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빌린 후회의 무게

서른 + 열한 달.

by TheGrace

할 말은 많다. 그러나 그 말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다.

추락은 항상 본명을 감추고 있다. 그 이름을 항상 다른 것으로 바꾸어 나에게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그저 한 번의 넘어짐, 잠시 잠깐의 실수, 칼이 되어버린 말 한마디, 이런 것. 죄책감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것.

손을 꼭 잡은 날의 너는, 아마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그대를, 나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아닐까.

기대감보다는 후회로 점철된 하루의 끝을 바라보는 것. 입술 끝에서는 철없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지만, 그 입술을 가만히 닫고, 쏟아질 것만 같은 감정을 되뇌고, 되뇌는 것. 어른이 되어 가는 걸까.


2년 정도가 흘러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나의 마음을 무너뜨린 것은, 노쇠해져 버린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 모습 때문일까. 언제나 건강하고, 언제나 환히 웃는 그들일 줄 알았는데.

아, 나의 서른 살 삶은 저들의 생명력에 빌붙어 자라온 인생이었나 보다.

이십 대 나의 청춘의 푸른색은 나의 몫이 아니라, 나의 부모의 생명력을 빌려서 피어오른 푸르름이었겠지.


이 생이 다 하도록 나는 뒤를 돌아보겠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노쇠해져 가는 저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의 마음속에는 큰 돌이 하나씩 쌓여만 가겠지.

아직까지 완전히 용서할 수 없고, 아직까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저들이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었다는 것이다. 방황으로 십 대와 이십 대를 지나온 나의 과오를 사랑으로 감싸 주었다는 것. 그건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겠는데, 그 크기와 무게가 너무나도 크고 무거워, 이 삶의 전부를 다 쓴다고 해도, 갚지 못하겠다.


제대로 사랑은 난 해 보았을까. 가득히 눌러 담은 연민을 나는 사랑이라고 착각했을까.

후드득 떨어지는 노오란 낙엽의 빛과, 찬 바람이 옷 틈새로 나에게 다가올 때, 아려오는 마음 한편은 왜일까.

눈이라도 소복이 쌓인 어느 겨울날이면, 실패한 수많은 사랑의 조각들이 뽀독 소리를 내며 가슴 한 구석에서 고개를 내민다.


그때의 나는 순수하지 못했을까. 그때의 나는 너만큼 진심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너를, 너를.

한숨을 쉴 때, 함께 놀러 가자 말하던 너의 눈이 생각이 난다. 그때 한번 더 안아볼 걸 그랬나 하는 의미 없는 후회들은 쉴 겨를도 없이 나를 가득 채운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고, 너는 산을 좋아했는데, 한 번쯤은 너를 따라 작은 산이라도 함께 걸어 올라갔다면, 너와 나의 마음의 유통기한은 조금 더 길 수 있었을까. 아니면, 보관 방법을 헷갈린 먹거리처럼, 그저 서로를 아프게만 했을까.


나의 파랑은, 심지어 나는 어두웠다고만 생각한 나의 빛나는 파랑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과 생명력에 빌붙어 자라난 파랑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기괴하고 역겨운 나의 청춘은, 결국 나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나를 사랑해 준 누군가의 호흡을 통해야만 빛났던 하나의 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폐에 연기를 밀어 넣을 때, 그제야 튀어나오는 이 역겨운 연민과 후회는 한숨의 색깔로, 작은 소리의 욕설의 색깔로 나의 눈앞에 드러난다. 저항하는 예술가로서 살고 죽으려 했던 나의 삶은 결국 나는 살고 누군가는 죽어가게 하는 빌어먹게도 비열한 투쟁이었다.


후회하는 삶이라는 것은 결국 떳떳하지 못한 삶인 것이다. 나의 과오와 실수들은 모두의 마음에 빨갛게 박제가 되어 지워질 수 없는 흔적이 된다. 엿같은 것이지.


서른이 사십일 가량 남았다. 나는 이 후회를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니면 이 후회라는 것은, 연민이라는 것은 결국 업보이니, 마지막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한 찰나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부분으로 자리한 것일까. 나는 다시 한번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서로의 밤과 낮을 가지며, 타오르며, 얼어붙은 것들을 녹이며, 비겁해지는 세상과 싸우고, 조금씩 어른이라는 핑계로 단단해지는 서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 있을까.


의문문만이 남는 밤, 그저 나는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간다.

구역질이 나오는 속을 애써 누르며, 필름처럼 재생되는 후회의 장면들을 그저 바라보며,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보며.


다시 일상으로 들어가기 전, 한 글자 더. 더. 더.


마지막 한 마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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