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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Sep 26. 2024

奇 괭이자루에 타보셨나요

모든 한자에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 있을까. 길거리를 지나면서 보이는 노래방 숫자나, 방송국에서 행하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의 인기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성은 고대의 여러 문헌 기록에서도 충분히 입증된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농사현장에서도 노래는 빠지지 않았다. 어떤 때는 흥에 겨웠고, 때로는 눈물겹고 시름겨웠다.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 한편에 오래된 LP판처럼 머물며 가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이 밭을 멜 때 불렀던 노래를 '광이소리'라고 한다.  이를 한자로는  가可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광이소리'를 들어보자.


신농씨의 본을받아 에이여라 광이야

이팥밭을 파가지고 에이여라 광이야

누캉먹고 누캉사나 에이여라 광이야

광이농사 잘도된다 에이여라 광이야

금년에도 풍년지고 에이여라 광이야

내년에도 풍년되고 에이여라 광이야

이농사가 잘만되면 에이여라 광이야

부모봉양 잘할거고 에이여라 광이야

자손들도 배불리고 에이여라 광이야

(괭이소리, 강릉어문학7, 강원도 영월)


광이는 땅을 파거나 흙을 고르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의 일종인 괭이의 옛말이다. 광이소리는 예전에 산간지역의 사람들이 화전을 만들 때에, 가혹한苛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불렀던 노동가를 말한다. 노랫말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일반적인 농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풍년이 들어 부모를 잘 봉양하고 자식들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담겨있다. 이와 같은 괭이소리를 뜻하는 글자가 노래 가歌자의 처음 글자인 옳을 가可이다. 

옳을 가可의 갑골문이다. '소리'를 뜻하는 입 구口와, ㄱ자 형태의 나뭇가지(柯)로 만든 괭이를 그렸다. 이와 같은 나무괭이는 기원전 1세기의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한편 함경북도 운하리 궁산문화층에서는 사슴뿔을 잘라서 괭이 날을 만들고 자루를 붙인 뿔괭이도 발견되었다.

광주 신창동 유적지에서 발견된 나무괭이


그렇다면 가可자가 뜻하는 '옳다'라는 의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는 괭이소리를 하는 방식에서 나왔다. 괭이소리는 혼자서도 하지만 주로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를 할 때 불렀다. 이때 두 패로 나뉘어서 서로 마주 보며 일을 하는데, 소리를 할 때는 선후창으로 나누어서 불렀다. 먼저 한 사람이 앞의 소리를 선창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받아서 후렴을 함께 노래하는 방식이다. 이로부터 '마주 대하다, 듣다, 들어주다'라는 뜻이 나왔으며, 선창 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며 동의하는 모습에서 '옳다, 허락하다, 가하다'등의 뜻이 나왔다. 후에 선창과 후창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可를 중첩하여 노래 가哥자가 되었고, 다시 입벌릴 흠을 더하여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노래 가의 형태가 되었다. 


괭이소리는 흥을 돋우는 노래이지만 일을 재촉하는 소리도 들어있다. 

꾸짖을 가呵(訶)가 그것이다.  강원도 정선군의 <괭이노래>에 그 모습이 담겨있다.


오호 괭이요 / 조심하게 들어주게 / 푸푹 푸푹 파여 주게 / 눈치 봐 찍어 주게 / 자뻐지지 말고 찍게 / 한 손을 높이 들고 / 푹푹 파만 주게 / 어허지구 좋을씨고 / 좁씨가 안 묻혔네 / 어헐씨구 파만 주게 / 문주(먼지)만 날려 주고 / 자뻐지지 말고 찍게 / 남의 발을 찍지 말고 / 이래다가 보믄야 / 서산의 해가 다 넘어갔네


이 노래에서 '자뻐지지 말고 찍게'는 괭이질을 바르게 하라는 나무람이며, '서산의 해가 다 넘어갔네'는 게으름 피우지 말라는 재촉이다.


괭이는 기능에 따라 땅을 파는 괭이, 땅을 일구는 괭이, 땅을 고르는 괭이로 나누지만 괭이 날을 나뭇잎에 견주어서 부르기도 했다. 그 모양에 따라 가짓잎괭이, 토란잎괭이, 수숫잎괭이 등으로 불렀다. 이 중 토란잎괭이를 닮은 수초를 연 하荷라 한다. 연을 뜻하는 풀 초와 어깨에 괭이를 메고 있는 모습을 그린 어찌 하何로 이루어졌다. 이는 가는 줄기에 큰 잎을 받치고 있는 연에 대한 비유이다.


괭이질을 할 때는 하루에 일할 분량을 미리 정했다. 품앗이를 할 때 균형을 맞추고 게으름을 막기 위해서다. 특히 머슴들에게는 한 해 농사의 분량이 정해졌는데, 이를 뜻하는 글자가 어찌 하何이다.

갑골문은 괭이를 어깨에 메고 있는 사람을 그렸다. '메다, 감당하다'를 뜻하는데, 이는 일꾼이 하루 또는 한 해에 감당해야 할 밭메기의 분량을 뜻한다. 정해진 분량에서 '얼마, 약간, 해당하다'라는 뜻이 나왔고,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신세한탄을 하는 모습에서 '어찌, 언제, 어떤'등의 뜻이 나왔다.


한해 농사일이 끝나면 그동안 애쓴 일꾼들을 위로하는 뜻에서 하루를 쉬게 했다. 경상남도에서는 세벌 논을 맨 뒤 백중을 전후해서 날을 잡아 하루를 놀게 했는데, 이를 머슴날이라 부른다. 이때 농사를 제일 잘 지은 집의 상머슴을 뽑아 괭이자루에 태우고 풍악을 울리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녔는데, 그 모습을 그린 한자가 기이할 기奇이다.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는 기존의 설은 잊어도 좋다. 

기奇의 소전은 괭이자루를 타고 있는 상머슴大을 그렸다. 이를 "괭이 자리(자루) 탄다."라고 하였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대성마을과 여향면의 외암리에 사는 나이 많은 어른들은 여전히 예전의 풍습을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는 괭이자루에 태우는 것이 아니라 괭이자루를 흉내 낸 일종의 괭이가마나 소의 등에 태웠다고 한다. 괭이자루에 일꾼을 태우고 노래를 부르며 마을을 도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기이하고 괴상한 모습인가. 참으로 기묘奇妙妙하고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발상이지 않은가. 공부 잘하는 장원급제는 아니어도 일꾼들의 장원급제이니 '기특하다, 뛰어나다'라는 뜻도 가졌다. 이렇게 의미가 확대되자 원래의미는 사람 인을 더해 의지할 의倚로 썼다. 마찬가지로 의자 의椅괭이자루 타는木 기이한풍습에서 나왔다.


이렇게 괭이자리椅를 타고 일꾼들의 장원급제 놀이를 한 바탕 벌인 후에는 일꾼이 머무는 주인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부칠 기寄가 그 모습이다. 일꾼이 괭이자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이르다, 맡기다, 위임하다, 임시로 얹혀살다'등의 뜻이 나왔다.  



참고문헌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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