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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종훈 Apr 20. 2018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내보기

오답도 우기면 정답이 된다.



“‘통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뉘앙스 인터뷰 따” 어느 해 여름, 인턴기자였던 A는 선배기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 당시 A는 3만여 명 노조원의 시위가 한창이던 도로 한 복판에 있었다. A는 메시지를 보는 즉시 선배의 지시가 부당함을 알았다. 시위가 행인들의 통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3만여 명의 인원이 도로의 혼잡을 빚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시위대가 집회를 위한 절차를 모두 지켰다는 점에 있었다. 노조는 집회 이전 관할 경찰서에 신고했고, 소음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환형 인턴’ A는 지시를 착실히 이행했다. ‘불편하다’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기다렸다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위대가 집회를 끝내고 지하철역으로 단체 이동할 때였다.


“XX 부끄러운 줄 알아” 집회장소를 빠져나가던 한 노조원은 A를 향해 삿대질했다. 그는 A의 취재팀이 진행하던 인터뷰 내용을 들은 모양이었다. A가 일했던 회사는 노조원들에게 블랙리스트였다. 정확히는 A의 회사가 모든 노조원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왔다. 노조원 틈에 섞여 취재해야 할 때면 카메라에 붙은 회사로고를 최대한 가려 ‘도둑촬영’해야 했다. 노조원이 “어디에서 나왔냐”라고 물을 땐 회사이름을 최대한 얼버무려 발음하기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싸잡아 비난당한 인터뷰이 시민은 잔뜩 긴장했다. “괜찮아요. 빨리 하고 끝내죠.” A는 시민을 다독였다. 그는 인터뷰를 중단하기보다 진행 속도를 높였다. 그때 A의 주머니 속 휴대전화엔 “인터뷰 다 땄냐?”라고 재촉하는 선배의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은 조용했다. 운전기사님, 카메라 기자, 선배기자, A는 본인 쪽 창문의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는 없었지만, 각자 방금 전의 취재와 노조원의 비난, 인터뷰이의 두려움 섞인 목소리를 머리로 톺아보고 있었다. 차 안에 있던 네 사람은 그날의 취재가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내기’였음을 침묵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선배들의 한 숨소리만 정적을 깼다. 한 숨마저 시원히 낼 수 없던 A는 구석에 앉아 스스로를 자책했다. 회사에 도착한 그들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각자 부서로 돌아갔다. “수고했다”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그들은 ‘일’을 잘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A는 “수고했다”라는 표현이 자괴감을 덜어준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후 A는 ‘전환형 인턴’으로서 수고를 다했다. 언론사엔 색깔이 존재한다. 언론은 색깔에 맞는 기사를 내고, 독자는 색깔에 맞는 언론사의 기사를 찾고, 언론은 독자들에 맞춰 다시 색깔에 맞는 기사를 쓴다. 어디를 주목하는지에 따라 같은 현장에서도 다른 기사가 나오는 ‘프레임’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A는 자기검열을 시작했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지만 회사와 색깔이 맞는 취재거리를 취사선택했다. 하루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거리에 내몰린 한 상인의 시위를 취재했다. 건물주는 수차례 퇴거 공지를 했음에도 상인이 짐을 빼지 않자 강제 철거반을 투입했다. 상인은 그 앞을 막아서고 그들과 대치했다. 좁은 도로는 시위에 함께하기 위한 10여 명의 상가연합 회원, 건물주 측에서 고용한 10여 명의 용역업체 직원,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중재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 각 언론사에서 파견된 기자로 빽빽했다. 당시 A가 선택할 수 있는 기사의 방향은 두 가지였다. “‘악덕’ 건물주가 ‘힘없는’ 상인을 힘으로 제압했다”와 “‘정당한’ 건물주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상인의 ‘떼쓰기’”였다. 실제 다음날 해당 현장의 기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됐다. A는 고민 없이 후자를 선택했고, 해당 취재를 마친 후 선배로부터 “수고했다”는 격려를 받았다.


‘아니 뗀 굴뚝에도 연기 난다’ 스캔들이 났을 때 연예인들이 으레 하는 멘트를 A는 몸으로 배웠다. 오답은 우기다보면 정답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우기는 태도가 습관이 되면 오답이 왜 오답이었는지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과거 XX차 노조를 취재할 때만 해도 A는 윗선의 지시가 오답임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극적 합리화’가 ‘적극적 동참’으로 이어지며 A는 오답과 정답을 구분할 수 없었으며, 오답이 어째서 오답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됐다. 매일 일과 후 “수고했습니다”라는 인사는 A의 자책감에 내성을 키워주었다.


사족

자업자득. A는 결국 전환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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