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성격에 비해 참 더딘 걸음걸이다. 그런 나는 아침 출근길마다 지하철역에서 몇몇의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이 뜻하지 않는 만남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럴 때도 있지만, 뭔가를 읽거나 생각을 하다가 의도치 않게 그들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러다 가끔 걸음을 맞추려는 이를 만난다.
가장 곤란한 순간이다. 기껏해야 십여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다. 더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공통적인 주제(어쩌다 보면 흉이 될 수도 있다)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 폭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다 써야 하는 것만큼 힘든 것 또한 없단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여 결국은 천천히 가겠다며 먼저 가기를 요청하고 말게 된다.
혼자 걷는 아침 길이 좋았다. 길가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음식 냄새며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가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들리는 어투로 사람을 그려보는 일은 가끔, 나로 하여금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하거나 새로운 소설책을 집어 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도 하였다.
그러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선, 먼저 걸어간 동료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운 좋게 초록빛 신호등에 급하게 건너간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다시 만나고 마는 것이다.
빨간 신호등을 보고 배시시 웃음을 짓는다. 도진 개진이라 했던가? 이래저래 바쁘다며 서둔 걸음도, 찬찬히 가다 보면 가겠지 하는 걸음도 결국 신호등에 잡혀 다시 묶임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신호등이 바뀌면 다시 벌어질 틈이겠지만, 크게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살다 보니 삶도 이렇게 신호등 앞에 멈춰 서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뜻밖에, 강 건너 불구경 같던 '코로나 19'가 내게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목감기가 오는가 싶더니 열은 오르고, 그럼에도 병원으로 달려가질 못했다. 37.5도 이상의 열이 오르면 '코로나 19'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야만 병원 방문이 허락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이상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고열은 신이 난 듯 삼지창이라도 들고 몸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며 신나게 공격을 했나 보다.
덕분에, 정말 덕분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한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래 넘어진 김에 쉬어가기를 한다.
몽롱하니, 잠시 꿈결인가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근처 병원에 누워 있었다. 새벽빛에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에 잠이 깨었다. 순간에도 언젠가 이런 두런거림에 잠이 깨었던 적이 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이 오기엔 시간이 필요했고, 한참을 누워 기억을 따라 들어가기로 했다.
기억 끝에서 슬픔이 묻어난다. 어릴 적 외가댁서 잠든 날 잠결에, 잔기침을 간간히 섞어가며 오래간만에 친정을 찾은 딸과 그렇게 두런두런 하시던 외할머니의 소곤거림이 생각났던 것이다.
사실 아픈 걸 빼면, 병원생활이라는 게 여자 입장에선 할 만하였다. 해주는 밥 먹고 누워 지내는 일, 심심하면 환자들과 수다를 떨고, 지치면 다시 잠을 자는, 먹고 자고 가 다인 날은 쉽게 주어지는 그런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번쯤 이리 아파볼 만도 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병원신세를 지다 보니 귀가 바빠졌다. 낡은 침대가 삐걱삐걱 소리를 낼 때마다 젊고 늙은 아낙네들의 이야기는 보태져, 사돈에 팔촌도 모자라 뼈만 남았을 무덤 속의 유령마저 소환해 나로 하여금 삶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결국 억울한 일도, 허무한 것도, 감사한 일도 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자는 얘기들이다.
몸이 아프다고 마음이 약해져서일까? 보이는 것들이 정겨워진다. 허름한 대합실에 앉아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세상을 바라보는 여행자처럼, 모든 것에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시선이 자애로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빨간 신호등이 초록빛으로 바뀌는 순간인 것이다.
농 삼아 인생 별 거 없다는 말들을 가끔 해 왔지만, 이 말이 인생이 너무 특별해 별거를 둘 수 없단 소리란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신체의 어느 부분도 아프지 않고 잠 깨어나는 아침으로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하루, 자신을 자신이 책임지며 살아가는 날들만으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인지 신호등 앞에 멈춰 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많은 것들이 나에게 빨간 등을 깜박이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단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신호등을 무시하며 무단횡단도 서슴지 않는 행동을 보탰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내가 왜 이리 게을러졌을까 하며 반성을 했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태껏 바쁘게 살아오느라 모든 것이 소진되었던 것이다. 신체의 노화만큼 마음도 따라 늙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신호등 앞에 서게 되었다. 멈춤에 의미를 천천히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동안은 몸의 조각조각을 살피는 수선공이 되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어느 신호등 앞에 서있는지 천천히 살펴보는 습관을 길들이도록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