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오늘 하루의 흔적을 나의 몸짓과 표정에 담은 채 집 문을 연 내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고심해 나의 지갑이 화내지 않을 정도의 가격으로 산 엽서와, 낡은 책 방에서 조심스레 고른 책을 찢어 벽에 붙여놨는데,
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것들이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었다.
깊은 한숨을 허공에 한 번, 바닥에 한 번 내뱉은 후,
몸집이 커져 움직이기 쉽지 않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초라한 모습으로 뒹굴고 있는 종이들을 집어 들었다.
접착이 아쉬웠던 것인지, 접착면이 별로였던 것인지 잠시 고민하지만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깊은숨만 퍽 퍽 내쉬며 좋을 대로 헝클어지고 달라붙어 있는 종이들을 조심스레 혹여나 찢어질까 떼어낸다.
내가 어떤 배치로 붙여놨는지 머리가 하얘진다.
어쩔 수 없지.
조심스레 내가 좋아할 만한 위치로 다시 테이프를 뜯어 하나하나 붙여간다.
내일은 꼭 접착력이 좋은 놈으로 하나 다시 사야지. 속으로만 다짐한 채. 언제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충, 아주 대충 수습만 한 뒤 창가 쪽 조명을 켜고, 창문을 연다.
하늘과 노을의 색을 반 반 섞어놓은 듯한 그 생명을 보고 싶다.
말간 하얀 빛을 머금고 있는 피어오른 그 생명을 보고 싶다.
다시 한번 이런.
집으로 들여올 때와 다르게 몇 송이가 어느새 빛을 잃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물론 꽃이라는 것이 피고 지는 것이라지만,
6평 방 안에 나 외에 다른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이 화분 하나기에 씁쓸한 속내는 어쩔 수 없다.
전부 다 이리 되어버렸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다행히 몇 송이만 빛을 잃었다. 그리고 감탄한다.
몇 송이가 빛을 잃었지만, 그 위 작았던 봉오리가 더 선명하고 말간 하얀 빛을 품고 있다.
언제라도 피어오를 준비가 되었다고 꽤 작게, 하지만 아주 강하게 소리치는 듯하다.
열몇 시간의 외출한 나의 몸을, 짐을 정리하기도 전, 사 온 사발면의 물을 올리고, 다시 허리를 숙여 즉석밥을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동안 향을 꺼내 불을 붙인다.
몸에 좋지 않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런 이런 성분이 몸에 치명적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상관없다.
다른 누군가는 외로움이 더 몸에 해롭다고 그러더라. 어차피 몸에는 다 해롭다.
연기의 피어 오름을 잠시 구경하다, 즉석밥이 다 데워지고, 물을 올렸던 사발면이 다 익었다.
좋아했던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유튜브 클립이 나온다.
본다고 말하기는 무안할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라면과 밥을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내가 배고팠었는지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채우는 것이다.
얼추 다 먹고, 조용히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며 담배 한 개비를 태우다 다 피우기 귀찮아 서둘러 끄고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아직 창문을 닫지 않아 여러 빛을 담은 생명체가 보인다.
제멋대로 뻗은 줄기는 자기를 바라보라는 듯 작은 바람에 아주 작게 흔들린다.
꽃은 어쩌면 나보다 지혜롭다.
피고 질 때를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이 어디서 영양분을 얻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과한 것이 해롭다는 것을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말해주며, 증명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알며, 그것들이 잠시나마 만개할 때는, 모두의 시선을 끌고 향기로 매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꽃을 좋아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이야기할 때 꽃을 상대방에게 쥐여주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슬퍼할 때 꽃을 조용히 사진 앞에 내려놓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감사를 표할 때 꽃을 상대방에게 겸손히 내미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그 꽃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도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지만, 신과 나의 형제들 외에 나에게 사랑을 속삭여줄 이성이 있을까.
춥고 외로운 날 조용히 다가와 나의 손을 꼭 잡아주며,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을 속삭이며, 위로와 공감의 말들을 하는 입술의 움직임을 내가 볼 수 있을까.
나는 깨끗하지 않다. 그래서 더 깨끗함을 갈망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갈망한다. 음수의 제곱이 양수이듯, 나와 비슷한 사람과의 사랑이,
결국은 깨끗함을 내지 않을까 헛된 망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어쩌면 나는 외로운 사람이리라.
어쩌면 나는 외로운 남자이리라.
그래도 내가 다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먼 길을 가보지 못한 한 여행자가 이제는 정말 그곳에 가 보리라 되뇌는,
메아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