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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Sep 25. 2024

古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의 투구

모든 한자에는 이야기가 있다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자들의 신이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로 제우스, 포세이돈과 형제지간이다. 아버지 크로노스가 티탄 족에 맞서 싸울 때에 형제들과 함께 참전하여 승전을 도왔다. 그 공로로 저승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 이후 지하세계에만 머물기 때문에 올림포스 12 신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제우스가 다스리는 올림포스 시대의 주요 신에 속한다.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의 신을 누가 반기겠는가.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만드는 황금 투구를 가지고 다녔다. 그는 이 투구를 쓰고 투명인간이 되어 사람들이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운명이 다한 인간을 지하세계로 데려간다.


하데스의 투구가 상징하듯이 영어 helmet은 고대 게르만어 '보호용 덮개(helmaz)'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어근은(kel-) '덮어 가리다, 감추다, 보호하다'를 뜻하는데, 이 의미를 뜻하는 글자가 옛 고古이다. 古의 자원에 대한 기존 설을 알고 있다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설문해자]에서는 십(十) 대 이전부터 구전되어(口) 오던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으로는 관련된 글자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이길 극克이나 굳을 고固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글자들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고古의 금문을 보자. 그 형태만 봐서는 十과 口를 합한 회의문자인지,  어떤 사물을 그린 상형문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古의 금문


胄의 금문


하지만 투구 주胄의 금문을 보면 이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고古는 주胄의 윗부분과 동일한 형태이다. 꼭대기의 세로획은 투구 꼭대기에 세우는 간주幹株이고 그 아래는 간주를 받쳐주는 개철蓋鐵이다. 간주는 나중에 열 십十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는 간주에 끼우는 구슬 장식(寶株)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 쓰는 부위는 생략했다. 이와 같은 투구를 간주형 투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고古가 '옛날'을 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투구가 상징하는 '덮어 가리다'에서 파생된 것이다. '덮어 가리다'란 말을 시간에 적용하면 '숨겨진 시간'을 뜻한다. 이를 히브리인들은 "올람"이라 했다. 올람은 '옛날'을 뜻하는데, 이 단어는 '숨기다, 시야를 가리다, 감추다'를 뜻하는 '알람'에서 유래되었다. 영어 world는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세상을 뜻한다. 반면 올람은 세상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고대를 뜻한다. 달리 말하면, 하데스의 투구아래 숨겨져 있는 지하세계처럼, 과거라는 시간 속에 숨겨진 옛날을 뜻한다.


여기에 칠 복攴을 더한 옛 고故는 고대에 일어났던 사건攴을 말한다.  이를 히브리어로 '다바르'라고 하는데, '말, 사건, 원인, 이유'를 뜻한다. 헤르만 헤세가 지은 데미안의 초판본 표지에는 제목아래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시절 이야기(Die Geschichte einer jugend von Emil Sinclairs) "라고 적혀있다. 이때 언급된 독일어 Geschichte는 이야기를 뜻하지만 '역사'란 뜻도 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 사건, 이야기를 뜻하지만 실제 일어난 역사를 뜻한다. 또한 존재하는 어떤 것, 모든 사물,  모든 이야기의 원인, 이유를 가리킨다. 옛 고故가 바로 그 뜻을 나타낸 글자이다. 투구와 갑옷을 입고 전쟁을 치렀던 고대의 영웅담뿐만 아니라 각종 사건, 사고攴에 관한 일과 그 일의 까닭이나 이유를 뜻한다. 故로 하이데거가 말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주작하다'라고 할 때의 지을 주做는 사람이 옛 일을 본받아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말하며, 주낼 고詁는 고서의자구에해석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길 극克은 투구와 갑옷으로 전신무장한 사람을 뜻한다. 기존의 해석은, 무거운 투구를 쓴 사람이 무게를 감당하느라 무릎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라거나, 투구를 쓰고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는 등의 설이 있다. 하지만 금문의 자형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극克은 투구와 가죽 피가 결합된 형태이다.


                                   克                    


극克은 투구와 가죽 피가 결합된 형태이다.

가죽 피皮는 여기서 갑옷에 매달아 목을 보호하는 드림 가죽을 그린 것이지만 의미적으로는 전신무장을 뜻한다. 무거운 투구와 갑옷의 무게를 능히 참고 견디며 싸우는 병사의 모습에서 '이기다, 해내다, 참고 견디다, 능하다'등의 뜻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떨게 마련이다.

떨릴 긍兢은 완전무장한 병사克들이 서로 대치한 상황에서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경거망동하면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긍兢은 '삼가다'라는 뜻도 가졌다. <<시경>>의 <소민 편>에 언급된 전전긍긍戰戰兢兢이 그 용례이다. 戰戰은 싸움을 앞두고 벌벌 떠는 모습을 뜻하고, 兢兢은 삼가 조심하고 경계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깊은 연못에 가까이 이른 것 같이하고, 살얼음을 밟고 지나가는 것같이 조심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는데서 유래되었다.  


값 고估는 고대에 용사라고 불렸던 선발된 군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전쟁에도 참여했지만 민간인 신분으로 보수를 받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상인들을 보호하는 용병의 역할을 했기에 '값, 구하다, 상인, 팔다, 평가하다, 측정하다'등의 뜻이 나왔을 것이다.  


굳을 고固는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처럼 벽으로 둘러싸 사람들을 보호하는 성(城)口을 뜻하고, 그물 고罟는 투구를 쓰듯이 덮어서 잡는 그물이나 어망을 뜻하며, 살거居는 투구와 같이 사람들을尸 덮어서 보호하는古 집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고古는 투구의 모양을 나타내는 모양자로 쓰여서 집, 무덤, 속이 깊은 술단지, 등을 뜻하기도 한다.  다리미 고鈷에서는 숯을 담는 금속 용기를,  괴로울 고苦에서는 씀바귀의 밑동과 꽃대를 나타내는 모양자로 쓰였다. 


그 외 시어머니 고姑, 마를 고枯, 턱 밑살 호胡 등에서 古는 '오래되다'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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