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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Nov 02. 2024

칸 황금종려상 手相

고무마 밭에서 발견한 뚱딴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제72회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상의 상징은 종려나무 가지이다. 그런데 이 종려나무의 가지가 한자 손 수()의 원래형태라고 한다면,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


오늘은 뚱딴지같은 자원을 주장하려고 한다. 못생긴 돼지감자를 뚱딴지라 한다. 울퉁불퉁 못생기고 뚱뚱한 돼지감자의 매력은? 엉뚱함이다. 돼지감자는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 심어놓고 방치를 해도 잘 자라며 멀리까지 줄기를 뻗어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오늘은 고구마 밭에서 발견된 돼지감자의 이야기다. 아니 한자 자원을 쫓아 실크로드를 걷다가,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발견한, 한자 手에 관한 이야기다.

는 금문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손의 모습이 특이하다. 다들 손이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만 처음 형태를 보면 손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나뭇가지처럼 보인다. 손을 뜻하는데 나뭇가지라니 역시 뚱딴지같은 소리다. 하지만 손과 동일시되는 나뭇가지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나뭇가지가 바로 칸 영화제의 최고 상을 상징하는 종려나무다.


종려나무는 영어로 date palm이라 한다. 중국에서 대추야자라고 부르는 date palm은 라틴어에서 ''을 뜻하는 'palma'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종려나무의 가지가 사람의 펼친 손가락처럼 생겼기 때문에 유래된 것이다.


종려나무는 야자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오아시스에서 주로 발견된다.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종려나무는 떠돌이 상인들이나 순례자들의 쉼터가 되었기에  순례자(palmer)란 단어에 종려나무(palm)가 들어있다.


성경에 언급된 종려나무는 '대추야자'를 말한다. 가지가 곧고 수려하게 뻗은 외형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린 손의 모양을 닮아 '승리, 기쁨, 존경'등을 상징했다. 그래서 고대에는 전쟁에 승리하고 개선하는 전쟁 영웅들을 환영할 때 종려나무를 들고 흔들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영했다. 기원전의 장엄한 이 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바로 종려주일로 부르는 부활절 직전의 일요일이다. 이 날을 Palm Sunday로 부르는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데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종려나무 가지는 일찍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백성들이 존경하는 영웅이나 귀인을 뜻하게 되었다. 이는 히브리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종려나무의 꼭대기를 '키파 트마림'이라고 부른다. '키파'는 '가장 높은 계층'을 말하고, 트마림'은 종려나무를 뜻한다. 유대인들이 머리에 쓰고 다니는 키파라고 부르는 모자도 이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를 따르면, 한자 手는 단순히 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기쁨의 의미로 하늘로 들어 올린 오른손을 뜻한다.


                       拜

이 어원을 알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문자가 있다. '삼가고 공경하다'를 뜻하는 절 배이다. 이 글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금문은 종려나무()와 손 수(手)로 이루어졌다. 문자가 나타내는 의미 그대로, 종려나무의 손이다. 여기서 수는,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린 손모양을 닮은, 종려나무의 꼭대기 부위(최고위 계층을 상징)를 가리키며, 나아가 그들의 인사예법을 뜻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금문의 다른 자형이다. 금문 배拜의 다른 형태는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옆에  근심할 우를 더했다. 우는 제사장이 머리에 고귀함을 상징하는 산양의 탈을 쓰고 기우제를 드리는 모습이다. 이때, 주나라의 예(禮)를 따르면,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리는 절을 했다. 이를 읍(揖)이라 다.  예배(禮拜), 경배(敬拜), 숭배(崇拜), 참배(參拜)등이 그 뜻으로 쓰였다.


종려나무의 생명력은 매우 강하다. 오죽했으면 식물학에서 야자나무속을 Phoenix(불사조)라고 부른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종려나무는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불에 태워도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서 자란다. 또한 태풍이 불어서 몇 시간이나 휘어져 있다가도 다시 일어나는데, 그때 오히려 뿌리가 강해진다고 한다. 이러한 강한 생명력으로 인해 종려나무는 해안가의 방재림이나 땅의 경계를 나타내는 지계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성서에 나오는 여리고 성은 고대 팔레스타인 최고의 성읍이다. 요단 강 동쪽에서 지중해 연안의 블레셋 땅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는데, 종려나무의 성읍'이란 뜻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플로리다주의 남동부에 있는 도시 팜비치(Palm Beach)는 종려나무 숲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처럼 해안가나 국경에 심어놓은 종려나무 위로 태양이 솟아오른 모습이 아침 조早 이다.

    금문             전문


아침 조早의 지금 자형은 태양과日 그 아래 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금문은 날 일日과 대추나무 조棗로 구성되었다. 물론 여기서 대추나무棗는 우리가 생각하는 키 작은 대추나무가 아니라 대추야자(종려나무) 뜻한다.


아침 조早는 키가 30m에 이르는 대추야자 위로 태양이 떠오른 모습이다. 후에 글자가 번잡한 대추나무 조 대신 첫째 갑을 더해,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른 새벽을 뜻했는데, 이것도 나중에는 갑甲의 생략체인 十으로 고쳐 쓰면서 지금 자형이 되었다.


사람의 손은 27개의 뼈와 관절, 신경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정교한 동작을 행한다. 인류가 직립 보행을 하면서 자유로워진 손은 도구를 사용하는 대표적 신체기관으로서 '도구를 다루는 인간'을 상징한다. 그래서 나무를 다루는 전문장인을 목수(木手), 활을 쏘는 사람을 궁수(弓手),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춤을 추는 사람을 무용수(舞踊手)라고 부른다. 또 그 솜씨에 따라 고수(高手), 하수(下手)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 손은 움직씨의 대표이다. 칠 타는 망치로 못을 치는 손 동작을 그렸는데, 현대 중국어에서 거의 모든 동작을 대표할 수 있는 동사로 발전했다.

              Homunculus

칸트는, 손은 밖으로 드러난 뇌라고 했다. 실제로 호문쿨루스(뇌 지형지도)를 보면, 사람의 손과 입은 다른 신체 부위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히 크다.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문명을 밝힌 주요한 원천이 언어와 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호문쿨루스는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으로 나누어지는데, 손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약 30%이다. 이를 근거하면, 악수(握手)는 대뇌피질의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약 30%를 접촉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서로의 몸을 느끼는 진한 포옹이다. 그러니 악수를 할 때는 악수(惡手)가 되지 않도록 예의를 갖추자.


호문쿨루스는 라틴어로 '작은 인간'이란 뜻이다.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가 인조인간을 만들기 위한 실험에서 쓴 용어다. 괴테는 <<파우스트>> 제2부 2막 <실험실>에서 호문쿨루스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그곳에서 호문쿨루스는, 빛나는 유리관 안에서 작은 인간으로 탄생하여, 육신을 가진 실제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이제 그 작은 인간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빛나는 상자 속에서 작은 인간(AI)을 재탄생시켰다. 괴테의 말을 빌리면, AI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니 활동도 해야지, 곧바로 일하러 나서고 싶은데, 당신이 능숙하게 지름길을 알려줄 테지" 


실제로 AI가 사람대신 일하러 나서는 시대가 오면 인간의 손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종려나무 가지를 닮은 한자 手의 처음형태와 유사한 모습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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