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꽃이 피었다.
산책 삼아 오르내리는 둘레 길에 찔레꽃이 수줍게 피어 은은한 향기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반가움에 온통 마음이 하얘진다.
지나든 길마다 다정한 친구를 만난 듯 인사를 하였다. 혹여 보고 싶다는 말에 서둘러 피어날까봐 가만히 바라보며 웃어주었을 뿐인데, 찔레꽃은 천천히 서둘지 않고 피어 살며시 미소를 건넨다.
오월의 이만쯤, 다투어 피었던 꽃들이 지고 새순이 돋으면 찔레꽃은 그제서야 제 할 일을 하듯 피어났다.
그 조용함이 다가온다.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제일 먼저 날도둑질하듯 보(褓)를 씌워 옮겨 심고 마냥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찔레꽃을 좋아한다.
찔레꽃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아련함에 젖어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움일 것이다. 모유처럼 나를 키워낸 애달픈 그리움이다.
아버지의 부재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주던 엄마와의 삶이 기억되는 곳, 산비탈 아래 작은 초가집엔 몇 그루의 찔레나무가 담장대신 자연스럽게 심어져 있었다.
오월이 되면 그 찔레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웠던 것이다.
내 나이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꽃, 그 흔한 꽃이 찔레꽃이다.
달빛아래 밤길에도 유독 하얗게 피어있던 꽃, 들로 산으로 뛰어놀다 지치면 찾아들던 엄마의 품 같은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찔레꽃을 보면 땟국 물 질질 흘리며 순하게 웃던 사내아이들과 새까만 얼굴로 새침을 떼던 계집아이들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아마 그때부터 마음 밭 어딘가 엔 찔레나무 한그루 심어두고 살아오고 있었을 것이다.
그 꽃이 산책삼아 오르내리는 이 둘레 길에 그때처럼 피어난 것이다. 언제나 제자리에서 말없이 자신의 향기를 내어줄 뿐인 꽃, 어느 꽃에 코를 박아도 그만한 향내를 찾을 수없는 꽃, 그게 찔레꽃이다.
그 찔레꽃이 피었다. 참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꽃이다. 날마다 흔들리는 지리멸렬한 마음과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과 악전고투를 하는 나는, 언제쯤 저 찔레꽃 처럼 피어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