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끔,
시간을 서럽게 보내야 한다.
어렵사리 친정을 찾아온 딸의 속내처럼
말끝을 흐리다, 머뭇거리다
그렇게 가기도 한다.
칠일의 날 중 허락된 하루,
낮과 밤을 꼬박 잠들어도 좋은날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곧잘
늦은 시간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그리 말해야했다.
2.
불을 끄고 눕는 곁으로
마음이 생각을 안고 가만히 따라 눕는다.
이래도 될까?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세월을 보내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다.
이즈음 자주 넋을 놓고 주저앉아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져서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너무 숨 가쁘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쯤 쉬었다 다시 걸어도 괜찮다며 자위(自慰)를 해보지만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차올랐다.
3.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하다
그러면 그만인 것을,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별스런 고민을 더하는 일이 되었다.
수명 다한 형광등처럼 깜빡 깜빡
우리에 내일도 저러면 어쩌지 싶어
불안을 안고 사는 오늘이다.
지나친 우려가 되기를
길을 걷다가도 은연중 기도하는 매일이 되었다.
예전 같지가 않다.
내가 그러하며 모든 것들이 다 그러했다.
괜한 말로 인사를 던져놓고
버스 정류장에 멈춰서 발끝을 바라보고 선
딸아이의 다하지 못한 말처럼
바라본 희뿌연 하늘에 사는 게
서러운 나인가보다.
4.
때론, 상처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수밭에 껍데기의 서걱거림처럼
걸음마다 뼈마디는 소리를 내고
파도에 휩쓸리는 빈 조개껍데기처럼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무심코 내뱉다 웃는다.
나이를 든다는 게 그런가보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던, 빛나던 젊은 날은
반짝이며 떨어지는 별동별처럼
가늠할 수 없는 거리로 떨어져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엊그제만 해도
칭얼거림을 하면 무엇이든 손에 쥐어졌던
아직도 마음은 그 아인데,
5.
네발로 걷다 세발로 걷고
두발로 걷다 세발로 걷고 다시 네발로 가는
수수께끼처럼 나이가 들어간다.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인지하지도 못한 채 꽁꽁 싸매고 다니던 아집을
겨우 술에 취해서야 풀어, 버티던 것을 내려놓는다.
우습게도 외롭게 살다 죽고말까 두려워서다.
이런 날, 너란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시간은 되돌아서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강 건너 다른 하늘을 보고 있다.
벌써 여름밤이 시작되었나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이제 더 이상 깜깜한 서울에 밤은 없을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은
동화 속 얘기 처럼 아주 오래전 이야기로 전해질지 모른다.
6.
여자나이 오십대 중반을 젊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해야 할까?
옳고 그름이 없다.
이젠 바쁨보다 단조로움에 지쳐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
P. 맥스웰은
“노년기를 발견의 시간이라고 했다. 그것도 혼자의 힘으로 발견을 해야 한단다”.
다행이다.
‘다음에’, ‘한가해지면 해야지’ 미뤄두었던 것들을 할 시간이 왔다
긴 노년을 맞을 탐사장비도 챙겨두고,
삶에 의미보다는
즐거움을 찾아내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