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Grace Nov 25. 2024

인연이라고 생각되면 어떻게 해?

나는 이렇게 해.

나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궃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어서일까. 나이에 연연하는 편이 아니라는 프레임을 스스로에게 씌우고는 한다.

다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지쳐갈수록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더 생각하게 되는 편이다. 인연이라는 것은 요즘 추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가벼운 만남과 쾌락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관계, 그렇게 관계를 꽤 오랜 시간 지속한 후에야 소위 말하는 '진지한' 관계로 들어가는 요즘 추세에는 '인연'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을뿐더러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들처럼 많은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다른 많은 이들처럼 여러 관계에 있어 초연하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누군가는 나의 진심을 이용하였을까. 많은 생각으로 밤을 지새운다. 나도 이제는 그런 가벼운 만남과 관계를 가져야 할까, 이십 대의 후반에서 이제야 그것들을 찾는 것은 가한 일인가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문다.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이성을 보아도 그 사람에게 관심 내지 호감을 가지기 위하여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 한순간 무엇인가 스파크가 터지고, 그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순간 나는 무섭게도 그 사람에게 빠져든다. 말 한마디, 어조 하나, 문장 하나, 눈빛, 행동, 그 모든 것들에 집중한다. 그 순간 나는 얼어붙어 그에게 말 한마디 거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소위 바보가 되는 것이다.


유연한 관계, 능숙한 관계와 태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혹은 나의 외모적인 부분이 그다지 수려하지 않아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음은 실패감으로 점철되며, 설렘과 호감으로 차올랐던 마음은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고, 날이 날카롭게 벼려져 나의 마음을 하나, 하나,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가장 아픈 방법으로 찌르고, 베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의 마음은 이미 그 사람과 완결을 꿈꾸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에게는 아직 예고편도 시작되지 않았기에, 그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에,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들이 된다. 나에게만 한 편의 영화였고, 결말을 촬영하지 못한 미결의 작품으로 서랍에 가두게 된 하나의 필름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지금처럼 날이 추워질 때, 보일러 가스비가 아까워 냉골 바닥에 앉아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갈 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겹겹이 쌓이고, 내가 상처를 주었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부채의식은 나의 가슴을 누른다. 그때의 능숙하지 못했고, 초연하지 못했으며, 괴로워하며 바보 같은 짓들을 반복했던 나의 모습이 수치심으로 찾아와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하늘을 바라본다.


나는 그대를 인연으로 받았으나, 그대는 나를 지나가는 단역으로 받았다.

영화의 주연은 모두가 기억한다. 그대는 그만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대에게 향하였고, 그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모두가 그대를 갈구하였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는 주연이었으나, 그대에게 나는 단역이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 괴리감은 아주 조금씩 나의 자존을 갉았다. 나의 자존을 갉고 갉아, 그대 앞에서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였으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대가 잘못한 것은 없다. 나도 잘못한 것은 없다. 나 혼자만 인연이라고 생각한다고, 인연이 되지 않는다. 각 객체의 사람 둘이 만나 신비하리만치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산물을 그 둘이 나누어 가지는 그 인연은 그 자체로 신비이자 비밀이리라. 단지 나의 착각일 수도, 혹은 타이밍이라는 것의 양 끝단이 빗나갔을 수 있다.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리면 아무리 거부하여도 그대의 그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그저 그 시절이 그리워서일까, 이루어지지 못한 인연이 그리워서일까, 혹은 능숙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미워서일까.

아니면, 그대가 그리워서일까.

겹겹이 다른 말과 다른 마음으로 가려두었던 그 질문을 하고야 만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이었는데, 이제는 겨울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그대와 만나기로 하였으나 그대가 사라진 계절이 겨울이었다. 나타나지 않는 그대를 기다리며 한 시간 반을 바람과 눈을 맞으며 잠실역 앞에서 기다렸던 계절이 겨울이었다. 그대가 보내준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며 손을 녹이고,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이 혹시 그대일까 내심 기대했던 계절이 겨울이었다. 이제 눈이 와도 기뻐할 수 없다.


인연이라고 느껴지면 나는 모든 것을 준다. 나의 마음까지도.

그리고 겹겹이 쌓여가는 것은 사랑의 짧은 단상들이 아닌, 아린 상처의 흔적들이다.


이제는 내가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