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톰 크루즈'를 있게 한 영화 '탑건'의 후속 편이 36년 만에 공개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들의 달라진 모습과 함께 새로운 캐릭터들을 대거 투입시켜 영화의 새대교체를 통한 해당 프랜차이즈를 이어가려는 여느 할리우드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과는 다르게 '탑건 메버릭'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톰 크루즈'를 위한 영화로서 과거의 이야기를 답습하며 정통을 이어가려 한다. 또한 영화의 구성과 캐릭터의 활용 및 변주, 결말에 다다르면서 전해지는 '과거'의 향수와 기억들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정을 전달해 준다.
상품으로써, 오락으로서의 영화라면 성공을 위한 욕심으로 인해 무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현재 '스타워즈'와 터미네이터', '쥐라기' 시리즈들이 그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기술의 힘을 빌려 무리하게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시에, '과거'를 등지고 무작정 직진하던 영화들은 결국 좌초됐다. 무릇 '시리즈 영화'라고 하면, '과거'가 존재하고, 그 과거를 뒤 있는 '미래'를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과거'가 '미래'를 위해 길을 열어주면, '미래'는 '과거'의 영광을 지켜주고,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탑건 매버릭'은 위에서 언급한 '프랜차이즈를 잇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자신의 손에 있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게끔 만들어 주며, 뒤로 물러난 것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며 찬사를 보내준다.
36년이 지난 후에야 '탑건'이 모습을 드러낸 건 오로지 성공한 프랜차이즈를 이어가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톰 크루즈'라는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탑건'의 이야기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완성된 것이고, 배우 스스로가 이 영화를 다시 시작하고 끝맺음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그'는 더 도전할 수 있고, 아직도 '그'는 더 날아오를 수 있고, 아직도 '그'는 우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그가 운전하는 전투기가 마하의 속도를 뚫고 끊임없이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르듯이 말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코드네임'매버릭', '피트 미첼'은 사고로 숨진 친구의 모습을 잊지 못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해군으로서, 전투기 파일럿으로서 자리 잡은 그는 승진의 기회를 저버리고 언제나 '대위'로서 '단지 이유 없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 과거의 아픔을 지닌 채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그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점차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뒤로 밀려나게 될 상황이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전투기 비행사 자리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됐다. 파일럿의 능력으로 전투기의 속도가 마하 10을 도달해야 하는 '다크스타 프로젝트'는 달라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피트가 도전해야 될 임무가 된다. 무인 드론이 아닌 '인간'이 직접 조종하여 마하 10을 돌파해야 하는 이 임무를 피트는 피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몸으로 마하 10을 돌파하여, '파일럿'으로서 가진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냐는 동료의 물음에도 '해야만 한다'라고 답한 그는 무리한 임무를 기꺼이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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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감행한 피트의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를 보여준다. 시대가 변하고, 나날이 기술이 발전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들어야 할 '과거'는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마치 매 영화마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며 위험한 도전을 감행하는 '톰 크루즈' 본인과 같이, 영화 속 '피트'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기 위해 위험한 도전을 몸소 행하려 한다. 이 순간만큼은 '피트'가 곧 배우 '톰 크루즈' 본인이 되는 것이다.
착력과 동력
피트가 한 곳에 머무를 때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고,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때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이다.
피트에게는 전투기의 '동력'만큼 그를 짓누르는 '착력'이 존재한다. 그 착력은 그가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동력과 부딪히며 마찰을 일으킨다. 피트는 계속해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상부에서 내린 은퇴 압박과 함께, 탑건의 교관으로 들어가라는 명령까지 겹치면서, 그동안 자신이 지켜온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선택의 순간에 접어들게 된다. 과거처럼 소중한 친구와 동료들을 곁에 두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즐기던 순간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액자에 담긴 한 장의 사진으로 밖에 남지 않은 '과거'가 됐다. 피트는 계속해서 그 과거를 떠올리고 있고, 미련이 남아있는 관계들을 떠올리며 좀처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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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바에서 과거의 연인이던 '페니'를 마주치자 피트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강한 착력을 느끼게 된다. 비록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사이지만, 피트에게 페니는 미련만이 가득한 인연이었다. 그가 가장 힘든 시기에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그리운, 그 시절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 바에서 마주하게 된 건 비단 페니뿐만이 아니었다. 과거의 동료였지만 사고로 사망한 '구스'의 아들인 '루스터'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피트가 루스터를 보았을 때, 피트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강한 착력을 느끼게 된다.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과거의 그림자가 다시 그의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루스터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동료들과 함께 장난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즐기는 루스터의 모습에서 피트는 자신과 구스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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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피트는루스터로 인해 발생된 '과거'의 착력을 느끼며 힘겨워한다.루스터는 앞으로 움직이는 피트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고, 루스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피트는 매번 주춤하게 된다. 그럼에도 피트는 계속해서 동력을 발생시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루스터와의 갈등도 해결해야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언을 건네던 자가 조언을 얻어야 하는 자로
그저 한 명의 파일럿에 불과했던 피트는 갑작스럽게 맡게 된 교관의 자리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적과의 전투를 위한 실전 훈련을 감행해야 하며, 동시에 루스터를 마주하며 그와의 오해도 풀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병사들에게는 상관으로서,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피트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해야만 한다.
그러나, 피트에게도 모든 게 쉽진 않았다. 교육자로서도 처음이지만, 가정을 이뤄본 적 없는 피트에게 아들과도 같은 루스터와 말을 말을 이어갈 때는 교관으로 있을 때만큼이나 어렵고 힘겨웠다. 루스터는 자신에게 훈련을 받는 평범한 병사이기 이전에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다. 아무리 루스터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도 루스터는 쉽게 답해주지 않았다.
또다시 시작된 죄책감과의 싸움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피트의 정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그에게 말을 걸어준 건 과거의 동료였던 '톰 카잔스키'(아이스 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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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를 다시 탑건으로 보낸 장본인이 바로 톰이었다. 피트가 계속해서 루스터의 입대를 막아온 걸 알게 된 톰은 루스터의 입대 소식을 듣고, 계속해서 과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피트를 과거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피트를 다시 탑건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피트는 그의 코드네임인 '매버릭'처럼, 누구보다 개성이 강하고 자신의 신념을 믿고 밀고 나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강인한 겉모습과는 달리,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점에 대해 어쩔줄 몰라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실행에 옮기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그런 피트에게 필요했던 건 다른 누군가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자신이 타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듯, 누군가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주길 바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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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으로 돌아가 루스터를 마주했지만,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나가야 할지 모르는 피트에게 톰은 타이핑으로 메시지를 건넨다. 36년 동안 갖고 있는 마음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짐을 '내려놓으라'라고 말한다.미련 때문에 발을 떼지 못하는 피트에게 페니는 '자신을 믿으라'라고 말하고, 적군을 눈앞에 둔 상황 속에서 루스터는 피트에게 '아무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라'라고 말한다.
다른 이에게 조언을 건네던 피트는 누구보다 조언을 필요로 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믿으며, 부정적인 생각은 멈추고 행동하라'는 조언처럼, '피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준비를 한다.
불가능에 직면했음에도 자신을 믿고 도전했고, 낯선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앞만 바라봤다. 결국 해결되지 못한 자신의 문제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그는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주변의 '조언'을 통해 족쇠를 풀어버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톰 크루즈'의 복귀로 다시 한번 날아오르게 된 영화 '탑건'은 성공적으로 그 임무를 완수했다. 영화적인 완성도와 더불어 영화가 지닌 매시지까지 담아내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등장한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들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남지 않을까 한다.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는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타인의 자세가 같음을 깨닫게 된 '피트'와 같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전하는 '매버릭'과 같이, 매 해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노력하는 '톰 크루즈'와 같이,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또 한 번 인간의 가치를 증명했다. 도전하고, 극복하고, 달려 나가는 그들을 통해, 우리 또한 다시 한번 날아오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