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by 여름나무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매년 여름의 기억은 다르게 무치고 있었다. 어떤 여름은 점점 짙어지는 초록으로, 또 어떤 여름은 안갯속으로 숨어,


그러나 어떠하든 언덕바지에 올라 바라보는 한여름의 기억은, 작든 크든 수많은 무덤으로 묘지를 이루고 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너는 어스름해지는 저녁만큼이나 충분히 마음이 쓸쓸해지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크게 마음을 어지럽힐 일도, 소용돌이치며 집어삼킬 일도 없는 단조로운 하루를 살아가고, 그러하려 애를 쓴다지만, 사실 잔잔한 호수 위의 우아한 백조처럼 마음은 쉴 새 없이 다리를 휘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날에 어딘가로 무작정 내달리는 마음이 향하는 곳이 책 속이다.


책은 마음이 부딪치는 것들, 서툰 관계를 벗어나 갖는 혼자만의 시간을, 순박하고 신뢰 로운 이웃과 만나 평화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한 여름밤에 길가에 앉아 생맥주라도 마시듯 책의 마지막 대사로 이야기를 펼쳐볼까 한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것인가 봐요."


“여섯 번이래요. 여섯 번! 무려 하룻밤 사이에!”

셀 수 없이 많은 애인을 두었지만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모파상, 호색한이라 불리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 마지막 문장이다. 아주 오래전 읽었다 생각이 되지만 역시 기억엔 하나도 없는 새로운 얘기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이가 들어 읽는 책은 늘 새롭다.


ㅡ글이 좀 길다 싶어 번호를 줍니다. 쉬엄쉬엄 읽어주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1. 모든 아버지의 마음은 그러할지도

열일곱 살이 돼서야 ''잔느''는 수녀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남작인 아버지는 딸을 행복하고 선량하며, 얌전하고 상냥한 여성으로 키우기 위해 성심수녀원의 기숙사로 보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딸을 수도원에 가두어놓음으로 남의 눈에 띄지도, 속세의 일도 모르길 바라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열일곱 살이 되면 순결한 모습 그대로 자기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을 바라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잔느는 성심수녀원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2. 사랑에 대한 소녀의 꿈

그녀는 사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사랑 그것은 2년 전부터 다가오는 불안감으로 그녀의 마음을 채워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수녀원을 나감으로써 그녀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오직 사랑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 줄 그 사람을!

어떤 사람일까? 잔느는 정확하게 그를 알지 못했으며, 그에 대해 생각해 본 일조차 없다. 그는 그였다. 그뿐이었다. 다만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자기는 온 마음을 다 바쳐 그를 사랑할 것이며, 그는 온 힘을 다해 자기를 사랑해 주리라는 것뿐이었다.


오늘과 같은 밤에는 하늘의 별이 뿌리는 빛 속을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몸을 바싹 붙여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터였다. 그리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이 감미롭고 투명한 여름밤에 둘만의 사랑에 젖으며, 오직 사랑의 힘만으로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에까지 다가갈 수 있을 만큼 굳게 맺어져 산책할 것이다.

그녀는 합리적인 공상의 흐름에 마음을 맡기고 미래를 설계해 보았다. 바다가 보이는 이 저택에서 아이는 둘을 낳을 것이며, 아들은 남편의 것이고 딸은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낼 것이다.


3. 여자가 되다

그들의 결혼은 같은 계급에 속해 있고, 동등한 혈통을 지니고 있는 동등한 집안들끼리의 결혼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작과 만나지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를 갑자기 달라져 보이게 하였다. 예전에는 처녀로 잠들었으나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결코 상대방의 영혼까지, 마음의 바닥까지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란히 걸어가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 껴안기도 하지만 결코 서로에게 녹아들어 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 각자의 정신적인 존재는 영원히 평생토록 고독한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4. 결혼생활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부터 줄리앙은 아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더 이상 멋을 부리지 않았으며 탐욕스러운 모습만 드러낼 뿐이었다.


그녀의 눈은 생기를 잃어갔고,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아름다웠던 처녀시절의 모습을 공상하며 지루한 일거리를 하는 게 다였다.


5. 남편

줄리앙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날밤부터 하녀, 로잘리와의 잠자리를 위해 그녀를 혼자 자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이제 로잘리와 그녀의 아이는 같은 아버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내 딸을 이렇게 배신하다니! 그런 파렴치한이 어디 있소, 그는 불한당이고 더러운 인간이오."

신부는 묻는다.

"남작님,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그 사람도 남들이 다하는 짓을 한 것이 아닐까요? 소위 아내에게만 충실한 남편이 어디 그리 많습니까? 가슴에 손을 대고 말해보시지요"


로잘리는 2만 프랑 가치의 농장과 함께 내쳐지게 된다.


6. 한 남자의 여자는 죽고 엄마로서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해도 될 만큼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온전히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을 가졌다.

처음 사랑을 느꼈을 때의 그리운 추억이 가슴에 스며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줄리앙에 대한 사랑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줄리앙은 다시 예전의 멋을 부리기 시작했고 백작부인 질베르트와 불륜에 빠졌다. 남편의 행동은 더 이상 그녀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해선 거의 생각하지 않데 된 것이다.


잔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기로 했으며, 일반적인 애정에 대해 마음의 모든 문을 굳게 닫아버리기로 결심을 한다.


7. 이후의 이야기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이 발견한 어머니의 비밀로 인해 더욱더 견디기 힘들게 고독 해졌다. 마지막 신뢰마저 잃고 만 것이다. 새 신부는 새끼를 낳고 있는 암캐와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밟아 죽임으로써 신앙마저 빼앗아 버렸다.


아들 폴은 잠시 아파 그녀를 불안하게 하였고 또 다른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남편 줄리앙이 백작부인 질베르트와 오두막 속에 함께 있다 백작에 의해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게 되며 사산을 하게 된다.


중학교 입학을 위해 아들 폴은 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폴에게서는 더 이상 그녀가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는 자식이 컸다는 것과 더 이상 자식은 자기 것이 아니며, 늙은이들은 염두에 두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조로운 생활에 싫증과 짜증을 냈던 폴은 학교를 그만두었고, 어느 날 밤 집을 떠난다.


런던으로 여자와 떠난 폴은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편지들을 보낸다. 폴의 부채를 정리하던 남작이 쓰러져 죽고, 소리 없이 그녀를 돌보던 리종 이모마저 폐렴으로 숨을 거두자 잔느는 혼자 남게 되었다.


이제 그만 죽고 싶었던 잔느를 2만 프랑에 내쳐진 로잘리가 찾아와 돌봐주게 된다.

자신에 인생이 운이 나빴다 생각하는 잔느에게, 로잘리는 말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씨가 불행한 이유는 단지 불행한 결혼을 하셨다는 것뿐입니다. 물론 상대방을 모르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다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폴을 찾으러 파리로 간 잔느는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이후 폴은 아내가 사흘 전에 딸을 낳고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편지를 보낸다. 잔느에게 아이를 맡아주기를 부탁하는 편지다.


로잘리는 파리로 가 그 아이를 데려온다. 그리고 천에 쌓여 보이지도 않는 갓난애를 내밀며 말한다.

“도련님은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곧 돌아오실 겁니다. 아마 내일 이맘때쯤일 테죠.”


잔느는 똑바로 자기 앞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비가 곡선을 그리며 화살처럼 날아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문득 생명의 부드러운 온기가 옷을 통해 그녀의 다리와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무릎에서 자고 있는 어린애의 체온이었다. 그러자 무한한 감동이 그녀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 염세주의자인 그만이 사랑이 허무하다 생각하는 것이 아님을 은근히 동의하게 된다.

모파상은 남자라는 동물은 여성에게 충실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결혼이 얼마나 여성에게 외로운 일이 되는지, 이 소설을 통해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사랑을 해봤더라면, 그랬더라면 남자(백작)의 사랑이야기가 좀 더 다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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