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렇게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네가 스며들자 나는 번져갔다’.
한지에 먹물처럼 퍼지는 먹먹함이다. 순간 아찔한 어지럼증에 빨려 들고 만다. 아련함이 그럴까? 내달리듯 달려 나가다 멈추고 마는, 그리움에 숨이 멈춰 서고 만다.
작가의 말은 레이먼드의 ‘삶은 종종 아무 곳에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란 시구로 시작해 열대의 나라에서 새에게 털어 논, 운 좋게 아귀가 맞는 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낯선 시장 골목길을 걷다 새 한 마리를 사고 만다. 새 장수의 상술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가 말하길, 새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풀어주면, 새가 대신해 모든 고민을 가지고 날아간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서성이던 터라 미안하기도 하였지만, 그녀 스스로 새장수의 말에 따르고 싶은 털어내지 못한 해묵은 이야기가 남아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여행의 이유는 하지 못한 그러한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숨어있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녀는 새의 둥글고 새까만 눈을 바라보며 고백을 했다.
크고 작은 일들이, 행운과 기쁨이, 심장이 조각나 부서질 것 같은 아픔이, 얻을 땐 기꺼웠고 잃을 땐 괴로운 것들이......
이러쿵저러쿵 해도 아프다는 얘기다.
새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차마 이어지기 못한 그녀의 뒷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했다. 뒤집어보면 그녀가 누군가에게 가장 듣고 싶은 그런 말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독자인 나는 어쩌면 그녀의 새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면 그와 같이 둥글고 새까만 새의 눈을 상상하며 차마 털어놓지 못한 고백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듣고 싶었던, 삶을 빛 쪽으로 이끄는 말들은 단순하고 소박하였다.
‘너 자체로 사랑한다’
‘수고했다’, ‘밥 먹었어?’
‘어디야? 보고 싶어...’
‘너 때문에 꿈을 꾸게 됐어, 반짝반짝 살아 있다는 걸 느껴’.
뜨겁고 아린 삶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줄 것 같은 말들이다.
그녀는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며 독자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기도한다.
그래 난 오지 않은 가장 행복한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 왜 당신은 늘 괜찮다고 말하나요?
“괜찮아요. 전 괜찮다니까요. 앉으세요.” 보다 못해 자리를 양보하는 이에게
몹시 취한 남자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버스 안에 서있기를 고집한다.
참 외롭게 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꼿꼿하게,
괜찮다, 괜찮다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허물어질 수밖에 없을 때
그는 어떤 방식으로 견뎌내게 될까?
왜 아니다, 란 말을 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늘, 왜 그렇게 괜찮다고만 하며 살게 되는지.....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아홉 살 이후, 선배의 어머니를 통해 처음으로 엄마의 밥상 한 귀퉁이에 앉게 된 그녀, 그 엄마는 봄부터 가을까지 곰실곰실 길러 수확한 먹을거리들을 끊임없이 상자에 담아 도시로 보내준다. 그 상자를 묶은 끈은 가위나 칼로 싹둑 자르면 안 되었다. 힘이 들어도 손으로 풀어야 한다는 게, 인생은 그만큼 인내심과 정성을 쏟아야 함을 말없이 가르쳐주는 부모의 언어였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자녀들은 사람을 먼저 내치거나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일, 요령을 피우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못했다.
"늬 엄마가 살아있었더라면 더 잘해줬을 텐데"
“살아계셨어도 이렇게는 못했을 거네요.” 그녀가 미쳐 못다 한 말이다.
지친 하루를 끌고 집으로 들어섰을 때 그런 엄마의 택배 상자를 받게 된다면? 상상만으로 눈물이 차오르는 일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끈을 풀어도 좋으니 그 행복한 택배 상자를 한 번 받아보고 싶은 부러움이 질투를 낳는다.
- 이별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널 꼭 한 번 이 집에 데려와서 삼계탕을 먹이고 싶었어.”
이리 봐도 뜨겁고 저리 봐도 아득했던 시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부는 아침 나는 삼계탕이 담긴 뚝배기를 마주하고 있는 거였다.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자, 지난여름 내게서 빠져나간 모든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에겐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설레며 사랑에 빠졌던 날들은 천국의 시간일 것이다.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천국을 맛본 것이나 다름없다.
부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고백하기를,
내 영혼이 어느 곳으로 가든 상관없다고,
- 일에 대한 지극히 소박한 진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한테 감동한 거였어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슨 일이든,“ 몰입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말 뭔가에 정신을 쏟으면 눈물이 나는 거? 슬퍼서도 아니고 서러워서도 아니고 그냥 눈물이 나요.”
- 사람 때문에 마음이 다칠 때
“함부로 쏜 화살” 젊은 날의 치기를 비유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그 화살은 타인을 향해서도, 그보다 더 자주 더 깊이 스스로의 가슴에 꽂히는 일이 많았다.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림자마저 미워지던 시절, 자다가도 불에 덴 듯 놀라 냉수를 마시곤 했다.
- 그해 겨울이 내게 일깨워 준 것
인간은 함께 어울려 체온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내가 집을 비운 겨울에 아래층 사람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우리는 얼굴도 모르면서 벽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공급해 주는 화력으로 서로를 덥혀 그 겨울의 한기를 견뎠다.
- 엄마, 아버지도 사는 게 무섭던 때가 있었단다.
해가 지면 그날 하루는 무사히 보낸 거다.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하고, 해 넘어갈 때까지만 잘 버텨라, 그러면 괜찮다 하셨다.
엄마는 속으로만 삭인 뒷말이 있었다.
“그러다 새벽이 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게 몸서리쳐지게 무서웠단다.”
- 다 외로워서 그래, 외로워서
뭐니 뭐니 해도 사람 중독만큼 치명적인 게 있을까? 사람 중독 또는 애정 중독과 단절하기란 쉽지 않다. 홀로 있을 수 없기에, 고독과 맞설 만한 내면의 힘이 없기에 마음의 빈 곳을 사람으로 채우려 든다.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기보다 사랑이라는 허상에 중독되어 있는 경우는 아닌지, 한 때는 ‘외롭다’는 단어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어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 살아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
살아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이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일용직 신세였다. 비정규직이었다.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두기 힘든 것, 그게 행복이었다.
행복에 대해 겸허해지기로 했다. 드릴 기도라곤 오직 “감사합니다” 뿐임을 깨닫자
더 자주 행복해졌다. 어쩌다 하루 공치는 날이 있어도 오래 불행하지 않았다.
다음 날 벌어 다시 따뜻해지면 되니까.
- “나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죄를 저질렀다,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작가가 ‘보르헤스’의 ‘후회’라는 시 구절을 인용한 부분을 이용해 둥글고 새까만 새의 눈을 상상하며 고백한다. 고로 나는 죄인이다. 살아가는 날에 이만하면 감사하기로 모든 것을 내리눌렀지 진정 행복하다 싶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뚜렷치 않다.
투명한 오후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세상도 낮잠을 즐기나? 착각에 빠지고 만다.
잠들지 못한 나만이, 어딘가에 깨어있을 또 다른 지구인에게 모니터를 통해 메시지를
뚜 뚜 뚜 보내는 기분이다.
바쁜 날에는 생각지도 못하고 산 시간의 흐름이다.
무료함과 평온함을 오가는 감정에 당황스럽기도 한 그런 날들이 대부분이다.
낮은 꿈 깬 자들의 또 다른 꿈의 세계라 했던가?
뜬금없이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게 꿈 속이라면 오늘은 나의 익용이라도 불러야겠다.
그 익용을 타고 저 멀리, 더 높이 날아가 아름다운 지구를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
뚜 뚜 뚜 안부를 간절하게 보낸다.
덥고, 지치고, 가라앉는다 싶을 땐 묵은 영화라도 보시며 한 캔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