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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종훈 May 04. 2018

능력의 한국식 뜻풀이

철든 28세 A씨



A는 광주에서 외주제작업체를 운영한다. 올해 나이 28세.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A는 전공을 살려 지역 축제 등을 촬영하고 편집한다. A는 과에서 전공을 살린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피노키오>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입학한 새내기는 헌내기가 되갈수록 현실을 자각한다. 그들 사이에서 이는 ‘철이 든다’고 표현된다.


'영-앤-리치'를 외치던 A의 넋두리가 늘었다. 명색이 한 법인의 사장인데 전 방위로 갑질을 당한다. 밤새 편집하고 오전 9시에 잠들어 오전 11시까지 다음 촬영현장으로 나가야하는 일의 반복. A의 일상이다. 몸 축내는 정도에 비례해 돈이라도 벌리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임금 지급은 밥 먹듯 지연된다. 이중 일부는 외주업체 선발 권한이 있는 자에 상납된다. 그들 사이에서 이는 ‘십일조’로 표현된다.


"인생 망 테크탔다." 모두 잠든 새벽 3시. 편집하던 A는 답 없는 단체 대화방에 이렇게 남겼다. 그리곤 전공과 관계없을지라도 시험을 쳐 어딘가 입사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A는 카메라를 좋아했고, 전공을 살린 직업 선택에 자부심을 느끼던 놈이었다. 능력으로 인정받겠다던 그는 사장된 지 2년이 돼갈 즘 ‘철이 들었다.’ A가 ‘능력’이란 단어의 한국식 뜻풀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능력’이란 단어는 사전과 다르다. 능력은 발 딛은 세상에서 열심히 한다고 성취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능력은 직업을 선택할 때 이미 평가가 완료된다. 직업에는 명확한 귀천이 있고, 소위 ‘경쟁률 치열한 시험’을 뚫지 못한 이들은 능력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A와 같은 이들은 기가 막힌 카메라 무빙과 편집 기술을 뽐내도 인정받지 못한다. 평생 육두품이다. 반면, ‘경쟁률 치열한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는 직업 선택 이후 능력이 없어도 능력을 인정받는 역설이 허용된다. 성골이라서다.


물론, ‘경쟁률 치열한 시험’을 통과한 이들의 노고는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문제는 평가가 A와 같은 이들과의 비교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둘 사이에는 요단강이 흐른다. 우리는 이들 간 상하로 나뉜 위계가 있음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그 가로막은 유리천장임을 안다. A와 A가 수당의 일부를 ‘십일조’하는 대상 사이도 마찬가지다. A는 여름이면 팔에 쿨토시를 끼고, 겨울이면 패딩을 두 겹 껴입고 일한다. A로부터 일부를 상납 받는 인물은 여름엔 냉방병으로 ‘따아’, 겨울엔 난방병으로 ‘아아’를 마신다.


인생 공부한 셈치곤 치러야할 비용이 크다. A가 ‘경쟁률 치열한 시험’에 도전하기엔 28세의 벽이 높다. 모범답안과는 반대로 걸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하나로 인정받으려던 그에게 인턴, 토익, 학점 등의 기본 스펙은 높은 벽이 됐다. 또한 면접에선 A의 공백을 꺼림칙해할 게 분명하다. 졸업 이후 1년가량 공백이 있는 면접자들이 반드시 받는 질문이 있다. “쉬는 기간이 있네요. 뭐하셨어요?”다. 이때 “꿈을 찾아 방황했습니다.”라는 답변은 안 된다. 면접관은 A와 같은 인물을 준비된 인재로 보기보다, 군대에서 의가사 전역한 사람쯤으로 인식한다.


‘모범생보다 모험생을 키우는 대학’ A가 졸업한 대학교에 새로운 총장이 당선되며 내건 슬로건이다. 후자가 A라면, 전자는 꿈을 접었던 A의 대학 동기들이다. 2년간 A는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대로 모범생이 돼야함을 알만큼 철이 들었다. ‘능력’의 민주화. 이것 없이 A와 같은 모험생을 또다시 기대하긴 우리 사회가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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