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한자에는 이야기가 있다.
감사와 사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감사는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나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이다. 두 단어의 의미가 사뭇 다른데도 두 단어 모두에 사례할 사謝가 들어간다. 사謝의 어원은 무엇일까?
이 글을 쓰기 전에 감사와 사과에 대한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많은 글들이 있었지만 그 자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개념이 다른 감사와 사과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謝는 갑골문에서부터 쓰였다. 지금 자형과 글자의 형태는 많이 변했지만 뜻이 통하므로 편의상 지금 자형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사례할 사謝는 말씀 언言과 쏠 사射로 구성되었다. 화살을 쏘듯이 말한다는 것일까, 활쏘기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일까? 그 실마리는 세종의 교지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 15년(1433), 왕은 술의 해로움에 대해서 경고하며 교지를 내렸다.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술잔을 주고받는 것으로 절도를 삼으며, 활을 쏘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는 읍하고 사양하는 것으로 예를 삼는다. 향사례는 친목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라고 언급하였다.
세종이 언급한 "활을 쏘고 술 마시는 자리"는 "향사례(鄕射禮)"를 말한다. 향사례(鄕射禮)는, 향촌을 뜻하는 시골 향鄕, 활쏘기를 뜻하는 쏠 사射, 예법을 뜻하는 예도 례禮가 합해진 단어이다. 향사례는 원래 중국 『주례(周禮)』 의 예법인데, 고려 말에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향사례도 함께 전래되었다. 『주례(周禮)』 에서는 향사례(鄕射禮)의 '사射'를 가리켜 "그 뜻을 바르게 한다(定其志)."라고 했다. 이때 '바르게 한다.'는 말은 세종의 교지에 따르면, 활을 쏘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읍하고(두 손을 맞대어 손을 들어 올렸다가 고개를 숙이는 동작과 함께 손을 내리는 인사예법) 사양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겸손한 태도로 활쏘기射의 순서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거나 술을 권할 때 예를 갖추고 사양言하는 것 따위의 향사례를 사례할 사謝라 한다.
향사례의 의식과 절차는 『세종실록(世宗實錄)』「오례(五禮)」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향사례는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개성부(開城府)와 여러 도(道)의 향촌에서 행했다. 하루 전에 책임을 맡은 관사(官司)가 빈(賓)에게 알리는데, 이때 빈은 효와 충을 갖추고, 예(禮)를 좋아하며, 행실이 난잡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선택되었다. 당일에는 주빈(主賓)이 서로 예를 행하고 제자리를 잡으면 술을 세 순배 돌리고 활쏘기의 예(射禮)를 시행한다. 먼저 주인(官司)이 빈에게 활쏘기를 청하면, 빈이 이를 허락한다. 화살을 쏠 때마다 풍악이 시작되고, 활쏘기를 마치면 화살이 빗나간 사람에게는 벌주를 마시게 했다. 향사례가 끝나면 주인이 예를 갖추어 문 밖에서 참석자를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로부터 謝는 '(초청에 대해서) 사례하다, (벌을) 면하다, 양보하다, 물러나다, 갈마들다, (빗나간 화살은 예에서 어긋남으로) 사과하다, 부끄러워하다'등의 뜻이 나왔다.
그렇다면 사謝의 갑골문도 향사례를 뜻하는 것일까?
謝(갑) 世(금)
謝의 갑골문은 두 손으로 골풀로 짠 자리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자리는 세상 세世의 금문에서도 볼 수 있다. 世는 자리를 만드는 재료인 골풀과, 골풀로 짠 자리를 그렸다. 골풀로 짠 등메나 화문석은 옛날에 궁중에서 사용하는 고급 자리였다. 따라서 이를 펼치고 있는 모습의 갑골문은 향사례 따위의 의식에서, 주인이 자리를 깔아 빈(賓)을 예우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에는 왕실이나 조정에서 사용하는 자리를 담당하는 석전(席典)이라는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제 감사의 '感'과, 사과의 '過'를 살펴보자.
느낄 감感은 무장한戌 병사들이 다 함께 함성口을 지르는 모습을 그린 다 함咸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졌다. 전투에 앞서 한마음으로 전의를 불태우는 병사들의 모습이자, 승리의 기쁨에서 다 함께 함성을 지르는 병사들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감感의 원래의미는 '감응'이다. 어떤 대상에 의해 마음이 따라 움직이는 감응의 의미에서 '감동, 감사'의 의미가 나왔다.
過
지날 과過의 금문은 길彳위에 뼈冎와 발止이 더해진 형태이다. 뼈는 죽음을死 상징한다. 그러므로 과過의 길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사망의 길이다. 누군가는 이미 이 길을 지나갔고 또 누군가는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매일 그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다. 이로부터 과거(過去)라는 말이 나왔다. 원래의미는 '지나다'이다. 길을 가다 보면 때로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로부터 '허물, 잘못'이라는 뜻이 나왔다. <성경>에서는 그 길의 끝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이 있는데, 그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 들어가는 자가 많은 반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했다 [마 7:13]
결국 감사는 다른 사람의 마음 씀에 감동感을 받아, 그 고마움을 말로 전하는謝 인사를 뜻하고, 사과는 잘못過에 대해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말과 행위의 예謝를 뜻한다.
감사와 사과 이 두 단어에서 사謝가 주는 교훈은, 예(禮)로써 친목을 다졌던 향사례와 같이 감사를 할 때도, 사과를 할 때도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형식과 절차보다는 정성과 진정성이 더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주역>> [수화기제] 괘에서는 소를 잡은 성대한 제사가, 정성을 들인 약소한 제사보다 못하며, 그 복은 정성에서만 온다고 했다(東隣殺牛 不如 西隣之禴祭 實受其福)
<채근담>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음미하며, 미처 느끼지도 생각지도 못했지만 나의 평범한 일상의 하루를 가능하게 하는 것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새삼 감사함을 떠올려 본다.
"물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되 물을 잊어버리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되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