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밖에서는 다정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집안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터뜨렸다.
부부싸움의 대부분은 남편의 집안일 지적으로 시작되었다. 기분이 나쁘면 집안 곳곳을 훑으며 트집을 잡았다. "냉장고 청소를 다시 해라.", "식기건조대에 식기를 왜 놔두느냐.", "바닥이 지저분하다.", "음식물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냐." 끝없는 지적과 비난이었다.
정작 그는 집안일이나 육아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반박할수록 상황이 악화된다고 생각했고, 아이도 있으니 큰소리 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의 요구를 따르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결국 부부싸움이 되었고, 폭력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폭력은 임신 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발로 툭툭 차는 정도였다. 그러나 점점 폭력의 강도는 세져갔다.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리거나, 겉으로 티 나지 않도록 신체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변해갔다. 가장 흔한 방식은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리꽂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 머리에 침을 뱉거나 담배연기를 내뿜었고, 며칠간 두피와 목 근육이 욱신거릴 정도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양수온도가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며 샤워물 온도까지 신경 쓰며 태아의 건강을 걱정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어쩔 건데?’라는 표정으로 내 얼굴에 담배연기를 뿜었다.
출산을 한 달 앞둔 한여름, 그는 이틀 동안 선풍기와 에어컨 사용을 금지했다. 폭력뿐만 아니라 모욕도 가해졌다. 그는 가위로 내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고, 심지어 누워 있는 내 머리 위에 소변을 누었다. 나는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는 막아섰다. 결국 창문을 열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서야 겨우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는 양수가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때 이혼했어야 했다. 하지만 만삭의 몸으로 이혼을 결심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가 떠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순간이었던것 같다.
남편은 아이 앞에서도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이리 와, 애 앞에서 맞아봐."
"아이를 밟아버리겠다."
그는 평소에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화가 나면 아이를 나를 협박하는 도구로 삼았다.
그는 화가 나면 아이에게 손도 대지 못하게 하였다. 아이에게 모유수유하는 것 조차 방해했으며 내가 아이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도 폭력을 행사했다. 아이까지 위협하는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폭력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출산비용은 물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본인돈으로 구매한 물건들도 화가 나면 왜 본인이 사야하냐며 윽박지르고 돈을 돌려받아 갔다.
이런 방식으로 나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려 했고, 친정은 "처남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며 나와 상관없는 곳 취급했다. 대신 시댁이 "이제 네 가족"이라며 그곳에 순응할 것을 강요했다.
주말 나들이, 여행, 외식까지도 대부분 시댁과 함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친정엔 한 주 먼저 다녀오라고 했고, 명절 연휴 동안에는 시댁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평상시에도 최소 주1회이상 시댁을 방문했다.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남편의 폭력은 물리적인 상처를 넘어서, 나를 심리적으로 옥죄는 방식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항상 내 행동을 감시하고, 내가 무엇을 하든 그의 눈에 들지 않으면 금세 불쾌해했다. 간접적인 압박감은 그의 말이나 행동 속에서 서서히 다가왔다.
"왜 이렇게 했어?" "이게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의 질문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나를 재고하고, 내 선택을 부정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에게 말하고 싶어도, 그가 나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방식이 항상 앞섰다.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그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건 곧 나의 잘못이었고, 내 잘못이 커질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그의 비난이 이어졌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내 행동을 바꿔야만 했다.
내가 그와 대화를 할때 그의 대답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나의 의견을 전할 때마다 그는 말없이 비웃거나, 내가 한 말의 무게를 깎아내리며 나를 무시했다.
"그냥 뭐든 나한테 물어보고 해. 내말이 맞아. 그렇게 알면 돼"
그렇게 나는 점점 더 그와의 대화를 꺼리게 되었고,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는 내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몰랐고, 내가 그에게 어떤 말을 해도 그의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그 모든 말은 무시당했다. 간접적인 압박은 바로 그 무시에서 시작되었고, 점차 나를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간접적인 압박은 내게 공포와 불안의 씨앗을 심었다. 매일매일이 그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나의 행동의 기준은 그가 되었다. 그결과 나의 삶이 점점 좁아지고 그를 위한 삶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