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방산 행사인 Seoul ADEX 2021(일명 ‘서울 에어쇼’)에 참가하느라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ADEX 기간에도 글 몇 개를 올리긴 했지만 사실은 미리 써놓은 글을 뒤늦게 올린 것이었다. 이제야 한숨 돌리고 글을 쓰려던 찰나에 브런치가 친절하면서도 엄중한 경고를 보내온 것이다.
ADEX 행사가 끝나고 새로 알게 된 중소기업 한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이런 수준까지 할 수 있구나.’라며 내심 놀랐는데, 이 회사는 심지어 항공기 ‘시뮬레이터’ 장비까지 갖추고 있었다. 조종사들은 정기적으로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게 되어 있는데, 악기상이나 항공기 결함 같은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훈련하고 평가받게 된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자 회사 직원 분이 나를 시뮬레이터실로 안내했다. ‘적당히 장비 구경만 시켜주시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시뮬레이터 교관 분이 말했다.
“한 번 앉아보시지요. 시뮬레이터 장비는 타 보셨나요?”
“네? 조종사 분들이나 앉는 자리에 앉으라고요? 영광입니다.”
어떻게 조종하는지도 모르지만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무작정 조종석에 앉았다.
“자 이게 스로틀(Throttle)이고요. 이게 조종간입니다. 저기 발판에 발을 얹어 보세요.
이렇게 하면 이륙을 하는 건데요. 자 스로틀을 당겨보시죠.”
공군 출신이지만 조종을 해본 적이 없어 교관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이륙했다.
“제일 어려운 기동이 OOO 기동입니다. 지금 이 기동인데요. 한번 해보실까요?”
이론도 모르는 내가 조종간을 잡자 비행기가 앞 뒤 좌우로 요동쳤다. 다시 한번 교관님의 도움으로 비행기가 안정을 찾았다.
“이게 인천공항 세팅인데요. 크게 한 바퀴 돌아서 착륙해보시죠.”
몇 번의 곤두박질과 급선회를 반복하다가 겨우겨우 비행기를 활주로까지 끌고 왔다. 이제 무사히 착륙만 하면 되는데 비행기 자세를 어떻게 낮춰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대충 스로틀을 천천히 낮추면 속도가 줄면서 착륙하지 않을까?’
“쿵”
그 순간 고도를 낮추던 비행기는 스크린에 ‘Crash’라는 단어를 띄운 채 활주로에 멈춰서 버렸다.
“이렇게 되면 추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송구합니다. 이렇게 귀한 장비에 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면목 없습니다.”
사실 나는 공군 장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공군은 일반적인 군보다 신체검사를 까다롭게 보는 편인데 그중 하나가 ‘색각 이상’이다. 항공기와 전자 장비를 다루는 특성 때문에 색각 이상을 철저하게 보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색약’인 나는 당연히 공군에 입대할 수 없었다.
타고난 체질과 반대로 나는 공군이 너무나 되고 싶었다. 어릴 적 TV에서 ‘탑건 (Top Gun)’이라는 영화를 본 뒤 모든 관심과 신경은 ‘파일럿’과 ‘전투기’에 꽂혀 있었다. 공군에 입대할 수 없음을 알게 된 나는 중학교 시절 ‘안경으로 시력 교정은 허용하면서 왜 색약 교정 안경은 안 되냐?’라며 공군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인생의 반전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였다. 육군이나 해군 장교를 알아보던 내게 어머니가 뜬금없이 공군 장교를 추천했다. ‘어릴 때부터 공군이랑 비행기를 좋아하지 않았냐?’라는 것이었다. ‘불가능한 일’이라며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우연히 공군 홈페이지를 봤는데 몇몇 특수 직종은 색각 이상자도 선발이 가능하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특수 직종 중 하나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게 ‘운명’처럼 직업군인으로 공군에 남게 되었다.
4개월의 기본 군사 훈련이 끝나갈 무렵 생활관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시력 1.0 이상인 후보생들은 지금 즉시 당직 사관실 앞으로 오기 바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력 하나는 좋던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당직 사관실로 달려갔다. 놀랍게도 그 자리는 ‘조종 훈련생’을 선발하는 자리였다. 시력 1.0 이상이면 무조건 조종 훈련에 보내주는 것은 아니지만, 조종 신체검사와 적성 검사를 받을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색약’이라 안 될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도전이라도 해보고 군의관에게 ‘탈락!’ 판정을 들어야 그 불가능한 꿈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색약’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조종사 신체검사에 지원했다.
신체검사에 지원하자 시뮬레이터를 탈 기회도 주어졌다. 전투기 기동처럼 어려운 기동은 아니고 활주로에서 이륙해 한 바퀴 돌고 다시 활주로에 내리는 단순한 기동이었다. 내 차례가 되고 스로틀을 밀고 조종간을 당겨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종간을 움직여 비행장 상공 한 바퀴를 돌고 착륙을 위해 항공기의 자세를 낮춰갔다. 좌우로 흔들리고 고도를 제대로 낮추지 않아 기우뚱기우뚱하다 추락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시뮬레이터 화면이 꺼지면서 시스템이 다운돼 버렸다.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0점!”
평가관 선배는 ‘0점’이라며 나를 놀렸다. 내 첫 시뮬레이터 도전은 그렇게 ‘0점짜리 Crash’로 끝났다.
시뮬레이터 훈련과 신체검사를 마치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강당으로 누군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색각 이상자 누구야? 원래 색약인 것 몰랐어? 알았으면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니야!”
“너무 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불같이 화내던 그 선배장교도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조종사에 꿈을 가졌던 사람들은 보통 평생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하기 마련인데, 나는 이를 ‘조종병’이라고 부른다. 공군 장교 대부분은 이 ‘조종병’을 잘 아는데 이 분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너 특수 직종으로 선발됐니? 그냥 거기로 가자.”
그렇게 나는 조종사 도전 첫 관문에서 추락하고 불타버렸다(Crash and Burn). 하지만 도전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 Crash and Burn: 1. 망하다 2. 무참하게 차이다 3. 극적으로 실패하다 (출처: Daum 영어 사전)
사실 내 ‘조종병’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다. 안 될 것이라는 것도 더 이상 직업 조종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아직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던 공군 장교가 된 것처럼 언젠가는 색각 이상자도 특별한 장치를 통해 비행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방산업체에 일하고 있는 것도 비행의 꿈을 버리지 못해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특별한 장치가 얼른 개발되기를 기다리면서.
반드시 그날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