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머'를 보고
제프리 다머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talking heads의 psycho killer라는 노래이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talkings heads의 psycho killer와, 영화 my friend dahmer를 함께 편집한 영상이 떴다. 영화의 주인공은 제프리 다머라는 미국의 연쇄살인범이었다.
이후 넷플릭스에 이 사람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있어서 보았고, 관련 다큐멘터리도 이어서 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Kti7QixnJI
제프리 다머는 유색 인종의 동성애자인 남성을 살해하였고, 피해자 중에는 10대 소년도 있었다(코너락 신사솜폰). 그는 살인 후 시간, 사체 절단, 먹는 등의 방법으로 시체를 훼손하였다. 제프리 다머는 17회의 살인 중 15번의 살인에 대하여 유죄확정 판결을 받고, 15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수감 중에 다른 동료로부터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제프리 다머의 범죄는 정말 너무 끔찍하였는데, 그가 받은 형벌, '15번의 종신형'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15번의 종신형은 무기징역과 같지만 다른 형벌이다.
그리고 최근 가졌던 화두 중 가장 어려운 고민거리를 얻었다.
17번의 살인은 정신병인가 범죄인가?
제프리 다머의 변호인측은 살인행위 당시 그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였고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정신이상 주장을 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범행 당시 다머는 정상이었으며, 단순히 시간욕구 때문에 피해자들을 살해했다고 평결했다.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형량을 줄이기 위해 심신미약, 심신장애 주장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피고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제프리 다머의 경우, 그 범죄가 너무 잔혹하여서 오히려 그의 심신미약 주장이 다르게 느껴졌다.
사람이라면 온전한 정신으로 17명을 살인하고 시체를 먹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제10조가 심신미약에 대하여 정하고 있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판례에 의하면, 성주물성애증, 소아기호증, 충동조절장애 등만으로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증상이 매우 심각하여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거나, 다른 심신장애사유와 경합된 경우 등에는 심신장애 인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범인의 의식상태가 정상인과 같아 보이는 경우에도 범행 충동을 억제 못한 것이 정신질환과 연관 있는 경우 심신미약이라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하여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변별능력이나 행위통제능력, 의사결정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가 아니다. 사물변별능력이란 법과 불법을 구분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의미하고, 의사결정능력이란 불법의 통찰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지배할 수 있는 의지적 능력을 뜻한다.
즉 우리나라 형법에 따르면, 제프리 다머가 정신 질환을 앓아 살인 및 시체 훼손에 대한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범행 당시 그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점을 알 수 있고 자신의 행위를 지배, 조절하여 행위할 수 있었다면 심신장애가 아니다.
제프리 다머의 성장 배경과 범행의 내용을 보면, 그가 17명의 피해자들을 살해한 것은 그의 정서나 정신이 온전치 못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범행 전후로 그의 범행을 성공시키기 위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였고,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행동했다. 즉 제프리 다머는 범행 당시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있었고, 단지 그는 끔찍한 악행에 대한 욕구에 이끌려 범죄를 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배심원들이 판단한 것과 같이.
위스콘신주 법원은 제프리 다머에게 15번의 종신형을 선고했다. 15명의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이번 생에서의 무기징역에 그치지 않고 15번의 종신형을 선고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형제는 사실상 폐지가 된 상태이고, 사형 대신 무기징역이 주로 선고되며 유기징역의 상한은 50년이다.
제프리 다머가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어떤 자비도 허용되지 않지만, 그의 외로웠던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일기도 했다. 한편 그는 콜럼비아 교정 기관에서 수감 중에 세례를 받았는데, '신이 본인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는 말을 했다. 신의 용서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용서에 대한 그의 말을 생각하면 다시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책임의 근거는 무엇일까? 모든 범죄자들에게 자비가 허용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도의적 책임론은 인간을 자유의사를 가진 존재라고 보고, 형벌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사회적 책임론에 따르면, 책임의 근거를 소질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 행위자의 반사회적 성격에 둔다. 제프리 다머의 사건을 분석할 때, 사회적 책임론을 택한다면 그의 외로웠던 유년시절, 시체와 해부에 대한 흥미, 충동 억제가 어려웠던 정황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책임의 근거에 대한 의견의 대립은 매우 오래된 것인데, 인간의 자유 의지를 얼마나 강인한 것으로 보는지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어떤 환경에서도 선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사한 사회적 배경에 놓인 자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와 DNA를 공유하는 가족들이 모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치밀한 계획에 따른 17번의 살인은 정신병이 아니라 범죄이다. 범행 당시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억제할 수 없는 충동'만을 기준으로 심신 장애를 판단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더 끔찍한 범죄를 여러 번 저지를수록, 심신장애가 인정되어 책임이 없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리고 책임의 근거와 관련하여, 우리가 하는 행위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내린 선택이다. 그리고 형벌은 불법을 향한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배경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리는 선택들에 대하여는 이미 법제도를 통해 범죄자를 보호하고 있고, 재판에서도 고려된다.
마지막으로 제프리 다머 사건은 끔찍한 수준의 범죄가 범죄자 1인의 행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프리 다머가 17번의 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미국사회에서의 성소수자 및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부패한 경찰 조직 등이 있었다.
15번의 종신형. 다머는 지금도 죄 값을 치르고 있을까?
<참고자료>
드라마 다머, 살인을 말하다: 제프리 다머 테이프
제프리 다머에 대한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한국일보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202190069194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