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밥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넘겨들으며 너는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가 이맘때쯤이었는지 분별이 잘되지 않는다. 고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다. 그리고 사시사철, 계절에 상관없이 비닐하우스에선 별개, 별거를 다 키워 내 시장에 내다 팔고 있으니 제철을 따로 기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별다른 반찬이라야 있을 것도 없는, 반찬거리를 장만 키 위해 써야 할 여분의 돈은 생각지도 못한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내 새끼들 뱃속 든든하게 뭐하고라도 밥 먹여야지 하며 내주던 게 가지나물이었다.
할머니는 마당 끝자락에 붙은 텃밭에 가지를 심었다. 왜 가지인지는 모른다. 제멋대로 쑥쑥 잘 자라서 뚝뚝 떼어, 자신의 속만큼이나 허연 배를 갈라 솥뚜껑 언저리에 얹어 숨을 죽이고 물기를 짜내, 몇 가지의 양념으로 무쳐내면 되던 것이 가지 나물이기도 하였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이, 첫사랑이 부산 남자라서 부산을 자주 오갔다는 동료와 추억의 장소를 나누고 있었다. 코로나 19 탓에 직원식당을 운영하지 않아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선 허름한 식당에선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노인네가 꽈리고추를 넣고 볶은 멸치에 된장에 무친 취나물 등 몇 가지의 반찬을 정갈하게 차려 내놓았다. 거기에 가지 나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첫사랑의 얘기에 가지나물을 섞을 순 없었다. 뜨거운 밥숟가락에 가지나물을 얹어 입에 넣는다. 밥에서 그리움이 씹히고 있었다.
“저년은 먹은 건 다 어디로 보내고”, 삐쩍 마른 등짝을 보며 할머니는 늘 그리 쏟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누우면 곧 배가 고파졌다. 그래 혹여 타지에서 밥 굶을까 싶어, 그리하면 고향을 떠난 막내 삼촌이 절대 타지에서 밥 굶는 일은 없을 거라며 신줏단지 모시듯 담요로 꽁꽁 쌓아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고봉밥을, 열한두 살의 계집아이가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던 것이다. 뱃속이 뻥 뚫려 빈 항아리가 들어앉아 있는 듯 바람이 불었다. 그게 싫어 외로움의 허기인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밥이라도 채워 넣으려 했던 기억이다.
노인이 호박이 듬성듬성 떠다니는 된장찌개를 내오자 이야기는 멈춰지고 그녀들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고학자가 되어 유물이라도 살펴보듯 천천히 반찬을 집어 든다. 죽어서도 견뎌내긴 몹시 힘들었는지 멸치의 등이 모두 굽어 있었다.
외면의 평온과는 달리 가슴엔 파도가 치고 있었다. 이어질 주제라도 묻듯 바라보는 그녀들에게 의미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된장찌개가 뜨겁다 못해 따갑게 목에 걸렸다, 넘어간다. 순간 눈물이 빙 돌았다.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기억이라도 삼키듯 급하게 물을 마신다. 벌떡 일어나 두 손바닥으로 밥상을 치며 ‘나도 추억이 있다. 부산에’ 하며 소리라도 질렀을지 모를 마음이었다.
예전에야 밥을 먹으며 대부분 가족 이야기를,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요즘은 함부로 꺼낼 수도 없는 이야기다. 그들의 숨어있는 이야기가 가족의 해체 일지, 갖고 싶은 아이를 갖지 못해 아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별일이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들었을 것이다.
젊은 날에는 물린 탓에 가지나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찜기에 쪄서 꽉 짜 무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싫었다. 가정살림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가족의 식사는 대충 한 끼 때우고 말자가 돼버린 것이다.
언뜻, 보았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부터 각종 매체들은 건강을 중요시 다루기 시작했고, 그때 티브이에서 다루었던 것 중 하나가 가지였다.
가지는 항암작용에 도움이 되며 안토시 아신, 단백질, 칼슘 등 각종 비타민이 풍부한 채소라서 혈관 건강, 눈 건강, 변비 예방 및 피로 해소에 더하여 뼈 건강, 뇌 건강에 좋다 하였다. 이어 간단하게 볶아먹는 요리법부터 전, 오븐에 구운 토마토 가지 요리까지 선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암 것도 모르던 내 할머니는 정성껏, 그런 화려한 모양새도 없이 그저 새끼들 입에 넣자고 그리 좋은 가지나물을 자주 해주시던 거였다.
다시 가지나물을 찾게 되었다. 그리움이 밀려왔다 부서지며 쏠려 나가는 나이가 되어서다. 남편은 늘 음식으로 엄마가 보고 싶단 말을 대신했었다. 시모가 만들었던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볶은 고구마 순 나물무침이라든가, 추어탕 같은 것들이다. 나도 입맛이 없고 어딘가 이유 없이 아파질 땐 물 말은 밥에 가지나물을 얹어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힘을 얻곤 하였다.
가끔 어떤 것들은 그리운 마음에 대신 들어선다. 음식이 그렇다. 뱃속을 채우고 나면 허전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이다. 가지나물을 먹을 때마다 “쯧쯧” 혀끝을 차며, "가여운 것" 하며 바라보던 할머니의 측은한 눈빛이 생각이 난다. 아마 그 깡마른 것이 이리 통통해질 줄은 상상도 못 하셨을 것이다.
문득, 함께한 가족의 식사가 언제였는지 생각을 해본다. 어버이날 겸 어린이 날 애들과 외식을 하였다. 먹고 싶은 걸 물어보니 피자에 스파게티란다. 그때 내 마음이 왜 그리 몹쓸 정도로 쓸쓸했는지 이제야 알아진다. 미안함 이였다. 그러고 보니 내 새끼들에겐 힘들 때 그들의 뱃속을 채워줄 만한 음식이 없는 것이다. 기껏 배달의 민족인 냥 시켜먹던 치킨과 중국음식, 몇 가지의 분식이 전부다.
예전에 비교하면 사실 과한 풍족함이다. 그럼에도 점점 마음이 예전만 못해지는 듯하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이 함께할 시간은 늘 어긋나게 되었고, 그렇게 엇갈리던 시간들은 함께 만들어야 할 소중한 무언가를 덧없이 흘려버리고 만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서는 길이 뜨겁다. 주말엔 애들과 밥을 먹어야겠단 생각을 한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가지나물처럼 자신의 기원까지 담아내지는 못해도, 못지않은 마음을 담아 애들의 뱃속에 삼켜질 이야깃거리라도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