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에서 어미로

by 여름나무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분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란 거 같다.


한 벌 뿐인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뼈만 남은 그 거친 손을 잡고

오월이면 연푸른 숲에 둘러싸인 절로 따라가

무엇인지도 모를 것을 위해 빌었다.


누구네 아버지가 아파 죽겠다며 간절한,

제발 살려달라며 비는 마당 굿에 따라가 살짝 챙겨주시는

그저 내겐 맛난 떡을 받아먹고

유난히 샤머니즘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종교가 무엇이냐 물으면 무교라 대답을 하며 살았는데,

알고 보니 난 미신을 믿고 살아가는 거였다.


그래 무엇을 하든 좋은 날에,

손 없는 날에 하자는 것을,

은연 중 지켜가며 답습하였다.


결혼하는 날도

이사 다니는 날도

그 중 제일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날을

좋은 날, 좋은 시간을 잡아

세상을 보게 한 것이다.


내 어미도, 내 할미의 맘도 그러했을 것을 안다.

새끼들

먹을 거 걱정 없고 아픈데 없이

한 세상 편히 살게 해주시기를,

그러한 방법을 써서라도 빌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신비하게도 너무 생생하게 태몽을 꾸었다.

용왕님이 사시는 바다에서 내게로 온 두 아이다.


그럴 리야 없지만, 물보다 고기가 많아 보인 바다에서

딸은 유난히도 시커멓고 거대한 물고기의 모습으로 찾아왔고


아들은 산짐승들이 놀고 있는 솔밭을 걷고 있는 내게

얼굴엔 더러 검버섯도 피어있는, 몇 백 살은 되 보이는 늙은 거북이 모습으로

저 멀리 보이는 섬에서 부터 헤엄쳐왔다.


아직도 마음 아픈 아이는 낳지 못한 아이로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와 절룩거리며

나는 꼭 키워 달라던 장년의 호랑이 모습에 아이다.


봄꽃처럼 아이들은 태어났다.

사실이야 어떻든 그랬음 하는 마음이 커,

그렇게 하고보니 든든하게 믿는 구석도 생겼는지

아무 탈 없이 곱고 바르게 자라

소중하고도 소중한 내 새끼로 엄마 곁에 머문다.


나도 모르게 삼신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고

무턱대고 아무 곳이나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어

새끼들이 무사무탈 하기를

주문같이 외우며 살아가는 나날이 되었다.


매사

선하게 사는 것이 자식들을 위해 복 짓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리 살아내려 애를 써가며 산다.


가끔은 퉁퉁거리는 내 새끼들,

한평생 사이좋게 지내라고

누구도 할 수없는 장기 공유자라며 어미는 협박을 가한다.


아직도 애기라며 가끔 애교를 떠는

태몽 덕에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내 소중한 딸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게 아무래도 미련한 어미 탓일 거 같아 항상 미안하고,


저리 여리고 어린 것이 어찌해낼 수 있을까 싶은데

힘든 아르바이트도 끄떡없이 해내는 내 귀한 아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랩 실로 들어가 좀더 공부에 집중해주기를 들어준다.


보기만 해도 아까운 내 새끼들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것들로 가슴이 아플까?

부디 조금만 아프길,

부디 조금만 맘 상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오늘도 난

빌고 빌며 살아간다.


어버이날이기도 하며 아들의 생일날

그저 있어주고 건강해서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할머니, 손녀가 좀 더 철이 들고 맛나고 좋은 것도 맘껏 사들일 수 있을 때

사시다 가셨으면 좋았을 걸 평생 아쉬워합니다.


우주의 만물이 동일한 중성자가 양자를 만나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것이라면,

다음 생은 ‘김태희’ 급으로 팔자 좋은 아씨로 태어나셨기를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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