠다~" 하고 혀를 내두르는데, 셀프 웨딩은 그것보다 10배쯤 더 험난하다고 할 수 있겠다. 준비하는 것 자체로도 힘든데, 아무래도 둘만으로는 벅차기에 주변의 손을 빌리다 보면 이래저래 욕을 먹어 마음고생을 하는 것은 덤이다. 


8월, 우리는 세븐스프링스 목동점으로 결혼식장을 확정했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웨딩홀을 정하고 나면 이제 그쪽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선택지를 주면 그중에서 고르면 되고, 돈을 더 쓸까 말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레스토랑 '대관'을 약속했을 뿐이고, 대관 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었다. 새하얀, 아니 세븐스프링스의 인테리어가 들어가 있는 도화지 위에 어떻게 우리의 '결혼'을 덧입히느냐가 관건이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 웨딩 플래너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플래너는 말 그대로 계획을 함께 짜 주는 사람이다.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합쳐서 이르는 말)를 필두로 결혼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군더더기 없이 알차게 준비할 수 있다. 어떤 게 필요하다는 말만 하면 가게와 스케줄까지 쭉~ 나온다. 나는 그 정보를 보고 고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예단 등의 것들을 하지 않았고, 예물은 서로 반지 하나면 되었으며, 사진 또한 셀프로 진행하고 있었기에 플래너가 굳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웨딩 디렉터'였다. 결혼 당일, 결혼'식'을 연출해 줄 사람. 우리의 취향이 반영된 요구사항을 받아, 결혼식장을 멋지게 꾸며주고 그 현장을 지휘할 사람이었다. 우리 커플 '개고생'의 시작은 이 디렉터를 고용하지 못한 것부터였다. 아마 디렉터와 함께했더라면 좀 더 마음 편하게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다. 웰컴 투 지옥길. 


어쩌다가 100% 셀프 웨딩을 하게 되었는지는, 어쩌다가 웨딩 디렉터를 고용하지 못했는지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웨딩 디렉터와 함께해도 셀프 웨딩이 맞긴 맞지만, 우리는 디렉터가 할 일까지 직접 했다! 요즘 셀프 인테리어라고 하면 각 공정마다 적임자를 개별 고용해서 일을 진행하는 의미로 많이 쓰는데, 인테리어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도배, 장판, 시트지 붙이기 등의 공정을 직접 하면서 인테리어를 한 셈이었다. 예식대, 버진로드 꾸미기, 사진전 열기 등의 전시부터 주차권 챙기기, 마이크와 스피커 손보기 등 세부 진행까지 모두 신랑 신부가 직접 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나의 아름다웠던 플랜은, 연말까지 적절한 웨딩 디렉터를 찾아 계약한 뒤, 나머지 3개월 동안 열심히 결혼식장을 꾸미기를 기획하는 것이었다. 결혼식과 관련해서 뭔가를 하려면 다 3개월 전이 기준이었다. 웨딩 디렉터 역시 식 3개월 전쯤 계약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사이에 찾아서 12월쯤 계약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웨딩 디렉터는 극과 극이었다. 엄청 화려하거나, 적절히 소박하거나. 보통 야외에서 결혼식을 진행할 경우 디렉터의 연출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데,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인테리어가 있는 실내 레스토랑이어서, 엄청 화려한 연출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고가의 디렉팅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 반대로 적절히 소박한 연출을 하는 것은? 음... 스스로 정도를 타협만 하면 직접 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망설이게 하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연락해서 약속 잡고, 만나서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하고 이런 것을 잘 못한다. 그냥 '가격은 정해져 있고 와서 돈 내기만 해!' 하는 곳(정찰제)에 가곤 하는데, 스튜디오나 메이크업은 이러한 단가가 정해져 있어 내가 적절한 가게를 찾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웨딩 디렉터는 그런 게 없다. 고객이 어디까지 꾸밀 줄 알고 단가 제시를 하겠는가. 당연히 상담받아봐야 하는 거지. 문제는 상담을 받을만한 적절한 디렉터를 찾는 것도 어려웠고, 우리가 같이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C는 항공사에서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다. 나는 주 5일 출근자였고, 당시 석사 졸업 논문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 데이트도 평일 밤늦게, 혹은 주말 아주 짬 내서 하고 있었는데, 이게 둘이 만나는 것은 괜찮아도 제삼자 누군가와 약속 잡기는 굉장히 애매한 스케줄이었다.


그래도 나는 석사 논문만 끝나면 시간이 날 줄 알았다. 12월 중순쯤 끝나니, 이후부터는 온전히 결혼식 준비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논문 발표 다음 날, 나는 회사의 정책에 의해 상품 기획을 하다가 영업관리로 업무가 바뀌어 버렸다.(현장 경험이 어쩌고 저쩌고...) 덕분에 결혼식 3개월 전에 근무지가 광화문에서 혜화로 바뀌었고, 회사 생활의 모든 것을 (조직부터 업무 지식까지) 모두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정한 지옥이 시작되었다.


평일 6시 40분에 일어나, 7시 20분에 출발, 8시 20분 도착. 일 시작, 그리고 퇴근은 오후 9~10시에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심지어 1월 말쯤에 강추위 속에 외근을 돌다가 독감에 걸려 쓰러지기까지 했다. 청첩장도 만들어야 하고, 그걸 또 모임을 주최해 돌려야 하고, 결혼식장 꾸미기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그 날의 주인공인 우리를 꾸며줄 웨딩드레스/턱시도 준비, 메이크업 (어른들까지) 준비, 게다가 예물 준비, 예복 준비, 예식 내용 준비, 결혼식 때 재생할 동영상 준비 등 갖가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정말 울고 싶은 지경이 되어버렸다.


내가 현장 부서에 발령을 받고 극악의 출퇴근을 하면서, 디렉터와 계약하는 것은 포기했다. 어찌어찌하여 마음에 드는 디렉터를 골랐다고 해도, 계약 후 일들이 제대로 진전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수많은 구상 끝에, 잘만 준비하면 결혼식 연출은 굳이 디렉터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꾸미기' 그 자체는 최소한으로 하고자 했다. 이미 머릿속에 모든 것이 구상되었다.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지만,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이 있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 고려해야 할 영역은 대략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결혼 아니고 결혼식이다. 오직 예식만 생각하는데도 그렇다.) 


1. 결혼식을 위한 신랑, 신부 꾸미기 - 웨딩드레스, 턱시도, 메이크업 등
2. 결혼식 내용 준비 - 식순, 사회, 혼인서약서, 음악, 축가 등
3. 결혼식장 꾸미기 - 꽃 장식, 전시 이미지, 콘셉트 연출 등 


어떤 결혼을 하든 1, 2번은 무조건 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혼의 방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보통은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 버진로드를 덮는, 뒤태가 화려한 웨딩드레스 중에서 고른다. 앞태는 달라도 뒤는 항상 화려하다. 그래서 도우미가 드레스 태를 잡아주어야 한다. 하지만 셀프 웨딩이나 스몰웨딩에서는 신부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장소도 특이한 경우가 많아 가동성이 있도록 발목 위 드레스나 딱 발끝을 가리는 드레스를 주로 입는다. 결혼식 내용도 주례를 모실 것인지, 편지를 읽을 것인지 등의 차이로 구성이 된다. 


하지만 3번에 얼마나 관여되어 있느냐에 따라 할 일의 범위는 무지막지하게 넓어지고, 난이도는 극악이 된다. 대부분 일반 웨딩은 3번에서 '셀렉'만 하면 되지만, 셀프 웨딩을 선택하는 순간 3번이 무궁무진해진다. 우리는 거기에 더 해 이를 진두지휘할 디렉터 없이, 신랑 신부가 직접 모든 것을 준비한 것이다. (내가 못 다 이룬 연출의 꿈을 내 결혼식에 펼쳐 보겠다며, 모든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당시 이를 준비하면서 잃은 것은 살이요, 먹은 것은 욕이요, 남은 것은 경험과 돈이었다. 


매일 밤 10시쯤 퇴근해서 퀭한 눈으로 청첩장 만들고, 영상 편집하고, 주말에는 약속을 잡아 청첩장 돌리고 하는 모든 일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서 나는 본의 아니게 살이 쭈욱 빠졌다. 덕분에 미리 피팅해서 구매한 촬영용 미니 드레스가, 실제 촬영 시에는 너무 헐렁해서 팔 부분을 다 옷핀으로 잡아야 했다. (물론 그 살은 결혼하고 다시 쪘다)


결혼식 전날까지 준비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결혼 당일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테이블을 세팅해야 하는 건 과제였다. 우리는 꽃 장식 대신 화분을 준비했고, 모든 식사 테이블에 화분을 올려놓았다. 버진로드 또한 화분으로 꾸몄고, 이 모든 화분은 하객들의 선물이었다. 테이블마다 화분을 놓고, 화분과 사진전에 전시한 사진 & 액자는 가져가셔도 된다는 안내문을 올려놓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손을 빌렸다. 


친한 사람들에게 결혼식에 꽤 일찍 와달라고 부탁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왜 셀프 웨딩을 한답시고 주변에 폐를 끼치냐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 건 돈 주고 사람을 고용해야지, 왜 손님한테 일을 시키냐는 것이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속상했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새롭고 신나는 경험이라며 흔쾌히 일찍 와주었고, 걱정했던 세팅은 일찍 끝나 사람들끼리 곳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놀았다. 


우리가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하면서 돈은 확실히 매우 적게 들었다. 세븐 스프링스를 꾸미는 데만은 다 합쳐서 100만 원도 안 됐을 것이다. 이를 위해 C는 쉬는 평일에 양재 꽃시장과 고터 꽃시장을 열심히 탐색했고, 우리는 같이 동대문 천 시장을 돌아다녔으며, 아버님은 신부대기실을 대신할 포토월과 예식대를 세팅하느라 결혼식 전날 세븐 스프링스에 와서 드릴을 돌렸다... 


이 모든 프로세스들이 우리 기억에 남고 몸에 남아, 지금은 하하호호 말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지만, 사실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3월 결혼을 앞두고 우리는 1월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한창 결혼 준비하던 기간에 같이 살다 보니 사사건건 의사 결정에 다툼 거리가 많았다. 지친 하루의 끝에 서로 얼굴을 보며 쉴 시간이 없었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곧 하루 종일 미뤄왔던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되었다. 지금 결혼한 지 4년이 지나도록 거의 싸운 적이 없는데, 그때가 유일하게 큰소리가 많이 났던 때였다.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할 수밖에 없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장단점을 뛰어넘는 한 가지 함정은, 결혼식에서 어떤 난관이 있을 때마다 신랑, 신부가 직접 가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디렉터 혹은 현장 지휘관이 별도로 필요한 이유다. 예상보다 일찍, 울산과 대전에서 대절 버스 타고 온 손님들이 도착하면서 한 번에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우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직 완벽하게 세팅이 되지는 않았는데. 아직 옷도 드레스로 갈아입지도 않았는데! (얼굴은 신부화장에 옷은 추리닝이었다.)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은 잘 모르다 보니 모든 것을 우리에게 물어보았고, 우리는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질러가며 대답해야 했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그냥 방긋 웃고만 있어도 모자란 시간에, 그 넓은 레스토랑을 뛰어다니면서 외쳐야 하다니. 손님맞이와 일처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결정적으로 결혼식 시작 직전, 설정해놓은 앰프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 결국 신랑이 뛰어가 직접 손봤다.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신랑이 세팅 존 안으로 뛰어가는 모습이란. 아, 험난하다 험난해. 


어떤 행사를 치르는 데 있어, 사람마다 맡은 역할이 있는데, 각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지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소화하려다가는 탈 난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직접 진행한 셀프 웨딩이었고, 그만큼 뿌듯했고 추억에도 많이 남았지만, 이왕 더 아름다운 모습만 남기고 싶다면 결혼식날 만이라도 현장을 지휘/관리하는 별도의 책임자가 있어 이걸 이끌어 준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 보고 나서야 깨달은 교훈이기도 하다. 솔직히 부서를 옮기지만 않았어도 확실히 잘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어찌할 수 없는 법. 그래도 나름 큰 사고 없이(자잘한 사고는 아주 많았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우당탕탕 결혼식을 지켜본 친구들은 아무도 셀프 웨딩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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