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함에서 내려와, 사유와 침전의 경계에 서다.

세 주의 요약본. 짧은 30분의 글.

by TheGrace

어느 순간, 번잡함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 번잡함에서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많은 이들과 왁자지껄한 관계도 나에게는 너무나 좋았으나,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서 그동안 사유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사유하고 있다.


사유와 침전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 아주 조금의 틈으로도 사유는 침전이 되어 마음의 깊이를 한층 어두운 물속으로 끌어내린다.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면 삶은 불친절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듯이, 사유의 결론이 우울과 침전이 되는 경우는 흔하기까지 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주 운이 좋게도,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 사유와 침전의 경계 위에서 나름의 성공적인 줄타기 공연이 진행 중이다. 내가 눈에 담는 것들, 맺는 관계들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심지어 산책 중에 마주한 나뭇잎 몇 장으로도 수십 분의 사유가 가능해지는 것. 그리고 그 끝이 절망과 새벽의 침울함이 아닌, 감사와 내일을 향한 기대가 된다는 것. 나에게는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매일이 새로운 것이다.


예술인으로 살다 죽고 싶었으나, 지루한 책상 위에 앉아 하루 여덟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의 삶. 퇴근 후 매일 같이 헬스장에서 한 시간을 무거운 것들을 힘써 들어 올리는 것, 그리고 귀가하여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잠들기 전의 몇 시간 중 대부분을 7킬로미터 정도 되는 길을 무작정 걷고 돌아오는 것. 눈을 감으면 잠에 들고,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는 삶. 고요하고 잔잔하나, 침전된 삶은 아니다. 한 시간 사십 분 간의 산책을 매일 같이 할 때 깊어지는 생각들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가. 그동안 담고만 살았던 수 십 가지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탐구하고 - 아직 그 어느 결론도 내려지지 않았으나 - 그 사이에 떠오르는 글의 주제들을 하나하나 메모장에 적어 내려가는 삶이, 그리고 오늘 같은 날 한 토막의 생각을 풀어 적어 내려가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삶은 저주 아니면 절망이라고 생각했던 수년 전의 나와는 다르게, 서른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사실 삶은 잔인하리만치 푸르르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숨을 빌려 어른이 된 서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 하나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 차례의 투쟁과 전투 한가운데에서 소년은 어른이 되어가고 나의 부모는 노인이 되어간다. 잔인한 시간 가운데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그저 호흡하며 살아가며,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며, 밀도는 누구에게나 다른 그 시간을 발맞추어 살아간다는 것은 푸르르고 아름다우며, 숨이 막힐 정도로 경이롭다는 것이다.


경이로운 삶에는 존경과, 존중과 다정함이 있다. 섬세한 떨림이 숨어 있다. 호흡부터 모든 소리와 빛,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에는 파동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각자의 파동이 한 데 어우러져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되는 오케스트라만큼, 우리네 삶은 그저 각자의 파동이 한데 모여 소리 내는 하나의 협주곡과 같겠다. 모든 이들에게 찬사와 존경을!


그래 그러니 살아가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혐오와 조롱과, 조소와, 잔인함과 분노와, 질투 대신에, 우리 사랑하자. 그저 허울뿐인 말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랑하자. 미워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이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미움 대신에 다정함을 가슴 한편에 쌓아두자. 죽여야 할 것은 그저 마음을 꾹 누르고 있는 집착과 욕심이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집착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들을 죽여야 한다. 그러니 그 집착을 죽이고, 다정함을 쌓아두자. 사랑을 쌓아두자. 이상주의자의 독백 같은가? 그럴 수도 있다.


사실 세상을 바꾸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나는 바꿀 수 있다. 나 한 사람이라도 바꿀 수 있다.

그 한 사람이 타인에게 그 영향력을 나누어 줄 때, 한 집단이 변할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갈 때, 어쩌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그 자리에 나는 없을지라도.


그러니 다정함을 쌓자. 사랑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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