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에는 술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치앙마이 여행과 선거와 관련된 4가지 에피소드

by 플렉시테리언

쉬어가는 동안 군대 동기와 태국 치앙마이에서 1주일 정도 휴식을 갖기로 했다. 한국도 대통령 선거가 코앞인데 특이하게 이번 여행에서 선거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동기와 나 둘 다 작년 한 해 열심히 출장 다닌 덕에 한 호텔 체인에서 플래티넘 등급을 달성할 수 있었고, 등급 혜택도 받을 겸 치앙마이에서도 같은 계열 호텔에 묵기로 했다. 둘째 날 아침 클럽 라운지에 갔더니, 입구에 이런 안내문이 있었다.


“주류 서비스 제한”

“NO ALCOHOL SERVED"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조금 비싸더라도 브랜드 호텔 체인을 가는 가장 큰 이유가 어렵게 달성한 플래티넘 등급 혜택으로 아침과 저녁 식사와 간단한 주류를 무료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인데, 주류 서비스를 제한한다니!


안내문을 읽어보니, 5월 11일 일요일이 지방 선거일이기 때문에, 5월 10일 17시부터 선거가 끝나는 5월 11일 18시까지 주류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호텔에만 해당하는 내용인가요?”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법에 규정된 내용이라 도시 전체가 투표가 끝날 때까지 술을 판매할 수 없다 했다.


다행히 인천 공항 면세점에서 사 온 싸구려 위스키가 있어 술을 판매하지 않는 이틀을 버틸 수 있었다.




치앙마이에 동행한 군대 동기는 제대 후 한국의 한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거기에서 자신의 몸을 갈아 넣다시피 해외 출장을 다닌 덕에 한 국적 항공사에서도 높은 회원 등급을 달성했다.

동기 등급 덕분에 인천 공항에서 항공사 라운지를 이용하고, 탑승구로 향하려는데 낯익은 얼굴을 마주쳤다.


“OO 야!”

“선배!”


공군 장교 후배였는데, 대략 2011년 즈음 마지막으로 보고 십수 년 만에 항공사 라운지에서 마주친 것이다.


“정말 오랜만이다. 어디 가는 거야?”


“저 출장으로 필리핀 가요.”


“필리핀에 무슨 일 있어?”


“필리핀에 선거가 있어서 참관하러 가요.”


후배가 전역 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들어간 것은 알고 있었는데, 여전히 선관위에 있는 모양이었다. 탑승 시간이 임박해 간단히 서로 안부만 전하고 헤어졌지만, 십수 년 만에 기분 좋은 조우였다.




필리핀으로 출장을 가는 후배를 만나니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다른 후배가 생각났다.


이 후배는 제대 후 강원도에 카페를 열었다. SNS로 오랜만에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후배가 저녁에 메신저 음성통화 기능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하필 새벽 1시까지 회의가 있는 날이라 며칠 뒤에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후배는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원두 구하러 갔어?”


“아뇨, 선배.

저 카페 사업 정리하고 취직했어요. 지금 회사 일 때문에 필리핀에 조금 길게 와 있어요.”


“아 그래? 무슨 일 하는 회사인데?”


“저 선거 관련된 시스템 회사에 다니는데요. 이번 필리핀 중간선거에 저희 회사 시스템을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지원 나와 있어요.”


후배 두 명이나 우리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 선거에 연관되어 있다니 신기했다.


최근 후배의 SNS를 보니 필리핀에서의 선거를 마치고 한국의 가족에게 돌아온 것 같았다.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근교로 여행하기 위해 현지 투어 한두 가지를 신청했는데, 우연히 한국에서 홀로 여행 온 남자분과 동행하게 되었다. 이 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1주일 정도 치앙마이에 머무르다 그날 귀국 예정이라 했다.


우리가 “지난 주말 치앙마이에 도착했노라.” 하니, 역시나 현지 선거와 주류 판매 금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면 두 분도 여기 선거 때문에 술 못 드셨겠네요?”


“네. 호텔 클럽 라운지 갔더니 안내문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도시 전체에 술 판매를 금지한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여행 왔는데 하필 주말에 술을 못 먹게 하다니 너무 한 것 같아요.

근데 그거 아세요? 현지인들은 알음알음 술을 팔고 먹기도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음료수 병에 술 담아서 파는 곳이 있었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토요일 저녁 호텔 주변을 산책할 때, 셔터를 반만 열어놓은 채 지나가던 외국인들에게 “영업합니다.” 라며 호객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날 다시 지나가며 보니 이상한 곳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바(bar)였다.


결국 현지 선거도 애주가 여행객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선거일에는 술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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