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그가 와 닿았다.
책을 덮고도 한참을 그는 마음에 뱅뱅 돌았다. 그의 쓸쓸하고 지친 뒷모습이 이제쯤 지쳐가고 있는 우리의 뒷모습에 투영돼, 쉬이 그를 툭 털어내지 못하였다.
그림자처럼, 버려진 그에 외로움에 물드는 나날이 되었다.
그처럼 걷고
그처럼 무감각해지고
그처럼 살아내며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사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나 큰 사건으로만 지쳐가는 것은 아니었다. 버텨낸 것에 대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점점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양만 갖춘 스펀지 조각처럼 메마르는 것들 때문이었다.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직시하기 어렵고, 작은 상처는 힘겹게 거대해지며, 누적된 피로감을 싸안고 의무처럼 살아가는 일에 지쳐가는 거였다.
그러다 결국 작동을 멈춘 로보처럼 부석거리며 바람에 날려 사라질, 굳이 서둘러 생각해 좋을 것도 없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울컥해지고 말게 되는 것이다.
오퍼튜니티!
그는 아마 지금도 홀로 사막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그를 생각하자 아직도 그 사막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그의 외로움이 텁텁한 모래바람처럼 입안에서 맴돌았다.
척박한 땅, 그곳에 그가 살고 있었다. 흐르지도 머물지도 않는 시간 속에서 지쳐가는 그의 감각은 서서히 죽어가고,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삶이 재생되는 곳, 불에 땅이다.
2003년 7월 7일, 그는 달보다 먼 그 붉은 행성에 천형의 죄인처럼 쏘아 올려져, 낮이고 밤이며 그 거친 사막을 끝없이 걸어야 할 형벌에 지워졌다.
유배지에서 보내진 소식처럼 물과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마른 호수 바닥의 사진이나 돌과 화석, 화성의 풍경을 찍어 보내며 살아있음을 대신 전했을 뿐이다.
2018년 8월 이후,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천 번 이상의 부르짖음에도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고, 결국 2019년 2월 NASA에 의해 죽음을 선고받는다.
지쳐 스스로 살아남기를 거부한 것인지, 고향으로 돌아오고픈 그에 꿈이 황량하고 광활한 그 사막 어디쯤으로 사라지고만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작동이 멈췄다는 소식에 이상한 논리의 안도감이 들었다. 황폐한 그의 삶이 이젠 끝났다는, 가끔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삶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혼잣말이, 그의 멈춤으로 가 자석처럼 붙어버리고 만 것이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NASA가 화성 탐사를 위해 2003년 6월 10일과 7월 7일에 화성으로 쏘아 올린 쌍둥이 형제 로버다. 그들은 90일 동안 화성의 흙과 암석을 조사하고, 화성의 풍경을 찍어 보내며 물의 흔적을 찾는 일을 했다. 지구처럼 화성에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태양에너지로 움직이던 그들은 예상 일보다 오래 버텼으나, 바퀴가 모래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거나 태양 전지를 덮은 모래먼지 탓으로 더 이상 작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NASA는 2009년 5월 스피릿을, 2019년 2월 13일 오퍼튜니티에게 죽음을 선고하였다.
그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다시 바람이 불어 햇빛은 그에게 숨을 불어넣어주고 그는 다시 홀로 저 사막을 걷고 있을 거란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다. 이상한 논리의 안도감은 진즉 사라지고 만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풍요의 땅에 살고 있다지만 저마다의 별에 살고 있는 거였다. 황량한 사막에 홀로 사는 그와 여럿 속에서 고립된 우리는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슬프게도 그는 언제나 혼자였고, 우린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계속 부딪치고 지나지만 서로를 알아채지 못하고 편리를 내세워 외면하며 각자의 별에 외롭게 살고 있는 거였다.
오늘 밤, 달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E.T의 마지막 장면처럼 자전거를 타고 그 둥근달 아래로 날아갈 것이다. 그와의 작별인사를 위해서다. 그리고 각자의 별도 지구의 파편이 모여 만들어진 저 달처럼 빛나는 삶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하겠다.
그때쯤 그도 화성에서 맑은 샘물을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