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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by 여름나무

눈이 내려요.

기억하는 그 해의 겨울은 어떠했을까요?

따스했나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렇다 해도 찾아드는 묵직함은 어쩔 수가 없네요.

지나간 것들은 어찌 다 그렇게

비 지난 자리처럼 투명하게 습기로 남았을까요?

즐겁던 일이나 하물며 아팠던 일들까지 말이죠.


꼼짝 않는 겨울입니다. 서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편안한, 땅 속에 숨은 두더지 마냥 겨울을 살아가고 있네요. 한 해의 겨울은 그렇게 살았다 기억되어도, 게으른 겨울이어도 좋겠다 싶네요.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모든 것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싶네요.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또 시간은 흐를 것이고

어떤 모습이든 변화해 가며 또 언젠가를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때 오늘을 생각하면,

참 좋았다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했다 생각하면 그만 아닐까요?


그래도 한 번쯤, 어느 시간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싶은 겨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굴절된 기억이 흔들거렸다

잠시 방향을 잃은 침묵이 어지럽게 날리고

아, 새 날

피어나지 못한 꽃들이 휘몰아쳤다


낮과 밤이 몇 번 바뀌고

꽃비 휘날리는 거리를 걸었던 기억뿐인데

아, 초록빛 세상에 장대비 쏟아지던 날도 있었던가?

뒤늦게 떠오르는 것들이 많아진다

떠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버틸 만큼 버티다 쌓인 폭설의 무게가 문을 연다

또, 한 해 살아갈 일이 얼마나 비장한 것인지

아직 피 빛 가시지 않은 얼굴을 앞다퉈 찍어 보냈다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는 문자들

용서가 되었나 보다

칼날의 상처로 도려내진 사람들

살아 돌아오고 있었다


조금 쉽게 살자 하고 싶었다

붉게 타오르는가 싶다 겨우 뼈대만 추스른,

습기를 잃은 날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는 새해 벽두의 유혹처럼

기꺼이 덤으로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


마음에도 새하얗게 생각들이 쌓여왔다

다짐하듯 이불속에 숨어 저절로 꼽아지는 손가락들

수 없이 휘둘렸을 낡고 헐렁한 나이

가만히 두어도

제 알아서 말았던 몸통을 풀어헤친다

살다 보니 알게 되는 곱씹는 말들,

아무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다


찔금, 더 뭉개면 안 될 것 같은 자책

뒷산에 오른다


언덕배기에 자리한 나무

늙은 어미처럼 홀로 서 있다

달빛도 별빛도 거쳐갔을 빈 가지

지난밤 까맣게 어둠을 덮어쓰고 휘파람을 불었나 보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긴 여운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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