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집안에서만 폭군이었던 남편

by 최작가

남편은 밖에서는 다정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집안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터뜨렸다.
부부싸움의 대부분은 남편의 집안일 지적으로 시작되었다. 기분이 나쁘면 집안 곳곳을 훑으며 트집을 잡았다. "냉장고 청소를 다시 해라.", "식기건조대에 식기를 왜 놔두느냐.", "바닥이 지저분하다.", "음식물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냐." 끝없는 지적과 비난이었다.


정작 그는 집안일이나 육아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반박할수록 상황이 악화된다고 생각했고, 아이도 있으니 큰소리 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의 요구를 따르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결국 부부싸움이 되었고, 폭력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폭력은 임신 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발로 툭툭 차는 정도였다. 그러나 점점 폭력의 강도는 세져갔다.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리거나, 겉으로 티 나지 않도록 신체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변해갔다. 가장 흔한 방식은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리꽂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 머리에 침을 뱉거나 담배연기를 내뿜었고, 며칠간 두피와 목 근육이 욱신거릴 정도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양수온도가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며 샤워물 온도까지 신경 쓰며 태아의 건강을 걱정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어쩔 건데?’라는 표정으로 내 얼굴에 담배연기를 뿜었다.


출산을 한 달 앞둔 한여름, 그는 이틀 동안 선풍기와 에어컨 사용을 금지했다. 폭력뿐만 아니라 모욕도 가해졌다. 그는 가위로 내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고, 심지어 누워 있는 내 머리 위에 소변을 누었다. 나는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는 막아섰다. 결국 창문을 열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서야 겨우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는 양수가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때 이혼했어야 했다. 하지만 만삭의 몸으로 이혼을 결심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가 떠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순간이었던것 같다.


남편은 아이 앞에서도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이리 와, 애 앞에서 맞아봐."


"아이를 밟아버리겠다."


그는 평소에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화가 나면 아이를 나를 협박하는 도구로 삼았다.

그는 화가 나면 아이에게 손도 대지 못하게 하였다. 아이에게 모유수유하는 것 조차 방해했으며 내가 아이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도 폭력을 행사했다. 아이까지 위협하는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폭력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출산비용은 물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본인돈으로 구매한 물건들도 화가 나면 왜 본인이 사야하냐며 윽박지르고 돈을 돌려받아 갔다.


이런 방식으로 나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려 했고, 친정은 "처남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며 나와 상관없는 곳 취급했다. 대신 시댁이 "이제 네 가족"이라며 그곳에 순응할 것을 강요했다.

주말 나들이, 여행, 외식까지도 대부분 시댁과 함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친정엔 한 주 먼저 다녀오라고 했고, 명절 연휴 동안에는 시댁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평상시에도 최소 주1회이상 시댁을 방문했다.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남편의 폭력은 물리적인 상처를 넘어서, 나를 심리적으로 옥죄는 방식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항상 내 행동을 감시하고, 내가 무엇을 하든 그의 눈에 들지 않으면 금세 불쾌해했다. 간접적인 압박감은 그의 말이나 행동 속에서 서서히 다가왔다.


"왜 이렇게 했어?" "이게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의 질문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나를 재고하고, 내 선택을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에게 말하고 싶어도, 그가 나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방식이 항상 앞섰다.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그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건 곧 나의 잘못이었고, 내 잘못이 커질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그의 비난이 이어졌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내 행동을 바꿔야만 했다.

내가 그와 대화를 할때 그의 대답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나의 의견을 전할 때마다 그는 말없이 비웃거나, 내가 한 말의 무게를 깎아내리며 나를 무시했다.


"그냥 뭐든 나한테 물어보고 해. 내말이 맞아. 그렇게 알면 돼"


그렇게 나는 점점 더 그와의 대화를 꺼리게 되었고,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는 내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몰랐고, 내가 그에게 어떤 말을 해도 그의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그 모든 말은 무시당했다. 간접적인 압박은 바로 그 무시에서 시작되었고, 점차 나를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간접적인 압박은 내게 공포와 불안의 씨앗을 심었다. 매일매일이 그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나의 행동의 기준은 그가 되었다. 그결과 나의 삶이 점점 좁아지고 그를 위한 삶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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