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늘 돋아,

by 여름나무

좀 기운이 납니다.

역시 몸과 마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체형이 확실한 가 봅니다. 일상적으로 하던 일 들인데 뭬 그리 힘들다고, 혓바늘에 물집까지 돋더니 매사 의욕까지 집어삼켜 한동안 사람을 늘어지게 합니다.


그래 미련하게 버티던 짓을 그만두고 아파 눕습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이렇게, 몸이 마음을 따르듯, 마음이 몸을 챙기듯 할까 싶어 스스로 자신을 더 사랑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만하니 주변도 둘러볼 여유가 생기네요. 평일 같으면야 후딱 씻고 대충 챙겨 정신없이 출근길을 서둘렀을 터이지만, 아파진 김에 하루를 더 쉬기로 합니다.


지루하다며 투덜대던 일상을, 이렇게 몸 어느 한구석이라도 아프게 하여 감사함을 잊지 않게 해 주니, 알 수 없는 조화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무심코 지나치지만 소소한 것들은 그렇게 찾아와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하루, 쪼아댈 것도 없을 것이니 늘어질 대로 늘어져 백 퍼 갑이 돼도 좋을 거 같습니다.


눈곱도 떼어지지 않는 상태로 커피부터 한 잔 내려 여왕처럼 우아하게 마셔봅니다. 오늘 하루 호사(豪奢)를 누릴 생각입니다.


살만하다는 신호가 옵니다. 한쪽 엉덩이를 들고 시원하게 방귀를 뀝니다. 기특한 게, 아파 누우니 김 빠진 소리로 겨우 숨구멍을 트더니, 괜찮다 싶은지 주인의 기분을 맞추려 소리마저 경쾌합니다.


행여 깨 먹을까 싶어 커피 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대로 소파에 드러눕습니다. 한 번쯤 뭔가 특별한 일이 있기를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예로 그럴싸한 사내라도 있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살갑게 걱정하고 있다며 전화라도 걸어준다면 가슴이 조금은 연분홍으로 물들까 싶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은 우락부락한 얼굴에 곰 같은 모습으로 방귀나 뿡뿡 꾸며 나자빠져 있습니다. 까탈스러운 건지, 무뎌진 건지 뭘 봐도 그게 그거인 게, 티브이 시청도 금세 시큰둥해집니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눈치 빠른 위장이 또 뭔가를 먹자고 칭얼거립니다. 그렇게 먹어놓고 양심도 없는지, 그래도 떼쓰는 놈이야 어찌 이겨 먹겠습니까? 핑계 삼아 아프니까 잘 먹어야지 하며 이것저것을 챙겨 먹습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나 봅니다. 코르 릉, 코르 릉, 제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깹니다. 한 낮이 다 지나가고 있네요. 어쩌다 보니 하루를 소파에서 다 보내는 듯합니다.


저녁으로 들어서는 하늘빛이 회색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마음도 덩달아 회색빛으로 채워집니다. 편안하다는 게, 행복하단 생각이 듭니다. 기뻐야, 웃을 수 있어야 행복하다 생각을 했는데, 이젠 이러한 것들이 천천히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약을 먹자니 또 죽을 먹어야겠습니다. 약 먹자고 죽 먹고, 죽 먹자고 약 먹고, 참 뭐가 우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이 납니다. 산다는 게 그런 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사는 날, 하루도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이왕이면 살도 안 찌고 배부르게 진달래꽃으로 고봉밥 한 그릇 먹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혹여 위로가 필요한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으로 고봉밥 한 그릇 드시렵니까?


하루가 참 좋다

건물 너머 보이는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저리 예뻐 좋고

한 소동 치르며 앓아낸 후의 가벼움에

마음이 여유로워져 좋다.


하루라도 흔들리지 않는 날이 있을까마는

흔들림 없이 또 어찌 살아있다 할 수 있을까?


낮은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장미꽃처럼

여름이 살며시 다가와 말없이 곁에 앉는다.


발끝을 들고 고개를 내밀면

이 모든 것들과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턱없이 높아지는 웃음소리에

또 빙그레 내가 웃는다

사는 날에 아쉬운 것 없다 했더니

욕심이 없던 게다

모자라서 그렇고 어쩔 수 없어 그랬다지만,

그마저 감사한 날들이다.


창문을 열어두고

들어오는 바람에 숨을 섞는다.


하루가 참 좋다

이제 그만 힘든 날들은 지나가고

희망적인 일들로 세상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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