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부 상담을 받고 있었다.
폭행이 동반된 부부싸움 후 그는 종종 여행을 가자고 했다. 폭력적인 말과 행동이 오간 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행을 떠났다. 그날도 그랬다.
다음 상담일, 나는 상담사에게 말했다. “지난주에 남편의 폭력이 있었고, 그 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런데 남편은 여행을 갔던 기억만 가지고 있었다. 폭력에 대한 기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게 일상이되어 기억조차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내가 하나하나 그날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자, 그제야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때만 해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었고..."
그 순간, 희망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폭력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변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결국 헤어지겠구나.'
그 후 3일뒤, 나는 아이를 두고 혼자 집을 나왔다.
그날도 남편의 이유없는 욕설로 하루가 시작됐다. 이런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거의 매일 아침 기분이 나빴고, 이유를 물으면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짜증이 난다고 했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그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싸놓은 도시락도 챙기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나는 이유조차 없는 욕을 듣고, 답답함을 삼켜야 하는 아침을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
그날따라 남편의 귀가는 늦었다. 저녁을 먹고 오겠거니 생각하며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집 앞을 산책했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함께 산책을 했지만, 내 안에 쌓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남아 있는 집안일을 정리하려는데 남편이 밥을 달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왜 한숨을 쉬고 지X이야."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그의 분노가 폭발했다. 머리채를 잡혀 바닥에 내리꽂혔고, 폭언이 쏟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 마음은 고요해졌다.
‘오늘이 끝나는 날이구나. 이번엔 정말 신고할 수 있겠다.’
그 전에는 신고하는 게 무서웠다. 경찰이 와도 뭘 해줄 수 있을까 싶었고, 신고 후의 상황이 더 두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남편은 이번 폭력의 강도가 약했으니 내가 신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을 것이다.
남편이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 남편은 부부싸움후 핸드폰, 지갑 등을 종종 가져가곤 했다.
나는 곧바로 경비실로 가 전화를 빌려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했다. 나는 아이만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아이를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란 걸 짐작은 했었다. 남편은 늘 말했다.
"나한테 맞춰 살 거면 살고, 아니면 나가. 애는 두고."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이혼하면 아이를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부부상담 선생님도 이혼하면 아이를 못본다고 생각하라고 하셨었다. 그 말을 무슨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아직도 잘 짐작은 되지 않는다. 이혼을 하지 말란 의미였는지 진짜 말그대로 아이를 안봐야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인지.
그리고 결국, 나는 아이를 두고 혼자 집을 나왔다.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남편은 말했다.
"나가. 나가라니까, 왜 자꾸 들러붙어 있어?"
그것이 우리의 끝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더라도 그와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고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을 지속할 수 없었고, 그의 말과 행동이 나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앞에서도 폭력을 행사하고 아이를 나의 약점처럼 바라보았다. 아이가 커가면서 그 영향을 받을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그에게 내 진심을 전해도 그는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워 여러 번 따로 떨어져 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그냥 장난처럼 받아들였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나의 절박한 상황은 그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