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소확행

떠나라, 낯선 곳으로.

by 최지훈

“여행 좋아하세요?”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 대화 소재이자 젊은 세대의 주된 관심사, 여행.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한 번쯤은 여행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 그 자체뿐만 아니라 내가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아, 여기서 내가 말하는 여행은 ‘해외여행’이다.
국내 여행 많이 다녀봤다만 해외여행이 주는 감동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해하진 마시라, 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다.)

여태까지 여섯 군데를 다녀왔다.

2009년 고등학교 시절 청운의 꿈을 품게해준 수학여행지 미국.
2010년 재수 시절 우울한 마음을 달래준 캄보디아.
2015년 비전트립 미얀마.
2016년 첫 자유여행 대만.
2016년 신혼여행 하와이.
그리고 2018년 라오스,

2019년 보라카이,

태교여행 오키나와

旅行(나그네 려, 다닐 행)

나그네가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는 의미의 단어.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고은 시인의 말이다.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머문다.

처음 이 문장을 보고는 손에 턱을 괴고 몇 분 동안 생각에 잠겼다.

딱 내 얘기인 것 같아서.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낡은 반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더 이상 새롭지 않기 때문에.
이 땅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새롭게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나.


다음은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다.

출근하고 업무하다 점심 먹고 좀 쉬다가, 또 업무하고 시간 되면 퇴근, 저녁 식사. 그리고 식사 후에 부리는 잠깐의 여유.


그나마 이 잠깐의 여유 덕에 숨통이 트이지만,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와이프랑 맛집,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
그 카페에서 파는 디저트, 가령 마카롱이나 케이크 한 조각 베어 먹는 것,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 한 모금 마시는 것, 암체어에 등 기대고 앉아 차나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 내달리는 찻길 도로변을 따라 3km 정도 달리는 것, 랩 비트 틀어놓고 드럼 소리에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며 작사하는 것. 이 정도다. 와이프에게 종종 한량이냐는 말을 듣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 ‘소확행’이 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소확행이란 것도 똑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지겨워지는 법이다.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와서, 여행은 나에게 새로운 소확행 중 하나다. 여행지의 유명 명소(tourist attraction)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길거리를 걷는 게 좋아졌다.

2018년 여름휴가에 와이프와 찾은 라오스 비엔티안의 ‘여행자 거리’가 그러했다. 여행자 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거리에는 배낭가방을 멘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수염을 온 얼굴에 기르고서 방랑자처럼 홀로 돌아다니는 유럽 남자, 중국어로 감탄사를 연발하는 한 쌍의 커플.

툭툭(tuktuk)의 매연 냄새, 줄지어 달리는 오토바이, 오토바이 소음, 저잣거리에서 공예품을 파는 아낙네들의 외침. 밤하늘과 가로등 불빛의 하모니, 야시장 풍경. 각기 다른 데서 모인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
평범한 거리에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광경은 그야말로 비범한 것이었다.

소확행, 여행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낯선 곳에 몸을 맡기는 것이 여행이라면,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명소만 보러 다니는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 같은 여행 말고 잔잔하게, 소소한 행복을 깊게 음미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 믿는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