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때

by 여름나무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고 햇빛은 살금살금 온 방을 뒤져내고 있었다. 어쩌다 코로나 19 덕에 재택근무라며 집에서 뒹굴다 보니 자연스레 게을러진 하루다. 끝없는 게으름으로 침대에 누워 그대로 반 바퀴 몸을 구르자 창밖의 파란 하늘이 온통 마음으로 들이친다. 모든 것들이 그대로 멈춰도 좋을 순간이다.


참 좋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름답다, 멋지다, 저리 고운 것을 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니, 빈약한 어휘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상관없이 기분은 들떠 싱숭생숭 마음은 벌써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었다.


커피 가득 담은 텀블러 하나 챙겨 들고 한적한 들길을 걷다 장터에 들러, 구경 끝에 뜨근한 멸치 국수라도 한 그릇 사 먹고 온다면 딱일, 좋은 날씨인데,


역시 세련미라곤 찾을 수 없는 촌스런 감각이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네 싶을 정도로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예쁜 카페에서 맛난 커피를 마시며 들꽃들이 수북한 곳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맘껏 바라볼 수 있는데, 암튼 오늘은 기분만이라도 그리 내어볼 참이다.


이렇게 게을러도 될까?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고 아무 때고 쓸데없이 초자아는 고개를 쳐든다. 뭔가 하지 않으면 괜히 죄스러운, 해야만 할 것 같아 사람을 서둘게 만드는, 과도하게 발달된 초자아를 무참히 짓밟을 필요성을 느끼며, 이제 주어진 시간을 그냥 늘어져도 괜찮고. 먹고 자고 사는 것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편안한, 다시 아이처럼 놀이를 찾아야 할 때임을 받아들이려 스스로를 꼬드겨본다.


그런 날이 되어도 좋을,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티브이부터 켜고 본다.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리모컨 하나로 앉은자리에서 세상을 여는 것이다.


홀리듯, 어쩔까 싶던 화장실 타일 틈의 문제를 해결해 줄 만한 제품을 어느새 주문했다. 석 달 열흘은 기다려야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명의들이 나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증상으로 내 몸에 온갖 병명을 갖다 부치고, 쳐지는 피부에, 이것만은 꼭 빼놓지 말고 먹어야 할 것들, 맞는 말인지도 모를, 젊게 늙는 비결을 임상실험 결과를 내밀며 증명하는 것들에 귀를 세운다.


평생교육도 이만한 교육이 없을 만한, 환경문제를 살펴보고 국제 문제는 복잡해 패스, 인심 좋게, ‘노래하는 왕진가방’ 프로그램을 따라 고통 없이 걷는 게 소원이라 하시던 어머니를 찾아 그녀의 소원이 기적같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도하듯 함께한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비추이던 그녀의 눈물을 따라 흐른, 눈물 콧물을 닦아내며 보편적인 삶에 위로는 받는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공감하며 별다를 것 없는 내 삶에 그제야 안심을 하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듯 살아지는 날들 중에 유독 적응하기 힘든 날이 있다. 욕심이 고개를 드는 날이다. 존재의 가치를 비교의 대상에 두거나 뜻하던 바를 가만히 접어야 할 때, 세상에 혼자 동떨어진 듯 외로워지는 시간이 그렇다.


그런 날이 되어서야 무심코 지나던 것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게 된다. 말을 섞지 않아도 오가는 길에 익은 사람들, 언제나 제 자리를 지켜주며 함께 삮아가는 건물,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낯익은 거리,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하며 미련을 남기고 떠나는 계절까지, 그 평범한 것들이 말없이 곁을 지켜주며 얼마나 내게 큰 힘이 되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날이다.


지나고 보면 이런 소박한 행복을 알아보기 위해 그리 먼길을 돌아와야 했나 싶은, 파랑새의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였던 것이다.


그 파란 하늘이 회색빛으로 덧칠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열어젖혀 두었던 창문들을 닫아두어야 할 계절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제 소란스러운 마음에 열기를 가라앉히고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때가 되는 것이다.


해가 바뀌며 올해는 명상과 요가를 시작해야지 했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곧 시작할 수 있다 생각을 했던 것이 쉬이 떠나지 않는 코로나 19 탓에 아예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곧, 곧 하며 기다리다 일 년의 반하고 또 반이 넘어가며 한 해가 야속하게도 채 4개월도 남지 않은 것이다.


예전의 생활(코로나 19 이전)을 되찾으려면 내년 하반기는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예상들이 보도되고, 그렇다고 손 놓고 또 그리 허무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고심 끝에, 활동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전을 해볼까 한다. 특대 방석을 맞추고 한 두 개의 도구를 사 너튜브를 이용해 집에서 천천히 시작을 하면 될 것 같다 생각되었다.


그만 게으름을 접어야겠다. 상황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늘어놓았던 핑계에, 나 스스로 넘어간 것은 아닌지 생각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다시 시작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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