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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Mar 11. 2022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남아있지 않은 것들

영화 '기생충'이 보여준 현대사의 민낯


* 이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가 있습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장르적인 쾌감이나,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각적인 충격과 신경을 곤두세우는 메시지들로 관객들에게 서늘한 감각만을 남겨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전반부의 유머러스함과 엉뚱함은 후반부에 이어지는 반전들과 대비를 이루는 게 특징인데, 이후에 전해지는 영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전해지면서 적잖은 충격을 안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늘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노골적인 민낯을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서도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영화 ‘기생충’은 이전 영화들이 보여줬던 비현실성 속 현실감의 표현 중 가장 노골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현대 사회에서 직접적, 간접적으로 종종 언급되는 ‘사회계층’의 모습이 이번 영화에서 핵심 소재로 등장하게 되는데, 봉준호 감독은 이를 보게 되는 관객들에게 자신이 가진 이상과 가치를 이전보다 더욱더 강하게 피력한다. 이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결말은 이미 우리의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우리에게 그 ‘무지’를 직시하도록 만든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한 영화 평론가 '기생충'을 표현한 이 한 줄에서, 이 영화에 대한 모든 걸 엿볼 수 있다. 남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신랄하게 대변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처연함과 쓰라림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 영화 '기생충'이 보여주는 이 모든 이미지들은 우리의 현실이다.



지상과 반지하 그리고 수석 



 영화의 주인공인 '기택' 가족은 작은 창을 두고 사람들의 다리와 발을 바라보는 반지하에 자리하고 있다. 기택은 사업도 실패하면서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은 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며 아내 '충숙'의 눈치를 보면서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인 '기우'와 딸인 '기정'이도 학원과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반지하에 갇히듯이 네 명이 모여 습한 공기를 맡으며 지내고 있다.

 작은 창문 틈으로 보이는 희뿌연 하늘의 지상.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 가족은 누구보다 궁핍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다. 어차피 집만 반지하일 뿐, 나와 저 사람들은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출처 - 네이버


 그러다 기우의 친구인 '민혁'이 이들의 집에 방문하고, 기택네 가족에게 수석을 선물해 주면서 모든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민혁이는 기택 가족에게 사업운과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수석을 선물하고, 기우에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재벌집 딸의 영어 과외를 맡겨준다. 수석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기우는 "이거 상징적이다."라는 말을 넌지시 내뱉는다. 다른 이들은 그저 돌멩이 취급을 하고 있었지만, 기우에게 수석은 더 성장하고, 더 높은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의 상징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마치 넓은 강을 사이에 두고서 돌다리를 내어주듯, 이 둘 사이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져가고 있었다.


 이후 기우는 큰일을 치를 때마다 수석을 손에 쥐기 시작한다. 마치 수석으로 인해 자신이 성공하기라도 하듯이, 수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우에게는 힘이 생기게 된다. 이름 모를 산에서 주워온 돌멩이가 아닌, 잘 나가는 집안에서 고이 모셔온 기품 있는 수석을 바라보며 기우가 느꼈을 출세와 성공의 희열은 그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네 사람 중 수석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기우뿐이다. 또한 그 수석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역시 기우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이냐. 기우가 말하는 상징과 행동, 기세는 모두 수석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기우의 것이 아니었다. 수석에게서 물려받은 민혁이의 것이었다.



공석과 대체품



 '동익'의 가족들이 상징하는 상층민들은 '노동'이라는 행위를 직접 하지 않고 언제나 다른 이들의 손을 빌린다. 교육은 교육자에게, 운전은 운전사에게, 집안일은 가정부에게 일을 넘겨준다. 상층의 인물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행위의 일부를 내려놓음으로써 다른 인물에게, 즉 하층민에게 일거리를 넘겨준다.


 일자리가 부족한 하층 계급에서는 그 빈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진행한다. 그 과정은 모두 경쟁이 되고,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은 조력자가 아닌 경쟁자가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하층민인 기택 가족은 그 어떤 면접도 어렵게 성공하지 않는다. 면접을 진행한 '연교'는 자신의 지인이 추천하는 이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고, 어쩔 수 없이 떠난 민혁의 빈자리를 그의 친구인 기우로 대체한다.

 그런 연교의 특징을 이용하여 기우 막내 '다송'이의 미술 선생님 자리 기정을 추천하, 또 운전기사로 기택을, 그리고 가정부로 충숙을 불러들이면서, 기택 가족 모두 비어있거나 만들어낸 자리에 숨어 들어간다.


출처 - 네이버


 이렇게 비밀리에 진행된 '잠입'은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쫓겨난 이들의 대한 걱정도 해보지만, 그것 역시 사치일 뿐이었다. 그들은 이들 가족에게 경쟁자였을 뿐이고, 성공하면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치밀하게 꾸며낸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기택 가족의 모습을 뒤로하고, 이들을 고용한 동익은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동익에게 이들은 그저 자신의 삶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울 '벽돌'에 불과했고, 이 피고용인들이 갑작스레 해고당한다 할지라도, 이 자리에 들어설 사람들은 "새고 샜으니",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다.


 "민혁쌤이 잰틀하고 참 좋았잖아.", "윤 기사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아줌마가 갈비찜을 참 잘했거든." 피고용인을 바라보는 고용주의 시선은 고용인들'존재'가 아닌 '능력'에 향해있다. 특정 한 사람의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고용주들은 피고용인들의 다른 그 어떤 특성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이 일을 잘 해낼 것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출처 - 네이버


"그 아줌마가 갈비찜을 참 잘했는데. 갑자기 그만둬서 말이야. 집사람은 아무 말도 없고... 그래, 뭐 아줌마야 새고 샜으니까."



위치와 태도



 동익은 퇴근길에 윤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하고 업무 서류를 들여다보던 중, 조수석 밑에서 여성의 속옷을 발견한다.(이는 기정이 일부로 떨어뜨린 것) 동익은 속옷을 가지고 아내인 연교에게 가져다주며 윤 기사가 선을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여성과 관계를 맺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되고, '더 소름 돋게'도 약물까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한다. 이 말을 들은 연교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 자리에 없는 윤기사의 흉을 보기 시작하며 남편의 장단을 맞춰준다.


출처 - 네이버


 하지만, 이들이 내뱉은 말과 행동들은 모두 자신들의 채면을 지키고 남들과 다르다고 선을 긋기 위해 한 가식과도 같았다. 다송이의 생일 전날. 캠핑을 나서다 폭우를 맞고 집으로 귀가한 동익 가족은 새벽 늦게 잠자리에 든다. 동익과 연교는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집 앞마당에 있는 다송이의 탠트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때 동익이 연교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보, 여기 꼭 내 차 뒷자리 같지 않아?"


그러고는 동익이 연교의 몸을 만지기 시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뒤이어 나오는 동익과 연교의 모습 속에는, 그들이 극도로 혐오하던 온갖 묘사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한다. 신음 소리와 욕설, 심지어는 마약을 사달라는 말까지. 이들의 모습은 자신들이 치를 떨며 싫어하던, 즉 그렇다고 오해했던 차 뒷자리에서의 윤기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출처 - 네이버


 보는 눈이 많은 오후 시간대의 직장에서 보이는 동익의 위선적인 태도와 말들, 자신의 친구들에게 자랑하듯이 내뱉는 연교의 이야기들은 모두 자신들의 위치가 주는 힘을 대방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해가 저문 새벽의 거실. 회사도, 집 앞 공원도 아닌 자신들의 집 안에서 벌이는 이들의 행위들은 계급을 논할 것 없이 욕망을 표출하는 인간의 낯을 보여준다. 그것이 인간이고, 계급이 주는 차이는 사회의 신분일 뿐, 인간으로서의 위치는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택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익을 바라보며, 자신도 언젠가는 반지하에서 벗어나 지상의 공기를 만끽하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지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기택은 지상과 지하 사이에 있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혼란을 갖게 된다.


 반지하는 지하와는 다르게 지상과 좀 더 가까운 위치에 있고, 기회만 된다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기에 빛의 달콤함을 누려온 기택에게 지하의 '근세'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남이었다. 자신도 '같은 불우이웃'이라 말하는 '문광'(지하)에게 충숙(반지하)이 이를 딱 잘라 막아선다.


 "나는 불우이웃 아니야!"


 과거에는 돈 없이 살아왔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기에, 자신에게 빌고 있는 문광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충숙의 태도는, 지하와 반지하 사이에서 마저 위치의 차이로 인한 태도의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반지하가 지하보다 더 우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까.


출처 - 네이버


 지하 사람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 기택의 가족은 동익의 집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뜻하지 않게 거실 테이블 밑에 숨어 집주인 부부의 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비꼬는 동익의 말들과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은밀한 행동을 하는 부부의 모습까지.

 테이블 밑에 사람이 숨어있으리라 상상하지 않을 동익과 연교는 자신들의 집에서 맘 편하게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지만, 기택과 기우, 기정은 숨어야만 한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집인 것처럼 행동했던 이들은 결국 진짜 집주인이 나타나면서부터 어둡고 좁은 공간 안으로 숨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행동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숨어야만 한다. 이곳은 가지고 있는 자의 집이고, 그곳에 기생한 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위치에 따른 모습의 대비. 기택의 가족들이 호기롭게 행동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이들은 결코 이 호화스러운 저택에 속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치밀하게 작전을 새우며 자신들의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기택 가족의 모습에서 장르적인 쾌감을 얻었다. 그동안 창가에 내비치는 눈부신 햇살과 작은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얕은 불빛만 봐온 관객들은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받아들이고, 과연 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그러나, 부를 누리는 지상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반지하를 대비시키며 이들의 차이점을 부각해 왔던 영화의 이야기는 비를 맞으며 등장한 문광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달라진다.


출처 - 네이버


 빛이라고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전등이 전부인 세상. 좁고 깊파여있는 계단들을 하염없이 내려다가 보면 만나게 되는 곳. '우리'는 지하의 문이 열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말을 잃게 다. 마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압박감과 숨이 막히는듯한 하강의 종점에서 우리는 기지 않는 때에 찌 한 사람을 보게 된다.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던 문광과 근세는 세상과 단절되는 선택을 했다. 이들도 목표를 갖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돌아온 것은 실패뿐이었고, 사채까지 써가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목숨을 위협하는 사회의 체재였다.


 가진 것을 잃은 근세는 지하에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근세 역시 지상에서 살면서 문광을 만나 결혼을 하고 살아왔지만, 자본주의가 그의 앞길을 막아서면서 지하로 떨어지게 됐다. 자신이 지하에 숨어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 불안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지하에 있기에 안전할 것이라는 안도감이 겹겹이 쌓이면서 끝내 모든 걸 내려놓고 지하에 온전히 속하게 된다. 가끔은 자신이 지하에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근세에게는 더 이상 '지상'이라는 곳은 존재하지 않다.


"이게 살면 또 살아지나.... 이런 곳에서도?..."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반지하까지 치면 더 많지"


출처 - 네이버


 반지하는 지하를 극도로 경계하고 밀어내고 있지만, 지하는 반지하를 계속해서 자신들의 위치로 끌어내리려 한다. 그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반지하'는 결국 '지하'에 속해 있다. 우리들은 반지하를 지상과 맞닿아 있음에도 지하라는 낮은 단계에 묶어버렸다. 문광에게 화를 내며 불우이웃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반지하 역시 지하와 다를 바가 없지만, 자신들은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반지하가 지하보다 우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까.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잔인하고 불편한 해답을 제시했다.



계획은 기어코 무계획으로 돌아갔다



 기우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리가 믿고 있었지만, 지하의 사람들을 마주하면서부터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계획에 지하라는 존재는 없었고, 민혁이가 건네준 수석이 반지하인 자신과 지상의 민혁이를 연결시켜 주는 돌다리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돌다리는 꽤 길고 위태롭게 지하에까지 닿고 말았다.  


 결국 지하의 근세는 기우가 떨어뜨린 돌다리를 밟 올라 지상에 도달한다. 출세를 꿈꾸던 기택 가족도, 다송이의 생일을 위해 물품을 구입하는 동익 가족도, '계획'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만들어내면서 한껏 기대감을 올려보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던 지하의 존재가 지상의 바람소리를 따라 세상 밖에 나오는 순간, 저마다 가지고 있던 '계획'은 처첨하게 무너지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상징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며 가치 있는 행동을 하고 싶었던 기우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 정도로 머리를 다치게 되고, 진정으로 행복하고 부유한 삶을 살기를 원했던 기정은 꿈을 꿀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오만한 행동을 인지하지 못한 동익은 근세의 모습을 한 기택에 의해 살해되고, 자신도 모르게 동익을 살해한 기택도, 아무런 계획 없이 지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이렇게 되리란 걸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계획'에는 그 누구도 자신들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으니까.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냐?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아무 상관없는 거야."


출처 - 네이버


 기택이 말한 것처럼, 계획은 무계획으로 변해 버렸다. 자신도 카스테라 가게를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소박하게라도 잘 살게 되리란 희망과 계획을 가졌지만, 이 역시 망해버리면서 무계획의 삶으로 돌아서버렸다. 애초에 큰 결심과 계획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아플 일도 없을 것이고, 일이 잘못되어도 비교 대상이 없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는 것이다.

 기택은 이 사실을 알고도 기우가 시작한 이 한바탕의 소동에 참여하면서 다시금 계획과 희망을 갖으려 했지만, 또다시 계획에 없던 일들이 벌어지면서 체념하게 된다.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진 혼란 속에서 자신의 머릿속을 꿰뚫는 동익의 모습을 보고는 무계획의 끝으로 접어들게 된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수개월 후. 기정은 세상을 떠나고, 기택이 저택의 지하에 갇혀 지내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기우는 저택 너머의 산등성이에서 기택이 보내는 모스부호를 통해 기택이 잘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수신 여부를 알 수 없는 메시지만 발신할 뿐이다.


출처 - 네이버


 기택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기우는 황급히 기택에게 답해줄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요.
대학, 취직, 결혼,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
이사 들어가는 날에는, 저랑 엄마는 정원에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기우가 정한 아주 근본적인 계획. 가장 단순하면서 이들에게 꼭 필요한 계획. 그 무엇보다도 돈을 많이 벌어서 기택이 갇혀있는 집을 구매하겠다고, 기우는 나지막이 다짐한다.

 자신을 속박하듯이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질 않던 수석도 손수 강가에 내려놓아 주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서 '성공'의 길에 오르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기우와 충숙은 마침내 지하에서 올라온 기택을 마주하게 된다.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 불이 꺼진 반지하에서.  


 불이 꺼진 반지하에서 초점 없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기우의 얼굴로 영화가 끝난다. 위의 편지는 아버지인 기택에게 전달해 줄 내용이지만, 기우는 결코 기택에게 전달해 줄 수 없다. 기택에게 남아있는 건 자신의 신세를 전할 모스부호뿐이고, 기우에게 남아있는 건 일기나 다름없는 편지뿐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다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것 외에는 특이점이 없지만, 검푸른 하늘을 등지고 있는 기우의 모습은 그 어떠한 것도 이뤄내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편지 내용처럼, 기우가 그 집을 되찾는다면 기우에게 남아있는 건 쓰라린 상처와 '성공'이라는 지금의 모습이었겠지만, 지금의 기우는 그것을 이뤄낼 힘이 없다. 결국, 기우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의 후반부는 관객으로 하여금 충격을 안겨줬다. 다분히 영화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살인의 참혹한 모습이라기 보단, 우리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비극을 작은 공간 안으로 밀집시켜 놓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삶을 잃고, 누군가는 꿈을 잃은 것처럼, 영화의 딩에서는 희망 마자 덮어버리며 허무함을 느끼게 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괴물이 만들어놓은 환경 속에서 체재의 무력함을 보았고, 희망을 품은 혁명의 끝에서 기계처럼 짜인 생태계의 현실을 보았고, 생명의 고귀함을 증명하려던 행동의 끝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세계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에 우리가 본 것은 또 다른 계급의 이야기면서, 우리들의 삶을 훨씬 더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그 속을 들춰냈다. 영화를 다 본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이 불편함일지, 아니면 피곤함 일지는 그 사람이 속해있는 환경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 자체를 비난하며 부정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영화 속으로 더 빨려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보여준 이미지에 자극을 받은 나머지, 그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영화가 끝나도, 현실에서 또다시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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