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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흥미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1

by 하자연 Jha Eon Haa

로스쿨 시절 의미있는 것을 배운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재미가 별로 없었다. 법은 대체로 미시적인, 설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미시적이고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나, 거시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흥미롭다.


거시적으로 사회와 자연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거시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감각적, 지적으로 높고 먼 지점에 도달하고 싶다.

설명할 수 없는 미감이나 단순 명료함을 내 안에서 이끌어내고 싶다.


법은 위 네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원칙과 그것의 규칙적인 변주, 응용이 좋고 불규칙적인 예외가 싫다. 간단명료한 원칙 몇 개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은 근사하다. 오류에 빠지거나 폭력적일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법은 원칙이긴 한데 그 수가 많다. 그리고 예외도 많다. 예외만 많은 것이 아니라, 예외의 예외도 많다. 나아가 예외가 원칙의 변주나 응용이라기 보다 대부분 사실관계가 다른 지점에서 발생하는 예외, 그저 암기해야 하는 예외이다.


그런데 법은 내가 하고 싶은 네 가지를 더 잘하기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미감이나 단순명료함을 이끌어내는 것은 주관적이고 배고픈 일에 그칠 수 있다. 주관적인 일에만 몰두하고 배고픈 처지에 갇힐 순 없다.


그래서 로스쿨 공부를 마쳤고, 변호사시험에 운좋게 합격했다.


그 후 변호사 일을 시작하였는데, 일이 많고 복잡해서 애를 써야 했다. 애 써서 일을 하다보니 점점 내가 원래 좋아하는 것과 원래 싫어하는 것이 희미해진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경계선을 찾고 싶다. 올해는 좋아하는 것과 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하는 한 해로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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