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브런치는 이번에도 나에게 “글을 안 쓴 지 4개월이나 되었다.”라는 알림을 보내왔다. 그러고 보니 작년 10월 Seoul ADEX 2021(일명 ‘서울 에어쇼’) 이후 글을 제대로 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브런치 공모전 마감까지 글을 써야 한다.’라는 강박에 글을 쓰기도 했고, 서울 에어쇼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니 ‘글쓰기를 며칠만 쉬자.’라고 한 게 4개월이 되어버렸다.
글을 전혀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스쳐가는 생각들을 스케치하듯 이곳저곳에 끼적여 놓기는 했는데 진득하게 앉아 정리하질 못했다. 브런치의 친절한 알림에 오랜만에 글쓰기 폴더를 열어보니 그렇게 끼적여 놓은 글 몇 편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11월의 일이었다. 서울 에어쇼가 재미있기는 했지만 워낙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에 쉴 요량으로 일주일 휴가를 신청했다. 휴가라 해도 중간중간 중요한 회의는 참석하기로 했던 터라 멀리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문득 영종도가 떠올랐다.
“영종도에 인천 공항 말고 특별한 게 있어?”
영종도로 휴가를 간다고 하니 친구가 물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영종도는 나에게 특별한 경험과 기억을 준 곳이다. 외교부에서 일할 때 ‘정부 합동 코로나19 대응 시설’로 파견을 간 적이 있는데, 그 시설이 바로 영종도에 있었다.
‘코로나19 방역과 외교부가 무슨 상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국내 입국을 무조건 막지 않고, 검사와 격리를 통해 해외유입 검역을 강화했는데, 국내에 입국하는 외국인을 상대할 인원이 필요했다. 사실 국내에 입국하는 외국인은 외교부보다 다른 부처와 더 관련이 많은데, ‘외국인&영어 = 외교부’라는 고정관념 덕에 외교부 직원이 정부 합동 시설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내가 파견 간 시설은 엄연히 말하면 ‘격리 시설’은 아니었다.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린 우리 시설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입국해 코로나19 검사를 마치고, 2주 후 검사까지 대기하며 머무는 ‘임시 생활 시설’이었다. (그렇다고 입소자가 시설 밖, 정확히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격리 시설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코로나19 1차 유행을 막 지나던 민감한 시기에 지역 주민들이 우리를 반길 리 없었다. 지역 주민들은 인근 상인들과 함께 우리 시설 앞 공터에 천막을 치고 반대 시위와 집회를 이어갔다.
파견 나온 공무원이 시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주민들을 생각해 최대한 외부 노출을 자제하기로 했다. 업무도 바쁘고 여유도 없었지만, 덕분에 영종도에서 가본 곳이라고는 1층에 있는 편의점과 길 건너 식당 두세 곳이 전부였다.
영종도에는 ‘자유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배 한 척이 있었다. 영종도와 월미도를 오가는 배였는데, 사실상 시설 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는 그 배가 마치 자유의 상징처럼 부럽게 느껴졌다.
‘반드시 영종도에 자유롭게 여행하러 올 테야!’
휴가 첫날, 월미도에서 ‘자유의 상징’에 차를 싣고 1년 반 만에 영종도를 다시 찾았다. 시설은 ‘휴업 중’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굳게 걸어 잠겨 있었다. 옆으로 돌아가자 당시에는 없던 경비 초소 같은 컨테이너가 나타났고, 그 안에 있던 경찰관이 나를 경계하듯 쳐다보았다. 경찰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뒤쪽으로 가자 경찰 통제선과 함께 방역복을 입은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시설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시위대는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가 천막을 쳤던 공터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바로 옆 공터에도 공사 예정을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높은 가림 벽이 설치돼 있었다. 사실, 시위대 때문에 그곳에서의 생활이 더 어려웠는데, 지금 시설에 있을 입소자나 파견 인력을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 뒤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전에도 잠깐 가본 적은 있지만, 자세히 둘러보거나 한적한 여유를 느껴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공원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자니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이 생각났다. 그중 한 명에게 사진을 보냈다.
“여기에 원래 이런 게 있었나요? 새로 생긴 건 아닌 것 같은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러게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새롭네요.”
관광객으로 방문한 그곳은 마치 ‘평행 이론’ 속 다른 시공간처럼 숨어 지낼 때와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SNS에 공원 사진 몇 장을 올리자 한 외국인 친구가 “정말 아름다워!(Absolutely Beautiful!)”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곳이었다니.
주변 상가들도 마음껏 둘러보았다. 파견 나와 있을 때, 한 번은 숙소에서 먹을 음식을 포장하러 근처의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식당 주인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혹시나 정체가 탄로 난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대충 얼버무렸는데, 식당 주인은 ‘포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위해 숙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묻던 것이었다. 혼자 지레 겁을 먹은 것이었다.
저녁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데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혹시 부동산 보러 오셨나요?”
“네? 아, 아니요. 그냥 놀러 왔어요.”
얼마나 바뀌었는지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마치 부동산 투자대상을 물색하러 온 것처럼 보였나 보다.
“몇 채 안 남았어요.”
남성은 한 수익형 호텔을 가리키며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가리키는 호텔을 올려다보니 시설에 파견 나와 있을 때 한창 짓고 있던 건물이었다. 시위대와 함께 공사 소음 때문에 꽤나 힘들게 했던 곳이었는데 어느덧 공사가 끝나고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1년 반 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
이튿날 숙소를 나와 그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에 들렀다.
사실 이 글 대부분을 그 카페에 앉아 썼다. 영종도에 올 때만 해도 다른 소재의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자연스레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카페 다른 손님들의 수다 소리에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영종도 앞바다와 옆으로 보이는 시설을 바라보면 다시금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종도를 떠나기 전 주변에 선물할 빵 몇 개를 샀다.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지역 상권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위대가 가장 걱정한 부분이 “시설의 존재가 알려지면 상권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얼마나 타격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당시 시설에 있던 공무원으로서 적게나마 지역 상권에 기여하고 싶었다.
사실 영종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제가 저 시설에 처음 파견 나온 공무원이었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살면서 처음 와본, 그 기회가 아니었으면 절대 몰랐을 곳이지만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왔다.”라고.
"그러니 이제는 받아주실 거죠?"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