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더 이상 쓰지 못할 수도 있겠다.

by TheGrace

부끄러움만이 가득한 2025년의 스무날이 지났다.

나에게는 모든 일들이 실패가 되어버렸다. 사람들과 스스로 단절되었으며,

깊고 추운 나의 방 안에 틀어박혀 담배와 향만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잘 이겨내 보려 매일 아침 달리기와 생각의 갈무리를 시도하였으나,

내가 했던 그 어느 시도들처럼 처참히 부서지고 있다.

따스한 말과, 따스한 표정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의 창작은 나의 깊은 내면에서 나온다.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스스로 발을 들여 감정들을 추리고, 그것들을 정리하고, 그리거나, 부른다. 어쩌면 그 깊은 심연 속에 스스로 잡아먹힌 것이 아닐까.

나의 창작은 나의 결핍 속에서 나오지만,

이제는 채워질 수 없는 그 결핍에 나의 서른이 잡아먹힌 것이 아닐까.


서른이 되어버린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다. 아직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잘 모른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 신음하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차갑고 긴 밤을 그저 나지막한 욕설과 희뿌연 담배연기로 보낸다.

비어버린 내 통장 잔고는 나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고기를 먹고 싶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먹고 싶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을 먹고 싶다.


처량하게도 그것들을 먹을 수 없다. 어떠한 사연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닌, 먹을 돈이 없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돈으로 집 앞 편의점에 슬리퍼를 끌고 들어가 담배 두 갑을 산다.

그리고 탄 자국이 거슬리는 냄비에 라면을 끓여 입 안으로 쑤셔 넣는다.

가끔씩 라면 수프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오지만,

최소한 하루에 한 끼는 어떻게든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으로 쑤셔 넣는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말을 수 차례 이상씩 해 왔지만, 정작 나의 삶은 조금씩 더 망가져간다.

산사태처럼, 처음에는 비로 인해 땅이 젖는다. 이 비를 말려 줄 해는 뜨지 않고 조금씩 더 비가 내린다.

나를 붙잡고 있던 나무뿌리가 흔들리고, 조금씩 땅이 흔들린다.



마음이, 삶이 무너져 내린다. 그저 무너져 버린 나의 마음과 삶이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할까 그것이 걱정이다.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돌보기보다는 나로 인해 다칠 누군가를 걱정한다.

멍청한 서른이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말을 했던 자신이 미워진다. 그 모든 말들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작 나의 삶을 응원하지 못했고, 나의 삶을 만들지 못했다. 나의 이십 대를 제대로 세워가지 못했다.

그저 망가져 버린 나를 뒤로 하고,

피를 흘리며 조금씩 주저앉아가고 있는 나를 뒤로 하고 모든 이들의 행복과 행운을 바랐다.


스스로를 외면했다.


오른쪽 발목과 발에 있는 화상 흉터보다 더 큰 흉터가 남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 걱정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면 될까. 이번에도 나는 살아남을까. 쓸데없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유영한다.

더 이상 나의 흉터에 대하여 변명하고 싶지 않다. 변명하기 부끄럽다.

변명할 수 없도록 떠나는 것이 더욱 낫겠다.


나의 창작이, 나의 그림이, 나의 글이, 나의 노래가 유작이 될 수 있을까.

유작이라는 단어는 결국 이전에 그 사람이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그 작별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단어일 수 있겠다.

나의 창작과 내가 남긴 것들은 '유작'이 될 수 있을까.


혹은 그저 폐기 처분될 데이터 조각에 불가할까.


나의 자국들이, 발걸음들의 흔적이 남겨진 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떠날 준비를, 그리고 그 암시를 조금씩 해야겠다.

그래야 이 산사태에 휘말릴 모든 이들이 충격 대신 납득을 하지 않을까.


병원에 다시 가 봐야겠다. 먹지 않고 있던 안정제가 그리워진다. 남은 날의 날 수를 알 수는 없으나,

조금만 편안히 있다 가려한다.


이곳에 글을 또 언제 쓸 수 있을지, 확답하기 어렵다.


그저 미리 남겨놓는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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