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늦잠을 잔다고 뒹굴었지만 출근 일보다 한 시간쯤 더 버텨냈을까? 결국 일어나 애견가들의 줄담배처럼 커피를 마시며 티브이를 껴안습니다.
마침,
샾을 앞에 단 그때 그 영화가, 어느 겨울날 눈보라 치는 길을 자동차가 달리는 장면으로 십오 년 전 영화를 보여주네요.
그때는?
나도 모르게 계산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생긴 이상한 버릇입니다. 한참의 나이였네요. 하지만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사는 게 바빠 그 나이가 좋은 줄도 모르고 보내버린 시간이네요.
누구나 그리 말을 흘립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을 잡고 질 좋은 삶을 살게 될 거라 생각을 했지요. 그래 아등바등 학원비에 과외비까지,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며, 정작 무엇을 후회하게 될지 생각지도 못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공부몰이로 쫓아내고 말았네요.
한 번도 생각하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어미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감사하지만, 정작 내겐 잃어버린 부분이 많았던 시간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이제와 좀 다르게 살아볼 걸 하지만,
또 그 상황이 주어진다 해도 역시 그리 살 것임을 부정하진 못하겠네요. 아무리 세월이 변했다 해도 많은 엄마들의 마음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들이 우선인 건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현명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 비어있을,
강하지 않으면서 투명한 빛이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내려앉으며 고요로운 시간을 이어갑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렇게 흐르고 있던 것이네요.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라 젊은이가 되고 또 젊은이는 늙어갔지요. 그렇게 오고 가고 이어지는 삶인데 무엇에 그리 욕심을 내고 애달퍼했는지, 때때로 아파하며 공허함에 흔들리게 되는지,
이치가 그러함을 알면서도 또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대며 살아가게 되는 게 사람살이 인가 봅니다.
이만하면 한소끔 끓어올랐다 할 수 있으니 가만히 가라앉아 숙성되어 감칠맛이 날만도 하건만, 그놈의 마음이란,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라며 뚱해 보이니, 고약하기 그지없는 상대임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주연배우가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참 그러고 보면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죽음이기도 한데, 아직도 자존심이랍시고 아집을 버리지 못해 제 스스로 고립의 섬에 갇혀 오늘도 둥둥 떠다니고 맙니다.
잠시 햇빛이 나네요. 한 이틀, 장마가 소강상태라 하니 수해를 입은 분들의 젖은 살림살이가 조금이라도 정리가 되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점심을 먹고 젖은 마음도 말릴 겸 둘레길을 오릅니다. 비에 도랑의 물소리는 요란해졌고 말끔해진 초록의 잎들은 바라보는 이마저 초록으로 물들일 기세입니다. 새들도 모처럼 멎은 비에 맘껏 날지 못했던 비행을 하며 한껏 노래를 뽐내고 있네요.
걸음걸이가 더해질수록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주렁주렁 매달렸던 잡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음엔 평화가 스며드네요. 뭐 행복이 별건가 싶은 여유도 돕니다. 삶을 위축시켰던 많은 것들은 작아지고 기쁨이 가득 차는 순간이지요. 이것이 아마 산책길에 얻게 되는 진정한 쉼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서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제일 좋아하는 사과 맥주를 껴안습니다. 분위기를 잡고 캔맥주를 마시며 몇 편의 해묵은 영화를 더 볼까 합니다. 언젠가 참 좋아하는 ’ 아웃 오브 아프리카‘같은 해묵은 영화도 캔맥주를 마시며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드네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류시화 님의 시가 있습니다. ‘물속에 물만 있는 것도, 하늘에 그 하늘만 있는 것도, 내 안에 나만 있는 것도 아니기’에 혼자인 시간은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약간의 술기운에 잠겨 영화를 보는 일은 그런 시간을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나만의 방법입니다.
하긴, 언제나 누군가의 곁에 있어도 내 마음과 같지 않아 외로워지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 어쩔 수 없는 관계를 벗어나 이리 쉬는 방법도 제 잘난 맛에 보내는 휴가가 되겠지요.
내일은 그동안 밀렸던, 낮시간에 집을 지키지 못해 수리받지 못했던 고장 난 것들을 몇 가지 수선받을까 합니다. 이왕이면 나도 전지연 급으로 수선받으면 좋은데, 아 또 위축감!
매 순간 오르락내리락하며 부딪치고 작은 외부 자극도 쓰나미급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나날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고요하다면 죽은 자이거나 깨달은 자가 되겠지요. 그리 못되니 약간의 취기에도 이리 즐거워지니, 이것이 사는 맛이라 둘러치기라도 해 위로를 받아볼까 합니다.
그럼에도 사는 나날에 어느 순간이라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집니다.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 각자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남은 스물세 시간을 털어낼 수 있도록,
주어지는 여름휴가를 일 년의 남은 날에 상처를 치유하며 버텨낼 수 있게 하는, 한때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했던 빨간 소독약(아까징끼)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