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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Oct 26. 2024

싸구려 낭만

나의 낭만은 저렴하다.


남들처럼 차를 타고 훌쩍 떠나거나, 맛있는 파인다이닝과 술을 마시거나,


비행기를 타고 사람들이 일생일대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곳을 방문할 수는 없다.


모아둔 돈 한 푼 없이 퇴사한 퇴직자에게 이 모든 것은 사치이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 방문해 혼자,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식사 한번 하는 것 또한


나에게는 쉽지 않다.



내가 즐길 수 있는 낭만은 단순하다.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에서 심사숙고하여 가장 저렴한 커피를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어쩌면 내가 저렴하여 좋아하게 된 소박한 거리를 조용히 걷고,


어쩌다 한 번 무료, 혹은 아주 값 싼 전시회를 가고,


좋아하게 된 장소들을 아주 조용히 방문하고,


조용히 웃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아주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나의 아주 값 싼 낭만이다.


25만원짜리 아주 싼 기타를 튕기며 가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6평 방을 쿠팡에서 산 아주 싼 조명과, 연남동 소품샵에서 가격 비교해가며 산 포스터를,


혹여나 벽지가 뜯어질까 아주 조심히 붙여놓는 것.


조금 더 나의 방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로 만들고 싶어 


침대 프레임을 해체하고 매트리스만 놓는 것.


아주 저렴한 인센스와 향목을 방에서 태우는 것.


그것이 나의 아주 값 싼 낭만이다.



그래도 아주 싫지는 않다.


나의 치졸한 지갑이 나의 하루하루를 다그치며 보채기는 하지만,


예쁜 곳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맛있는 식사를 하는 그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해외여행에서 아주 예쁜 사진들을 찍고 올리는 그들이 나의 인스타그램에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삶이 싫지 않다.



소소하게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실 때 느껴지는 행복이 나는 좋다.


아주 조용한 무료 전시회에 방문하여 느껴지는 차분함이 나는 좋다.


좋아하는 거리를 걸을 때 내가 기억하는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좋다.


조용히 웃고, 조용히 울 수 있는 감정이 내 안에 있는 것이 나는 좋다.


아주 저렴하게, 소박하게 나의 방을 꾸며,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왔을 때 


나의 취향이 나의 집에 묻어있는 것이 나는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싸구려 스피커에서 가끔 지직대는 소음과 함께 나오고,


춤추는 연기와 함께 내 코를 스치는 인센스 향과 향목의 향이 나는 좋다.



나는 초라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나는 가난하지만 궁색하지는 않다.


돈과 행복이 정비례한다고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게 더 많은 돈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을 하겠지만,


지금의 내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나는 나의 선물같은 인생을 조금씩 더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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