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관과 장마당
평양냉면을 먹었다. 늘어난 순례객들로 전국 평양냉면 집은 정상회담 특수를 맞았다. 나와 지인도 ‘평뽕’에 취하고자 종로 을지면옥을 찾았다. 당시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세 시였다. 하지만 을지면옥 앞엔 40여 명의 대기자가 줄을 서 있었다. 을지면옥은 을지로 3가 공구골목에 접해 있다. 허름한 골목을 걷다보면 하얀 나무판자에 빨간 페인트로 을지면옥이라 적힌 가게 팻말이 나온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작은 간판이었지만, 식당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엔 냉면을 기다리는 이와 냉면을 먹고 나오는 이들로 북적였다.
평양냉면은 맛있었다. 정확히는 생경한 맛이었다. 을지면옥이 두 번째 경험인 내게 평양냉면은 소울푸드라기보단 별미에 가까웠다. 첫 경험은 마포구 을밀대였다. ‘면스플레인’ 지인과 함께 찾았는데 그의 호들갑에 비해 평양냉면의 맛은 그저 그랬다. ‘슴슴하다’라는 표현이 적합한 국물이었지만, 슴슴함 이면의 깊이를 찬양하는 ‘평뽕족’들의 미식평엔 공감할 수 없었다. 미식가 반열에 오르고자 평양냉면 순례를 계획했으나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을지면옥을 찾았던 지난날도 수육 한 접, 소주 두 병, 평양냉면 2그릇에 5만 9천 원을 썼다. 평소 점심 메뉴인 김밥 한 줄, 라면 한 봉을 며칠은 먹을 수 있을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을지면옥의 ‘탕진잼’은 만족스러웠다. ‘평양냉면 How to'를 연신 강의하던 잔소리꾼이 없어서인지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진리의 선주후면(선 소주 후 평양냉면)을 한 덕에 투명한 국물에 가득 찬 육향이 입과 코로 전해졌다. 허름한 간판, 투박한 스댕 그릇, 소박한 내부와 달리 가격과 육수는 평양냉면이 고급음식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평양냉면은 부러 누추한 옷을 걸친 채 ‘서민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평양냉면은 북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평뽕’에 취할 수 있는 주민은 소수다. 북의 주민이 평양냉면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엔 기존 우리가 배웠던 북한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먼저, 평양은 선택된 이들만 찾을 수 있는 성역이다. 북한 내 평양냉면을 판매하는 곳은 옥류관, 고려호텔, 평남면옥 등 모두 평양에 위치해있다. 1961년도 개업한 옥류관 역시 ‘백두혈통’의 단골집으로 주민들보단 당 고위간부와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둘째, 높은 가격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평양 시내에서 냉면 한 그릇의 가격은 300원이다. 먹을 것을 쫓아 정처 없이 떠도는 ‘꽃제비’들이 증가함을 감안했을 때 한 끼 300원의 냉면 한 그릇은 그들에게 사치다. 셋째, 평양냉면 식권은 노동당 간부들의 저들 배불리기 수단으로 활용된다. 북한은 평양시 인민위원회, 공장, 기업소 등에 냉면을 맛볼 수 있도록 식권을 배분한다. 그러나 냉면식권은 노동당 간부들이 중간에서 빼돌리는 탓에 웃돈을 쳐 도매로 판매된다. 때문에 한 그릇 300원인 평양냉면의 실제 가격은 만 원에 육박한다. 암표를 구해야 맛 볼 수 있는 탓이다.
평양냉면은 북이 즐긴 음식이 아니다. 북한 주민의 뇌와 위에 인이 박인 음식은 냉면이 아니다. 탈북민들이 출연하는 1인 방송에는 북에 있을 당시 추억의 음식을 설명하는 콘텐츠가 다수다. 이 중 두부밥이 압도적이다. 두부밥은 우리의 유부초밥과 생김이 유사하다. 두부밥은 두부를 직각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 하루정도 수분을 빼고, 겉 표면을 노릇하게 굽는다. 구워진 두부는 반으로 갈라 밥으로 속을 채운다. 이후 위에 간장과 고춧가루, 식초 등으로 맛을 낸 소스를 올리면 완성이다. 두부밥은 소위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이들의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한 음식이다. 두부밥은 1990년대 국가의 배급이 끊긴 상황에서 민중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이후 두부밥은 리어카에 가득 실려 골목과 장마당 초입에서 판매됐다. 1인 방송에 출연하는 한 탈북민은 “하나에 5원하던 두부밥 하나면 행복했다”며 이조차도 그들에겐 고급 음식인 탓에 “하나를 먹으면 이틀 삼일을 버틸 수 있었다”고 당시 기억을 털어놨다. 두부밥 전문식당을 한국에서 운영 중인 탈북민 청년의 가게 이름은 ‘꽃제비’다.
평양냉면은 남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외신들은 최근 정상회담을 두고 ‘냉면외교’라고 평가한다. 평양냉면 한 그릇은 우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이는 정상회담 당일 길게 늘어선 서울 시내 평양냉면 줄이 증명한다. 성공적인 정상회담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으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를 ‘이니’라고 친근히 부르던 것에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북의 김정은이 ‘으니’로, 그의 동생 김여정이 단아한 외교사절로 평가되는 만큼 북한 주민들의 삶은 희석된다. 평양냉면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를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의 평화무드가 잘못된 것임을 강조하려는 뜻도 아니다. 평양냉면과 두부밥이 이루는 대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최근 한 여행업체는 자유관광객 200여 명, 여행업 종사자 100여 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북한 자유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떤 곳을 방문하고 싶은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 중 50%가 ‘식도락 여행’을 꼽았고, 먹어볼 음식으론 평양냉면이 단연 1위였다. 우리 국민은 옥류관을 찾아 평양냉면을 먹고, 여전히 북의 주민들은 두부밥을 생존을 위해 먹는다면 이는 바람직한 미래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