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언젠가는 비상
잠시 쉬어가기로 했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
군대 동기의 소개로 동기의 직장 상사이자 전투기 조종사 출신 예비역 공군 장군 분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공군 어학장교 출신으로 장기 복무를 했다고 하니,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어?”라고 물으셨고, 자연스레 아래 글 속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진이, 지금도 전투기 타고 싶어?”
“저요? 제가 지금 어떻게 전투기를 탈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냥 색약도 가능한 경비행기 자격이나 도전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동기가 말했다.
“서울 에어쇼 (Seoul ADEX) 때 ‘국민 조종사’ 선발하지 않아? 그런 것 지원해 보면 안 되나?”
순간 머릿속이 번쩍 했다.
‘그렇지! 격년으로 열리는 서울 에어쇼 (공식 명칭: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일반국민을 선발해서 전투기를 탑승시켜 주는 '국민 조종사' 이벤트가 있었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공군 출신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한 번도 국민 조종사에 지원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군 출신이라 반칙인 것 만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러다 “지금도 전투기 타고 싶어?”라는 예비역 장군 분의 말을 듣고 지원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 선발이 시작되고, 자연스레 자기소개를 써 나갔다.
“저는 0000년도 공군 장교 000기로 임관하여.... 어학장교 최초로 장기복무에 선발되어...”
지원 동기는 고민할 것도 없이 저 브런치 글을 소개했다. 글자 수 제한으로 요약해야 하긴 했지만,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며 저 글의 주소를 공유했다.
서류 심사 결과 발표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대전 출장길에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후배 몇 명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기분 좋게 저녁 식사를 이어가던 중 국민 조종사에 지원한 게 생각났다.
“아! 그래 나 이번에 국민 조종사 지원했다?”
“선배 설마, "저는 예비역 공군 장교로" 이런 식으로 쓴 건 아니죠?”
“어, 왜? 그렇게 썼는데?”
그 순간, 나를 제외한 모두의 입에서 크고 깊은 탄식이 퍼져 나왔다.
“이 선배, 완전 꼰대네! "저는 예비역 누구입니다." 이런 것 별로예요.”
생각해 보니 나도 현역 시절, 예비역 선배들이 전화해서 대뜸 “아, 저는 몇 기 누구입니다.”라고 하는 게 정말 싫었다. 전화를 건 목적과 지금의 대화 본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무작정 “나도 공군 출신”이라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지.
그런데 그 꼰대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통과 발표가 있던 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공군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제10기 국민조종사 선발에 지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국민조종사 선발은 총 1,774명이 지원하였으며,
3주간의 서류심사를 통해 총 40명을 선발하였습니다.
합격자 명단과 면접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꼰대는 없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한 후배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소식을 알렸다.
“네들이 옳았다. ‘예비역 공군 소령’ 이거 안 되네.
국민 조종사 서류 탈락했어.”
한 후배가 답했다.
“ㅋㅋㅋㅋㅋ”
나도 답했다.
“다음에 다시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