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수컷 하나와 암컷 둘)

by 여름나무

행복합니다.

가을볕이 참 좋네요.

집게에 물려 춤추는 빨래처럼 가볍게 둘레 길을 걷습니다. 볕이 좋아 마음 밭도 곱게 말려질 것 같습니다. 홀로 걷는 길에 웃음은 또 왜 그리 새어 나오는지? 지나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면 아무래도 머리에 꽃이라도 꽂아야 할, 정신 나간 아줌마로 쳐다볼 모양새입니다.


무엇도 서둘 것 없는 휴일은 한껏 자고 일어나 차 한 잔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굵은 저음으로 사랑을 속삭이며 달려들어 몸을 비비는, 소중한 대상과 사랑의 행위가 이어지고 달콤한 애무에 마음은 빛보다 밝아져 흐르는 시간도 멈추고 말게 됩니다.


“뿌우웅....”

사랑에 취한 여자답게 코맹맹이에 혀 짧은 소리로 “굿모닝” 하고 받아칩니다. 바람둥이 수컷은 습성을 버릴 수 없는지 어느새 그녀에게로 달려가 가슴을 파고 들어가 묻힙니다. 기막힌 동거입니다.


사랑을 쟁취해야 하겠으나,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자 아껴두었던 보리굴비를 쪄내 늦은 아침 상을 준비해놓고, 하나뿐인 수컷에게 그녀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랑을 받고자 한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몸을 내리눌렀던 초반전의 우세함은 결국, 이내 보아 뱀처럼 몸을 감아오는 그녀의 허벅지에 굴복하고, 싸움은 어이없게도 두 여자의 육탄전에는 관심 없는, 그저 양다리에 필요한 것만 취하고 뻔뻔스럽게 자리를 피하는 수컷의 태도에 맥없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수컷만 보이지 않으면 두 여자에겐 평화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서로 생선 살을 발라 밥숟가락에 올려주며 근황도 차근차근 풀어냅니다.


몹쓸 사람, 그놈들, 한심한 것, 여우 같은, 실력도 안 되는데 그 자리는 어찌 올랐는지, 돈으로 하는 의아심까지, 다양한 메뉴에 요리법은 한 가지로 지지고 볶아내지만, 장담컨대 그 맛은 미슐랭도 별 세 개쯤 너끈히 추천할만한 그런 맛이 납니다. 뒷담화를 조금 까 보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그런 맛이니까요.


“뿌우웅, 뿌뿡”'

밥을 먹다가도 그녀의 방귀는 힘찬 소리를 냅니다.

“입 꼬리 올라간다”

“아니 좋아서, 밥 잘 먹었다고 팡파르도 울리고”

“기분이 나빠지네, 참 어이가 없네, 왜 불쾌하지?”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며 자리를 벗어납니다.


사실, 그녀는 방귀쟁이입니다. 데이트할 때 방귀 처리는 어찌하는지 걱정이 되어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네, 불쾌해지네' 하며 길에서나 시끄러운 장소에서 조금씩 뽑아낸다며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하긴 무슨 시험이라도 볼라치면 가스 분출을 해 모두 비몽사몽 만들고 혼자 멀쩡한 정신으로 시험 잘 보라는 말이 인사가 된 지 오래됩니다.


식사를 끝낸 그녀는 힘으로 수컷을 차지하고 또 눕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젊음에, 탄탄한 힘에 밀려나다니, 마음도 다스릴 겸 둘레길을 걷습니다. 마땅히 분노하고 치를 떨어야 하지만 양 떼들이 노니는 파란 하늘에, 따스한 가을볕에, 살랑이는 바람마저 사람 마음을 꼬드기니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수컷 하나에 암컷 둘이 매달리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사랑을 차지하겠다고 벌리는 신경전에, 아부는 끝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놀고먹으면서 두 여자를 착취하며 사는 그는 입맛도 성질도 까탈스럽습니다. 유기농 식사에 뇌물성 상납의 음식도 제 입맛에 맞아야 겨우 허락을 내리시고 잡수어 주시는, 상전 중에 으뜸 상전이시지요.


언제나 퇴근길이 바쁜 이유가 그것입니다. 젊음에 밀리니 그녀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사랑을 독차지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진종일 낮잠을 자다 먹다 뒹굴다 했을 그가 외롭고 심심할까 봐 얼른 돌아가 온갖 재롱을 떠는 요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적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는 나에게 진한 사랑을 허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을 합니다. 속사포 입맞춤을 온몸에 발사하지요. 그래도 모자라 그를 안고 누워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며 애정을 구걸하다시피 세뇌를 시킵니다.


숲 길가엔 여러해살이풀 쑥부쟁이와 등골나물부터 일 년 살이 향유 꽃까지 늘어져 있네요. 이런 풍경을 수십 번도 더 볼 수 있는 수십 년 살이 사람이란 게 참 좋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다 한 해를 놓치면 또 다음 해가 있어 무엇이든 해마다 기회가 주어질 터니, 감사 마음이 절로 절로 스며듭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포도 한 상자와 매운 떡볶이 재료를 삽니다. 잘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필요에 따라 적군에게도 아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그녀가 티브이를 틀고 떡볶이를 먹으며 포도송이를 알알이 따먹는 동안 수컷을 꼬드겨 이불속으로 들어가 몰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됩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습니다. 매운 떡볶이에 아부를 과하게 집어넣어 독약처럼 먹이고 수컷을 꼬아 낮잠에 빠질 자세를 취합니다. 거친 혓바닥이 얼굴을 핥자 몽롱해지는 것이 아찔하게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꿈인 게지요. 행복합니다. 웃고 뛰어다니고 쉴 새 없이 조잘거립니다. 아줌마의 특권이지요. 듣는 말 반, 하는 말 반, 저마다 요란스럽게 제 주장을 펼치지만, 웃고 또 웃고, 말이 중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떨어진 나뭇잎을 품은 물빛처럼 깊은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뜹니다. 곁에 잠든 수컷의 체온이 따뜻합니다. 언제나 일방적인 입맞춤에 눈을 떠 눈빛을 맞추지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부드럽게 시작된 고백은 언제나 질러지고 맙니다. 사랑이란 게 그런 게지요. 점점 세게, 점점 세게 그것도 모자라 잘근잘근 손끝을, 손등을, 발끝을 물고 맙니다.


“무수리! 상궁 마마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

잠이 깨면 사랑에 욕구도 채워졌겠다 과감하게 상궁 마마가 됩니다. 공주가 되고 싶은 무수리는 정말 어이가 없다며 커피를 대령하지요. 때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 건 당연한 겁니다. 이제 수컷은 그녀의 차지입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수컷 하나가 아주 녹초가 되는 휴일입니다.


창문을 넘어서는 불빛을 따라 밤이 찾아오네요. 집집마다 들러 불 밝히고 오느라 고단도 할 텐데, 밤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녀 옆에서 지지고 볶으며 늙어 간다는 게 이리 행복한데, 정말이지 유추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싫어지는 순간도 있네요. 마음 한 구석엔 늘, 내년 이맘때면 그녀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슬퍼하는 내가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컷 하나는 완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글쎄요. 질투 없는 사랑도 재미가 있을까요?


참 별난 일이지요. 큰일에는 대범해지면서 점점 작은 것들에 겁이 납니다. 그녀가 곁에 있지 않을 시간이 두려워지고, 되돌리지 못할 시간을 게워내고 싶고, 그러다 또 쪼르르 순간에 기뻐 이리 깨방정을 떨며 행복해지니,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우는 게 인생이란 말, 맞나 봅니다.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 쉬는 한 불안을 먹고 산다는 게 정상인 세상이니,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리가 되겠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휴일인데, 생각도 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틀 정도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머리 터지도록 사랑싸움만 하렵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한다는 게, 때론 수컷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양옆에 누워 얼굴을 쓰다듬기도, 엉덩이를 문지르기도 하며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웃음이 절로 절로 쏟아지니 어찌합니까?


오늘이 얼마나 좋은지, 까마귀의 떼창처럼 몰려드는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훠이 훠이 쫓아버리고 오늘만, 많은 날들이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을 부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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