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린 후에

by 여름나무

초록이 비를 맞는다

밤새워 내리는 이 비에

말갛게 씻어 시침 뚝

아침이 오면

깨끗이 닦아진 얼굴을 내밀 것이다.


들판으로 달려 나가

두 팔을 벌려 작은 나무로 서고 싶다

밤새워 내리는 이 비에

말갛게 씻어 시침 뚝

아침이 오면

다시 웃으며 마음을 내밀 것이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무수한 일들이

예보도 없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래 예기치 않게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야 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좋았으면,

잘 되었으면 하던 것들이

그러하지 못한 것에

마음이 쓰이고 아픈 것들이다.


그렇게라도 흠뻑 젖어

사는 날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좀 더 나아진 내일이 되어줄 것이다.


아파야만 게워내지는 것들

때론, 폭풍처럼

사정없이 몰아닥쳐 휩쓸고 지나가도

그래 괜찮다.


인생엔 더러 지워내고픈 일들이 있다.

아프지만 , 막상 배워야 할 것들이다.


빗 속을 걷다 보면

그 여름을 만날 수 있을까?

세월을 따라 떠나온 그곳이

몹시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겹겹이 쌓인 상처에

절름발이가 되어서라도

돌아가 쉬고 싶은 곳

그곳엔 그리운 내가 숨어 산다.


어떻게든 견뎌지며 살아진 게 세월이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탕아처럼

가장 평범한 것들에 미소를 띠우며

남은 날들을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빗소리를 들으며

거미줄 대신 모기 망에 걸린

매달린 빗방울을 바라보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에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던 일도

끝나버린 사랑에

세상에 모든 것들이 끝날 것 같은

젊은 날도 지나갔다.


그래도 상처를 내어주며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많은,

사는 날이 살아지는 날이다.


이렇게 비라도 내리는 날이

특별한 날이 되어버리는 뻔한 일상에서도

아름다운 것들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손녀에서 어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